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철강·비철금속산업의 경기는 쉽사리 풀리지 않고 있다.
특히 그칠 줄 모르는 폭염 속에 전력 부족으로 인해 자의반 타의반 이뤄지고 있는 생산 중단이나 조정은 그야말로 업친데 덮친 격이다.
또 국내외 경제 부진 속에 단기간에 해결하기 어려운 공급 과잉은 철강금속 유통시장에 혼란과 더불어 미래에 대한 불안감마저 가중시키고 있다.
그러나 작금의 시황 악화와 시장 혼란, 나아가 파급되고 있는 불안 심리를 단순히 경기 침체라는 이유로만 치부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특히 국내 철강 유통시장에서 최근 일어나고 있는 여러 가지 현상들은 분명히 그동안 내재된 비정상적인 요소들이 새로운 환경 변화로 인해 비로소 진짜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판단이 가능해진다. 그야말로 과도기적인 혼란과 이를 극복하고 제 모습을 찾기 위한 환골탈태(換骨奪胎)의 수순이 아닌가 생각된다.
우선 공급자 시장에서 수요가 중심으로 시장의 구조와 특성이 급격하게 바뀌고 있다. 그동안 가격과 물량, 납기에서 일방적으로 을의 입장이었던 수요가들이 이제 갑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대부분 제품에서 가격과 납기를 수요가가 요구하는 대로 하지 않으면 판매가 불가능해지고 있다.
특히 가격적인 측면에서 혼란과 불안, 그리고 불신까지 초래하는 일이 현실이 되고 있다. 때마침 중국산으로 대표되는 저가(低價) 제품이 기폭제 역할을 했다. 일부 수요가들은 가격 위주로 구매선을 변경하기 시작했다. 고정 거래 선과 단골이라는 철강시장의 고유한 특징까지 사라지는 일도 빈발하고 있다.
고의 부도 등을 노린 초저가 물량이 시장을 흐리는가 하면 이미 무용지물이 된 기준(List) 가격은 거래 쌍방의 신뢰를 무너뜨리고 있다. 심지어 본지 조차 기준 가격인 공장도 가격을 변경하지 못하면서 실제 공장도 가격을 반영하지 못하는 일이 계속되고 있다.
안정을 찾지 못하는 시장의 불안과 계속되는 불황은 어음이라는 우리 특유의 결제 방식과 맞물려 부도와 함께 선의의 피해자를 양산하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 철근 시장에서의 ‘선 출하 후 정산’과 같은 비정상적인 거래방식이 2년이 넘게 계속되고 있는 것도 신뢰 상실이 근본 원인이다.
이런 비정상적인 모습들은 물론 과도기적인 특징이라고 판단된다. 하지만 이런 상황이 장기간 지속된다면 철강 유통시장이 정상화 되는데 예상밖으로 오랜 기간의 혼란을 겪을 수도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먼저 철강 유통시장의 거래 질서를 확립하기 위해서는 거래 쌍방의 신뢰감이 회복되어야 할 것이다. 그 첫 번째 단추는 무엇보다 투명하고 명확한 가격 질서를 세워야 한다. 기준(List) 가격과 같은 방식이 아니더라도 품목, 강종별로 명확한 거래 기준이 제공되어야 할 일이다.
이어 정품 규격 철강재 거래와 사용이 보다 더 확실하게 이뤄져야 한다. 부적합 불공정 철강재 사용이 계속되는 한 국민의 안전과 재산이 위협받음은 물론 철강시장의 안정도 요원한 일임에 틀림없다. 보다 더 실질적이고 강력한 제도와 법 질서가 요구되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