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웠던 처음으로 돌아가자

뜨거웠던 처음으로 돌아가자

  • 철강
  • 승인 2018.01.29 0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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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명 황병성 bshwang63@snm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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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국을 휘몰아친 한파에 마음과 몸이 꽁꽁 얼어붙었다. 이럴 때 온정의 이야기가 많으면 좋으련만 매스컴을 접하다 보면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사건으로 안타까움을 감출 수 없다.

  투정을 부린다고 다섯 살 어린 딸을 때려서 숨지게한 비정한 부모, 어머니를 청부 살해한 패륜의 아들, 홧김에 여관에 불을 질러 서울 구경 온 세 모녀를 죽음으로 내몬 방화범의 소식에 통탄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

  인간의 탈을 쓰고 금수(禽獸)만도 못한 일을 저지른 그들은 무거운 중벌로 다스려야 마땅하지만, 한편으로는 우리 사회가 왜 이렇게 되었을까 하는 비통한 마음마저 든다.

  또한, 평소 자신에게 다정스럽게 말을 걸어주고 관심을 보여준 월세집 주인에게 670만원의 유산을 남기고 세상을 등진 어느 기초생활보호 수급자의 죽음이 우리를 슬프게 한다.

  “아주머니, 아저씨, 잘 지내세요. 저는 먼저 저승으로 갑니다. 제 몫까지 오래오래 사세요. 돈 놓고 가니 잘 쓰세요.”가 그가 남긴 마지막 유언이다. 그가 죽은 이유를 경찰은 신변을 비관해서라고 하지만 우리가 알지 못하는 무언가가 있지 않을까 추론한다.

  이혼했지만 자식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에게는 너무 소중했을 670만원의 유산을 집주인에게 남긴 이유는 분명있다. 혈육도 등진 그에게 살뜰하게 챙겨준 부부가 한없이 고마웠던 것이다.

  언제부턴가 우리 사회는 약자를 우습게 보는 풍조가 생겼다. 약자의 처지를 이해하기보다 그들을 무시하고, 멸시하며 벼랑 끝으로 내모는 일을 서슴지 않는다. 더불어 사는 사회이지만 ‘더불어’라는 단어는 실종된 지 오래됐다.

  철강금속업계도 마찬가지다. 갑과 을의 관계는 어디에든 있다. 갑의 서슬 퍼런 칼날은 을을 한없이 움츠러들게 하고 상심하게 한다. 상생(相生)의 좋은 뜻을 가진 단어를 내세우고 있지만, 허울 좋은 구호일 뿐이다.
약자를 위해 살뜰하게 챙겨주는 베품은 어디에도 없다. 지금 이 순간에도 전국에는 을의 처지인 중소 철강금속업체들이 갑의 횡포에 노심초사하며 하루하루를 힘겹게 버티고 있다.   

  철을 다루는 것이 우리 업계이다. 철은 원래 뜨거운 열로 제품을 만들지만 식으면 차갑기 그지없다. 한파에 꽁꽁 얼어버린 우리 철강금속업계에도 따뜻한 온기를 불어넣어야 한다. 뜨거웠던 처음으로 돌아가자는 것이다.

  어려움에 부닥친 약자를 외면하기보다 따뜻하게 보듬어 함께 갈 수 있는 하해(河海)와 같은 아량이 필요하다. 한 배를 탔다는 동업자 정신의 회복이 지금 가장 절실하다.

  사회 공헌에 대한 우리 업계의 민낯도 들여다본다. 더불어 사는 사회에 대한 노력이 곳곳에서 보임에 일면 안심이 된다. 이익의 일정부분 사회 환원에 충실한 전국 많은 철강금속업체에서 훈훈한 온기를 느낀다. 해마다 부족한 살림살이를 쪼개어 장학금, 불우이웃돕기 성금 등을 내는 그들을 볼 때면 존경스러운 마음이 저절로 나온다.

  그들의 이런 온정이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큰 힘이 되었고, 우리 업계를 빛나게 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철은 차갑지만 태생할 때는 태양처럼 뜨거웠다. 그 뜨거웠던 온기를 가슴에 품고 상생(相生)을 위한 약자에 대한 배려와 더불어 사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사회 공헌에 더욱 충실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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