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악법도 법이다’라는 말을 그리스의 철학자 소크라테스가 한 말이라고 믿고 있었다. 그러나 이것은 잘못 알고 있는 것이다. 이 표현은 일본의 법철학자 오다카 도모오가 1930년대에 출판한 책에서 “소크라테스가 독배를 든 것은 실정법을 존중했기 때문이다. ‘악법도 법’이므로 이를 지켜야 한다”라고 실정법주의를 주장한 내용이 소크라테스의 말로 와전된 것이다. 이에 헌법재판소는 2004년 교육부에 교과서에서 이 말을 삭제해 줄 것을 요청하기도 했다.
악법은 우선 정의부터 따져보아야 한다. 사전에서 악법은 ‘사회에 해를 끼치는 나쁜 법규나 제도’라고 정의한다. 사회에 해를 끼친다는 것은 다시 말하면 보편적인 사람들에게 나쁜 영향을 미치거나 인권을 침해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악법이 있다면 동의할 수 있을까. 법은 만인 앞에 평등해야 하고 엄정하게 집행되어야 한다. 이에 입법하는 자는 항상 이것을 염두에 두어서 신중하게 만들어야 한다. 누군가에는 이익이 되고 누군가에게는 피해를 주는 법이라면 이것이야 말로 악법 중의 악법이다.
중대재해처벌법이 나라를 시끄럽게 하고 있다. 이 법은 2021년 1월 8일 경영계, 노동계 등이 반발한 가운데 국회 본회의를 통과해 2022년 1월 27일부터 시행됐다. 50인 미만 사업장은 3년 유예 기간이 주어졌다. 이 유예기간이 끝나고 지난달 27일부터 근로자 5인 이상 사업장까지 확대됐다. 그러자 전국 8만 7천여 명의 영세 사업주들은 사업 존폐의 갈림길에 섰다. 애초 사업주들은 준비 부족을 호소하며 유예기간을 늦춰달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노총을 의식한 더불어민주당의 반대로 끝내 거부당했다.
이에 따라 아르바이트생을 포함 5명 이상 직원을 고용한 자영업자·중소기업이 대상이 되면서 음식점, 빵집, 카페 사장들은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제일 먼저 고용이 요동쳤다. 이 법을 비켜가기 위해 나온 고육책이 직원을 줄이는 것이었다. 5명 이상 고용한 업주들이 직원을 줄이고 있다. 계획하고 있는 업체도 늘어나고 있다. 위축된 고용환경에 기름을 붓는 격이 된 것이다. 한편에서는 이것을 너무 과장된 반응이라고 해석하지만 실제로 우리 주위에 흔히 일어나고 있으니 문제다.
문재인 정부 때 최저임금을 급히 올릴 때와 같은 반응이다. 이 법을 피하려고 종업원 5, 6명 중 한두 명을 해고할 사업주가 있겠느냐는 생각은 ‘최저임금 좀 올린다고 고용이 줄겠느냐’는 생각만큼 순진한 발상이다. 자신이 직원 4명을 둔 자영업자라고 생각해 보라. 일이 힘들다고 직원을 추가로 뽑아서 법 리스크를 질 것인지 자문해 보면 답이 나온다. 예상할 수 없고, 어떻게 대비할지 알 수 없는 사고가 터져 감옥에 가고, 삶과 일터가 무너질 수 있다. 확률이 낮더라도 사업주들이 결코 맞닥뜨리기 싫은 상황이다.
이 법의 적용 대상은 ‘상시 근로자’이다. 정규직은 물론이고 단기 아르바이트생까지 포함된다. 근로기준법에 따른 근로자 수 산정방식을 따르기 때문에 고용 형태와 상관없이 하나의 사업장에서 일하는 모든 근로자를 합산해야 한다. 오토바이 배달자도 식당과 근로계약을 체결했다면 상시 근로자에 포함된다. 고용시장이 얼어붙을 수밖에 없는 것은 곳곳에 지뢰처럼 도사리고 있는 위험 때문이다. 멀쩡하던 천장의 조명등이 떨어져 종업원이 사고를 당하면 책임은 오롯이 사장의 몫이다. 도의적인 책임은 물론이고 법적 책임까지 져야 한다.
지난 14일 중소건설단체와 중소기업단체협의회 등 14개 단체가 모였다. 50인 미만 사업장의 중대재해처벌법 유예를 촉구하기 위해서다. 무려 4천여 명이 모인 이날 결의대회는 정치가 경제의 발목을 잡지 않도록 해 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법을 없애자는 것이 아니고 2년간 유예해 충분히 준비하는 시간을 달라는 것이다. 칼바람이 매서웠던 이날 절규하던 중소기업인들의 바람을 정치권은 절대 외면해서는 안 된다. 표심에 휘둘린 결정보다 때로는 힘없는 자를 위한 결정이 가치가 있을 때가 있다. 그 때가 지금이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산업계 입장에서 보면 지금까지 나온 법 중 가장 강력하고 무서운 법으로 인식되고 있다. 애초 법안이 마련되면서 수많은 논쟁이 벌어졌고 시행 이후에도 많은 문제점을 야기하고 있다. ‘악법도 법이다’라는 모순된 논리로 밀어붙여서는 안 된다. 이해타산적인 정치적 논리가 우선되어서도 안 된다. 오로지 만인 앞에 평등한 법의 논리로 따져서 행하는 것이 정의다. 그렇지 않으면 순수한 취지의 법이라도 악법으로 오인받을 수 있다. 해결책의 열쇠는 정치권 쥐고 있다.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현명한 결정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