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강 및 비철금속 산업의 탄소 중립이 발등에 떨어진 불이 됐다. 그러나 당장 눈앞에 실감할 수 있는 진척은 보이지 않는다. 무성한 계획만 있을 뿐이다. 상황이 이렇게 된 것은 이유가 있다. 천문학적인 자금이 투입되어야 하고 기술 개발이 난맥(亂脈)이다. 그래서 탄소 중립의 완성을 2050년으로 잡은 것인지 모른다. 주사위는 던져졌다. 돌이킬 수 없는 과제가 된 만큼 실천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업체마다 세부 계획을 세워 하나씩 해결해 나가고 있음은 다행이라는 생각이 다. 탄소 중립이라는 글로벌 시류에 도태되지 않고 적극 편승한 것도 박수를 받을 만하다.
탄소 중립이 지구촌 화두(話頭)가 된 근거는 명확하다. 북극곰 생존 문제에서 그 원인을 찾는다. 북극곰은 몸집이 큰 해양 포유동물이다. 극한의 추운 북극해 얼음과 눈 위에서 살아간다. 드넓게 펼쳐진 얼음 위를 돌아다니면서 사냥을 통해 생존한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다. 북극해 얼음이 시나브로 녹아내리고 있다. 인간이 만들어낸 온실가스가 최대 문제이다. 지구 온도가 올라가면서 북극의 두꺼운 얼음이 녹고 있다. 이에 북극곰의 사냥터가 줄어들며 목숨을 위협받고 있다. 언론에 자주 등장하는 깡마른 북극곰 사진이 이것을 대변한다. 각종 자연재해로 지구촌이 몸살을 앓는 것과 다르지 않다.
지구촌이 온난화를 심각한 문제로 인식하기 시작한 것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다. 그리고 협정을 통해 약속했다. 2015년 12월 타결돼 2016년 11월부터 발효된 파리협정이 그것이다. 지구의 평균 온도를 산업화 이전 대비 2도 이상 상승하지 않도록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려는 것이 목표다. 각 국가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치를 나눠 책임진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하지만 8년 여가 지난 지금 지구촌은 약속을 잘 지켰는지 살펴본다. 애석하게도 뚜렷한 효과는 보이지 않는다. 북극곰의 생존이 위협받는 현실이 그것을 입증해 준다.
이렇게 가다가는 지구가 종말을 맞을 수 있다. 지구가 멸망하기까지의 시간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지구 종말 시계’(Doomsday Clock)의 초침이 자정까지 ‘90초’를 남겨두고 있다. 지구 종말 시계의 초침은 2020년부터 100초 전으로 유지해 오다 2023년 90초로 당겨졌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핵 사용 우려가 고조된 데 따른 것이다. 또한 기후 변화, 인공지능(AI)과 새로운 생명 공학을 포함한 파괴적인 기술 등도 원인이다. 이 모든 것은 인간이 자초한 자업자득(自業自得)의 결과라는 것이 한심스럽다.
지구 종말 시계는 과거 세계 곳곳의 핵실험이나 핵 보유 국가의 동향을 반영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인류가 얼마나 지구에 파괴적인 관행을 저지르는지도 반영한다. 대표적인 것이 기후변화의 관점에서 해석하는 것이다.
세계기상기구(WMO)는 2023년 7월 엘니뇨 시작을 선언했다. 이 현상은 북극의 얼음을 녹이고 지구촌에 기상이변을 발생시키고 있다. 전문가들은 올해도 이러한 현상이 지속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지구온도 상승 마지노선이 겨우 0.05도 남은 급박한 상황이다. 사람으로 비유하자면 시한부 사망 선고를 받은 것과 마찬가지다.
어느 전문가는 지구는 멸망하지 않는다고 했다. 다만 인간이 멸종할 뿐이라고 했다. 어쩌면 우리 인간들은 이 지구에서 이 과정을 몇 번씩 되풀이했을 지도 모른다. 절제되지 않은 인간의 욕망이 언제나 화근이다. 지금도 이 욕망은 지구를 병들게 하고, 전쟁을 통해 지구의 생명을 단축하고 있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인간에게로 돌아온다. 그리고 당장 피해가 발생하지 않아도 후세가 더 건강한 환경에서 지구에서 살 수 있도록 각별히 신경 써야 한다. 이것은 지구에서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의 책무다. 그 중 하나가 우리 업계가 관심을 두고 추진하는 탄소 중립이다.
아인슈타인은 최첨단 무기를 대동한 3차 세계대전이 끝나면 4차 세계대전은 원시사회로 돌아간 인류가 돌과 막대기로 전쟁을 치를 것이라고 예언한 바 있다. 이것은 탄소 중립을 완성하지 못한 미래와 일맥상통하는 예언일 수 있다. 굴뚝 산업의 대명사였던 우리 업계가 그린 산업으로 변화를 위해 노력하는 것은 북극곰을 한 마리라도 더 살리려는 의지이다. 우리의 후세가 깨끗한 환경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노력이다. 이러한 이유로 탄소 중립 과제를 중단 없이 실천하려는 의지와 절박함이 상존한다. 그래서 탄소 중립이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