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재’가 아니라 ‘지시’뿐이었다

2011-10-10     에스앤앰미디어
  지난 5일부터 6일에 걸쳐 철강업계에서는 참으로 보기 어려운 일이 벌어졌다.

  철근 가격분쟁으로 인한 공급중단 사태를 심각하게 인식한 정부가 협상과 중재를 통해 양측의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하지만, 막상 중재를 하겠다고 벌인 판의 모습은 진정 대화와 양보를 통한 갈등 해소와는 거리가 멀었다.

  다시 말해 무조건 철근 공급 재개를 전제로 협상을 이끌어 나가겠다는 의지만 가득했다. 하지만, 문제의 핵심(가격)은 차치하고, 시작부터 공급 측이 유일하게 가진 무기를 내려놓으라는 것은 이미 ‘협상과 중재’를 포기한 것이나 다름없는 일이었다.

  아무튼, 이제 철근 가격은 결정됐다. 어느 측 의견이 더 반영됐고 유리했는지도 중요하지만, 과정과 결과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적지 않았다고 생각된다.  

  이번 ‘중재(?)’에 참가한 이들 모두 문제가 있었고 이를 되짚어 봄은, 향후 진정한 협상을 통한 갈등 해소, 그리고 재발 방지를 위한 원천적인 시스템 구축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판단되기 때문이다.

  우선 중재의 핵심인 국토해양부는 앞서 언급한 대로, 중재가 아니었다. 건설사들이 원하는, 출하 재개에만 관심이 있었다. 이는 중재자로서의 자세와는 완전히 거리가 멀다. 그럴 바엔 협상이 아니라, 제강사에 일방적으로 지시하는 편이 더 나았을 것이다.

  지식경제부 역시 하나도 나을 것이 없었다. 적어도 제강사들의 입장과 논리를 정확하게 파악해 전달하고 객관적인 해결방안, 예를 들면 철스크랩 연동제와 같은 대안을 제시했으면 좋았을 것이다. 하지만, 국토부와 마찬가지로 적정선에서 타협하고 공급 재개하자는 주장만 하고 자리를 떴다. 아무런 역할과 목소리를 내주지 못했음은 주무부처에 대한 기대감과는 거리가 먼 것이었다.

  한국철강협회 역시 사전에 업계의 중론을 모으고 입장을 대변해야 했다. 특히 이를 뒷받침 할 수 있는 자료를 제시했으면 더욱 좋았을 것이다. 하지만, 정부 관계자 앞에서 협회는 꿀 먹은 벙어리였을 뿐이다. ‘업계를 위해서’ 라는 존재가치를 생각나게 하는 일이었다.

  마지막으로 가장 큰 책임은 제강사 자신들에게 있다고 생각된다. 적어도 이런 회의 자리에 참석하려면 서로 의견을 조율해야 했고 한목소리를 내야 했는데 그조차 이루어지지 않았다. 건설사들은 한목소리로 자신들을 주장하건만 우리는 그에 상응하는 준비가 되지 않았다. 물론 그 원인 중의 하나는 공정위의 공급사 모임 자체가 담합이라는 기준이 있지만, 정부 부처에 의해 벌어진 판이라면 그를 위한 사전 준비로 충분한 이유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차제에 우리 철강사들도 제대로 된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협회를 제대로 이용해야 하고 ‘건자회’와 같은 대변기구도 만들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말 그대로 1대1 끝장 토론에 우리는 최대 업체의 임원이, 건설사는 구매담당 차장이 마주했다. 거기에 건설사 측 국토부 국장도 함께했다. 도대체 말이 안 되는 모양새다. 그저 실소를 금할 수 없을 뿐이다. 범 철강업계의 수준이 이 정도뿐인가 하고 실망과 개탄스러움을 금할 길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