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병성 칼럼 - 포스코가 친일 기업인가?

2020-07-27     황병성

부처의 입멸(入滅)에 대해서 말한 경전 열반경(涅槃經)에는 군맹무상(群盲撫象)이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어느 곳 한 왕이 한 신하를 불러 코끼리를 끌어내어 소경들에게 만져보게 하고 무엇인지 물으라고 했다. 이에 코끼리인 줄 모르고 이빨을 만진 소경은 무라고 대답했다. 귀를 만진 소경은 키라고 대답했고, 머리를 만진 소경은 돌이라고 대답했다. 그 대답을 들은 왕이 말하기를 “善 男子(선 남자)들이여, 이 소경들은 코끼리와 몸뚱이를 제대로 말하고는 있지 않지만 그렇다고 말하고 있지 않은 것도 아니다. 그들이 말하는 것은 코끼리는 아니지만, 이것을 떠나서 또 달리 코끼리가 있는 것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 이야기에 나오는 코끼리는 불성(佛性)을 비유했고, 소경은 어리석은 중생을 비유해 말한 것이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모든 중생이 불성을 부분적으로 이해하고 있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우리가 쓰고 있는 뜻은 못나고 어리석은 범인(凡人)들이 위대한 인물이나 사업을 비판한다 해도 그것은 한갓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 평으로, 전체에 대한 올바른 평이 될 수 없다는 의미로 쓰인다. 사물을 총체적으로 파악하지 못하고 자기 주관과 좁은 소견으로 그릇된 판단을 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최근 한 여성 변호사가 방송에 나와 고(故) 백선엽 장군에 대해 평가한 발언이 논란에 불을 지폈다. 한 방송의 패널로 참여한 그녀는 고인을 가리켜 “6·25 전쟁에서 우리 민족인 북한을 향해 총을 쏘아서 이긴 그 공로가 인정된다고 해서 현충원에 묻히느냐”면서 “현실적으로 친일파가 더 나쁘다고 생각한다. 대전 현충원에 묻히면 안 된다”고 말했다. 

이에 더해 국가보훈처는 고인을 ‘친일·반민족 행위자’로 규정하며 여성 변호사의 발언을 두둔하는 입장을 내비치기도 했다.  
이 주장은 사물을 총체적으로 파악하지 못한 부분이 있다. 자기 주관과 좁은 소견에서 판단한 그릇된 발언의 본보기라고 생각한다. 인간은 신이 아닌 이상 평생을 옳은 일만 하고 살 수 없다. 때로는 피치 못하게 잘못을 저지를 때도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고인의 삶은 총체적으로 보고 평가하는 것이 맞다. 

북한 공산당으로부터 나라를 지켜낸 우국충정의 삶을 변호사 개인적 입장에서 평가한 것은 잘못이 있다. 코끼리는 보지 못하고 일부분만 만져보고 판단하는 소경의 식견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고인의 죽음을 두고 사회 평가도 엇갈렸다. 언론도 마찬가지였다. 보수 언론은 6·25 영웅으로 평가했고, 진보 언론은 일제 식민지 시대 행적을 더 강조했다. 두 부류로 나뉘어 이전투구(泥田鬪狗)처럼 펼치는 사회 단면을 보며 씁쓸함을 감출 수가 없었다. 결국, 노장은 수많은 논란을 잠재우고 대전 현충원에 안장됐다. 국방부도 여성 변호사의 발언에 대해 “매우 부적절하다고 판단한다.”며 고인의 명예를 지켜주었다.

노장을 편안하게 보내지 못하는 우리 현실이 안타깝다. 조금 더 대승적인 차원에서 세상을 견지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다. 코끼리는 보지 못하고 코끼리의 귀와 머리를 만져보고 평가해서는 절대 안 된다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어리석은 범인의 판단이고 전체를 보지 못하는 소견에 불과한 것이다. 무명용사들도 묻히는 국립묘지에 그들을 지휘하고 6·25 전쟁을 승리로 이끈 장군이 묻혀서는 안 된다는 주장은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다.   

국민 기업 포스코도 한·일 청구권협정 보상금으로 세워졌다. 그 후 글로벌 톱 경쟁력을 갖추기까지 창립 초 일본의 도움을 많이 받은 것이 사실이다. 그러면 포스코도 친일 회사라고 규정할 것인가. 하지만 포스코를 향해 친일 기업이라고 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누구보다 공정해야 할 국가보훈처장의 편협한 생각도 문제다. 그는 초대 이승만 대통령 서거 55주기 행사에서 이 전 대통령을 ‘대통령’이 아닌 ‘박사’로 지칭해 분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국론 분열보다 통합을 우선으로 생각해야 할 위치에 있는 사람의 발언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말은 한 번 뱉으면 주워담을 수 없다. 발언의 신중함이 무엇보다 중요한 때가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