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수요향 갑질 자학하는 철강 제조사

2022-08-03     손유진 기자

“사급물량은 목숨줄과 같아서 마이너스가 나도 그냥 팔구요. 현대기아차 형님들이 하계휴가 중이라 저희도 맞춰 쉬어요.” 

“삼성전자는 막강한 구매 파워가 있어서요. 눈 한번 질끔 감고 뒷치닥거리하면 공급은 가능하잖아요.”

기자이기 전 철을 사랑하는 철강인으로서 업계의 이러한 고충에 마음이 울적해졌다. 사업을 하다 보면 더러운 꼴을 많이 본다지만 그들의 갑질 속에 놀아나고 있는 철강제조사들의 체면이 말이 아니다.

한 업체의 재무제표 중 영업이익에 40~50% 마이너스가 찍힌 것을 본 적이 있다. 현대·기아차에서 원소재 가격 반영을 제때 해주지 않았기 때문이란다. 

중소업체 뿐 아니라 대형 제조사도 마찬가지다. 모기업의 가전재 영업파트는 힘겨운 부서라 한직 혹은 유배지로 불리고 해당 부서에서 삼성전자의 ERP시스템까지 관리해 준단다. 삼성 구매담당자가 카톡 단체방에 나타나 ‘집합’을 외치면 다들 식당으로 날아간다고 한다. 그들이 다음 분기부터 인하폭을 제시할 것을 요구하며 공급 못하면 비율을 깎아버리겠다고 협박할 때 다들 찍소리도 못한다고 한다. 클레임이 한번 터지면 장갑 끼고 즉시 달려가서는 삼성전자의 주니어들 앞에서 아쉬운 소리를 듣는단다. 심지어 산업통상자원부의 철강세라믹과와 전기전자과는 사이가 좋지 않다고 한다. 삼성전자를 등에 업은 전기전자과에 철강세라믹과는 늘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한다고 한다.

철강업계 정말 이럴 텐가? 철강 제조사들의 룸을 확실히 채워주는 고객들은 완성차 업체와 가전 업체 밖에 없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렇다고해서 우리나라 철강업계의 자존심에 스크래치를 내고 적자를 내면서까지 공급해야 하는지는 의문이다. 우린 산업의 최일선에 있으면서 산업의 근간이 되는 핵심 제조들이다. 음식점이나 금융업 등 서비스를 전문으로 하는 회사들이 아니란 말이다.

다들 뒤꽁무니로 삼성전자에 잘 보이려하는 것도 문제다. 그들의 갑질을 멈추고 싶다면 단체 보이콧을 해서라도 “그런 식이면 안 팔겠다, 중국에 가서 사세요”라며 급발진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삼성전자바라기, 현대차바라기 이제 중단해야한다. 그들에게서만 이익을 취하거나 무리한 서비스를 한다면 회사 발전이 없다. 무너질 때도 같이 무너진다. 적어도 그들의 갑질에 굴복해선 안 된다. 깊은 뿌리는 우리고 그들은 잎사귀다. 당찬 철강업계를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