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병성 칼럼 - 거북선을 중국산 철강재로 만들었다면…
세계 최초로 철갑선을 만든 것은 조선시대였다. 임진왜란 때 활약한 거북선을 두고 하는 말이다. 일본의 수군과 싸워 이기기 위해서는 혁신적인 해상 무기가 필요했다. 이에 이순신 장군은 적 함선에 접근하여 적군을 쉽게 물리칠 수 있는 이동식 요새(要塞)를 구상했다. 그것이 거북선이었다. 거북선은 30개 노를 사용해 움직였으며, 갑판 위에 12문의 대포와 화포가 장착되었다. 갑판은 두 개의 날개로 나뉘어 있었는데, 펼치면 사방으로 포격을 할 수 있었다. 또한 적의 포격 방어를 위해 철판으로 덮어 보호했다.
개화기 사상가 유길준은 ‘서유견문(西遊見聞)’에서 “이충무공의 거북선은 철갑병선(鐵甲兵船)으로 세계에서 최초로 만들어진 것”이라고 했다. 이후에도 많은 사람들이 거북선을 ‘세계 최초 철갑선’으로 정의했다. 거북선 등에는 거북 무늬를 그렸을 뿐만 아니라 그 위에 날카로운 못이나 칼날(송곳)과 같은 것을 꽂아 적의 접근을 차단했다. 이 철갑선이 임진왜란 때 혁혁한 공을 세운 것은 수많은 문헌을 통해 확인한 바다. 최근에는 영화를 통해 간접적으로 경험하기도 한다. 이로 인한 카타르시스는 국뽕이 차오를 만큼 벅차다.
우리 조상의 우수한 조선 건조 DNA는 후세로 이어졌다. 글로벌 조선 산업에서 우리나라가 차지하는 입지가 이것을 입증한다. 조선 수주와 건조에서 중국과 1, 2위를 다투고 있고, 고부가선 수주와 건조에서는 단연 우리가 세계 최고다. 세계 최초 철갑선을 만든 기술이 죽지 않고 살아 있음을 의미한다. 이에 양보다는 질이 우선인 글로벌 조선시장에서 우리의 초 격차 전략은 더욱 가속화하고 있다. 산업부가 최근 발표한 ‘K-조선 초 격차 비전 2040’이 그것이다. 친환경·디지털·스마트 3대 분야에서 2040년 세계 최고 조선기술 강국이 목표다.
이처럼 K 조선은 타 산업이 부러워할 만큼 잘 나가고 있다. 이것을 바라보는 철강업계도 기대 반 아쉬움 반의 심정이다. 조선 건조에는 두꺼운 후판이 쓰인다. 이에 배를 건조하는 데 후판 구매 가격이 20% 이상 들어갈 정도로 큰 비중을 차지한다. 이런 이유로 조선업계는 철강업계에 큰 고객이다. 고객이 잘 나가면 소재를 공급하는 업계도 잘 나가는 것이 이치에 맞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그렇지 못하니 안타깝다. 조선업계의 수주가 늘어나자 덩달아 철강업계의 기대가 컸다. 그러나 기대가 실망으로 바뀌는 것은 섬광처럼 빨랐다,
최근 철강·조선업계 간 후판 가격 협상이 지지부진하다. 두 업계는 상·하반기 각 1회씩 후판 가격을 두고 협상하는데 입장이 좁혀지지 않고 있다. 양 측 주장이 팽팽한 것은 중국산이 원인이다. 중국이 저가 후판을 밀어내기 하면서 국내 조선업계에 빌미를 제공한 것이다. 이에 가격을 맞춰주지 않으면 중국산 후판 사용도 불사하겠다며 철강업체를 협박하고 있다. 실제로 이것이 현실화 됐다. 상반기 중국산 후판 수입은 68만 8,000톤으로 전년 동기 대비 12%나 늘어났다. 국내 시장 점유율도 지난해 17%에서 20%대로 확대됐다.
철강 업계로서는 섭섭하기 그지없다. 이윤을 남기기 위해 저가 철강재를 선택하는 수요가들의 심정을 이해 못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싼 게 비지 떡’이라는 우리 속담을 상기하지 않을 수 없다. 값이 싼 것은 품질도 나쁘기 마련인데 과연 질 낮은 중국산으로 K 조선의 초 격차 비전을 달성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특히 친환경과 디지털·스마트 실현을 위해 중국산 적용이 가당키나 한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수요가 있으니 물량이 들어온다. 중국산 저가 후판의 최종 종착지가 조선사라는 것을 의심하는 것도 이런 심증 때문이다.
거북선을 중국산 철강재로 만들었다면 어떤 상황이 벌어졌을까? 그 거북선이 일본 수군의 공격을 잘 막아내며 적을 물리칠 수 있었을까? 중국산 제품을 써봤던 대다수 국민은 안심할 수 없을 것이다. 지금 국내에 유통되는 철강재도 이것의 연장선상이다. 급기야 후판 제조사 현대제철이 중국산 저가 후판 수입 급증으로 피해를 입고 있다며 산업통상자원부에 반덤핑 제소를 했다. 가격 협상에서 조선업계가 중국산 후판을 대안으로 활용할 수 있다고 급박하며 가격 인하를 압박하는 상황에서 나온 조치다. 업체로서는 최후 수단이다.
돌이켜 보면 후판업체가 마냥 을의 입장만은 아니었다. 갑의 입장일 때도 있었다. 과거 조선업계가 발전을 거듭하던 시절 후판이 턱 없이 부족하던 때가 있었다. 그래서 철강업계에 후판 설비 증설을 간곡히 요청했었다. 그것을 철강업계가 받아들이면서 갑과 을의 관계도 바뀌었다. 지금은 마치 ‘물에서 건져주니까 보따리 내놔라’는 억울한 상황이 됐다. 이 같은 처지가 된 것은 몹시 유감스럽다.
산자부는 이 모든 사항을 고려해 반덤핑 제소를 받아들이는 것이 맞다. 조선업계보다 사정이 좋지 않은 철강 업계를 살리기 위해서는 더욱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