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병성 칼럼 - 행복한 1주일을 꿈꾸게 하는 것

2024-09-30     황병성

 “준비하시고 쏘세요.”
1969년에 도입한 주택복권 추첨을 위한 구호이다. 복권을 산 사람들이 텔레비전 앞에서 긴장된 마음으로 지켜보던 때가 있었다. 박봉으로는 도저히 이룰 수 없을 것 같은 내 집 마련의 꿈을 주택복권 당첨으로 이루기 위해서이다. 일요일이면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추첨 상황을 쿵쿵 뛰는 가슴으로 지켜보던 사람들이 많았다. 실제로 당시 1등에 당첨되면 집 한 채 장만은 거뜬했다. 1973년도에 분양된 반포 주공 1단지 23평 아파트가 300만 원대였으니 말이다. 지금은 엄두도 못 낼 일이지만 당시에는 가능했다.
    
1등 당첨금은 1회 추첨 당시 300만 원이었다. 복권 1장당 판매 가격은 100원이었다. 참고로 주택복권 판매 초기 당시 물가 상황은 자장면 1그릇이 100원이었다. 선망의 직업으로 꼽혔던 은행원 한 달 평균 월급이 2만∼3만 원 정도였다. 그리고 서울시에서 중산층을 대상으로 공급한 시민아파트의 평당 가격이 4만 원이었다. 18평으로 환산하면 72만 원이면 집을 살 수 있었다. 당첨금 300만 원이면 서울시내에서 아주 넓고 번듯한 집 한 채를 사고도 남았다. 내 집 마련의 꿈을 꾸는 사람들이 일요일을 손꼽아 기다린 이유다. 

복권에 당첨되려면 꿈을 잘 꾸어야 한다. 이것은 복권에 당첨된 사람들 대부분이 경험한 것이기도 하다. 돼지꿈과 조상 꿈을 최고로 쳐 준다. 이런 이유로 돼지꼬리 꿈만 꾸어도 복권을 살 정도였다. 내 집 마련의 꿈이 얼마나 간절했으면 그랬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1등 당첨금도 차차 인상됐다. 1970년 4월 400만 원, 7월 500만 원, 1971년 3월 700만 원, 1973년 10월 800만 원, 1975년 8월 900만 원으로 늘었다. 1978년에는 당첨금이 1,000만 원을 넘어섰다. 부동산과 물가가 상승하자 당첨금도 덩달아 올랐던 것이다. 

추첨방식은 1969년 도입 초기부터 다트 쏘기 형식이었다. 그러나 “준비하시고 쏘세요.”라는 구호가 10.26 사태 때 박정희 대통령 저격이 연상된다는 이유로 폐지되기도 했다. 지금 생각하면 실소를 금할 수 없지만 당시 정세가 어떠했는지 짐작이 간다. 그렇게 주택복권으로 시작해 1984년 잠깐 올림픽 복권으로 변신했다가 1989년 주택복권으로 다시 복권했다. 당첨금도 1억 원으로 껑충 뛰었다. 시대가 흐른 지금은 다양한 복권이 등장한다. 그중 로또복권은 당첨금이 평균 20억 원이 넘는다. 꿈을 쉽게 포기하지 않게 하는 유혹덩어리다.    

꿈은 이루어진다고 했는데 복권 당첨의 꿈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로또복권 당첨 확률을 누군가가 계산했는데 무려 8,145,060분의 1이라고 한다. 당첨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확률이 말해 준다. 하지만 이것도 확률게임이다. 어렵지만 누군가는 당첨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현몽(現夢)을 꾸지 않아도 직장인들이 복권을 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박봉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직장에서 스트레스를 받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팀원들과 회식을 한 후 버릇처럼 복권을 사서 팀원들에게 나눠준다. 그리고 호기 좋게 하는 말이 있다. “나 당첨되면 회사 그만둔다. 사직서는 팩스로 보낼게….”   

누군가는 빌딩을 올리고, 누군가는 회사를 그만두는 꿈을 꾸게 하는 것이 복권이다. 그 꿈이 일장춘몽(一場春夢)으로 끝나도 꿈꾸는 순간은 행복하다. 비록 대부분 허망한 꿈이 되고 말지만 꿈을 꿀 수 있다는 자체만으로도 행복한 것이다. 각박한 세상살이에 이런 꿈도 꾸지 못한다면 얼마나 불행할까 생각해 본다. 고물가에 부동산 가격까지 오르면서 로또 1등에 당첨되어도 서울에서 집 한 채 못 산다는 얘기가 나온다. 300만 원 당첨금으로 집을 장만하던 옛날을 생각하면 격세지감(隔世之感)이 느껴진다. 부동산 정책이 잘 못되어서인지, 물질적 풍요가 나은 부작용 때문인지 집값이 올라도 너무 올랐다는 생각이다. 

급기야 기획재정부 복권위원회에서 당첨금 변경 설문조사를 실시한다고 한다. 당첨금을 지금보다 더 올리는데 목적이 있다. 로또 복권이 나오면서 부작용도 많았다. 옛날 집 마련이라는 소박한 꿈도 사라졌다. 수 억 원 당첨금을 두고 가족 간의 불화가 생기기도 한다. 당첨되면 행복은 순간이고 찾아오는 불행은 오래간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그러나 복권의 순기능은 의외로 많다. 판매로 생긴 기금은 사각지대 청소년들을 지원한다. 사회 약자를 지원하고, 공공복지 증진과 문화 예술 활성화에도 기여한다. 인생 대박을 위해 산 복권이 이런 좋은 일을 한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많다. 복권을 사는 것이 결코 헛되지 않았음을 다양하게 쓰이는 기금이 입증한다. 상상 속의 1주일이 행복하다면 이 또한 인생의 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