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즈업 ‘포항시’
포항(浦項)은 필자의 제2 고향이다. 1970년 말 고등학교를 다녔던 곳이다. 지금도 죽도 시장의 비릿한 생선 냄새와 장사꾼들의 투박한 사투리를 잊지 못한다. 안내양이 ‘오라이’를 외치는 버스를 타고 등교할 때 즈음 형산강 다리 위는 출근하는 직장인들의 자전거 물결이 장관을 이루었다. 노란 옷을 입은 사람들은 대부분 포스코(당시 포항제철소)로 출근하는 직장인이었다. 드문드문 협력업체와 타 직장인들이 행렬에 끼어들곤 했다. 당시 포항은 ‘대한뉴스’에 나올 정도로 격동하는 ‘철강도시’로 사람들에게 각인되고 있었다.
포항이 어떤 곳이었는지는 향토인 한흑구 선생의 수필에서 잘 나타난다. 그는 ‘보리’라는 제목의 수필을 통해 포항 사람들의 순수함을 이야기했다. 선생은 포항사람들의 심성을 ‘너 보리는 그 순박하고, 참을성 많은 농부들과 함께 자라나고, 또한 농부들은 너를 심고, 너를 키우고, 너를 사랑하면서 살아간다.’는 내용으로 함축했다. 당시 포항사람들의 삶과 인성을 보리를 통해 표현한 것이다. 해풍을 맞으며 성장한 보리는 어촌 사람들의 중요한 양식이었다. 이에 봄이되면 보리는 함께 재배하던 포항 초(시금치)와 푸른 물결로 일렁이며 아름다운 풍경을 연출했다.
포스코가 생기기 전 포항시 인구는 경주시, 심지어 김천시보다도 적었다. 포항의 시 승격은 제철소가 건설되기 이전인 1940년대 후반이다. 수산업이 발달하며 어항으로서 위상이 높았던 것이다. 그러던 중 실제로 상전벽해(桑田碧海) 하는 일이 발생한다. 포항의 드넓은 모래밭이 제철소로 바뀐 것이다. 그러면서 포항시는 급격한 도시화가 진행된다. 인구가 늘어나고 보리와 포항 초를 키우던 밭은 공장이 들어섰다. 지금은 철강도시라는 명성과 함께 경상북도 최대 도시로 성장했다. 소득이 높은 부자 도시로도 이름이 높다.
철강도시답게 포스코 본사, 연구소, 공장과 현대제철, 동국제강 공장이 남구 형산강 삼각주를 차지할 만큼 철강 관련 기업들이 거대한 공업단지를 이루고 있다. 최근에는 북구 흥해읍 영일만항 배후 산업단지에 HD현대중공업 공장이 들어서면서 철강업 외 기계 산업까지 입지를 다지고 있다. 포스코퓨처엠, 에코프로그룹 등 이차전지 산업 관련 대기업 연구소와 공장도 유치했다. 남구 포항블루밸리 산업단지와 북구 영일만 산업단지를 중심으로 이차전지와 소재사업이 성업 중이다. 분초를 다투며 변화하는 도시의 모습이 놀라울 따름이 다.
이것이 다가 아니다. 대박을 터트릴 일이 한참 진행 중이다. ‘대왕고래 프로젝트’가 그것이다. 대한민국 ‘산유국의 꿈’을 실현할 이 프로젝트 시추가 눈 앞으로 다가왔다. 동해 심해 가스전에는 최대 140억 배럴의 석유·가스가 매장돼 있을 것으로 추정한다. 이것이 현실이 되면 포항은 철강도시에서 또 한 번 탈바꿈한다. 포항시민들은 생각만 해도 행복해지는 순간이다. 다만 생각처럼 실현 될지는 미지수다. 비관적인 시각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꿈이 현실이 되는 것을 수없이 봐왔기에 희망을 쉽게 접을 수 없다.
포항시민과 철강은 불가분의 관계이다. 필자가 고등학교에 다닐 때는 한집 건너 한집 꼴로 철강회사에 다니는 사람이 있을 정도였다. 그것을 터전으로 삼아 살아왔으니 철강에 대해 애정이 남다른 것은 당연하다. 그래서 철강과 관련된 일은 남의 일이 아닌 내일처럼 생각한다. 최근 시민들의 “힘내라 철강업계”라는 응원도 같은 맥락이다. 어려움에 처한 철강업체를 시민들이 나서서 응원하는 모습은 철강도시 시민답다. 과거 포항의 기업들이 수많은 위기를 극복하면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이 같은 시민들 사랑이 큰 힘이 됐다.
시민들이 철강업계를 응원하는 것은 이유가 있다. 철강이 심각한 상황에 직면했기 때문이다. 대기업 철강사가 최근 공장 셧다운(폐쇄)을 시켰다. 그것도 4개월 사이에 2곳이나 폐쇄했다. 이것을 현장에서 목격한 시민들은 충격이 컸을 것이다. 그래서 시민들이 던지는 메시지는 진심이 담겼다. 진정으로 철강업체와 종사자들이 용기를 내어 어려움을 극복하기를 바라는 염원이 담겼다. 철강은 포항경제를 지탱하는 큰 축이다. 철강업계 불황은 곧 포항경제 불황으로 이어진다. 시민들이 소리 높여 힘내라고 외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리 업계도 시민들 사랑에 보답해야 한다. 빠른 정상화가 필수다. 포항시민과 함께 웃는 그날을 빨리 맞이하기 위해서는 피나는 노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용기를 내어 힘차게 뛰어야 마침내 가능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