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아연 조건부 집중투표청구 논란…"적법 절차 따라 결의, 타기업 선례도 많아"
내달 23일 고려아연의 임시주주총회를 앞두고 주총 안건으로 집중투표제가 제안되면서 이에 대한 논란이 커지고 있다. 고려아연 이사회의 안건 결의가 법적인 하자가 있다는 MBK파트너스·영풍의 주장에 대해 고려아연은 적법한 절차에 따라 결의된 사안이고, 다른 기업들의 선례도 충분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고려아연 이사회는 지난 23일에 임시주주총회 안건으로 ‘집중투표제 도입을 위한 정관 변경의 건(주주 제안)’과 이 안건의 가결을 전제로 한 ‘집중투표제를 통한 이사 선임 청구의 건’을 적법한 절차에 따라 결의했다.
법조계에서는 해당 주주(유미개발)가 정관 변경의 안건을 6주 전인 12월 10일 제안했다는 점과 다른 기업의 여러 선례를 보면 정관 변경을 전제로 한 주주 제안도 충분히 가능하다는 점에서 절차에 문제가 없다고 판단하고 있다.
하지만 MBK·영풍 측은 고려아연 이사회의 주총 안건을 확정하자 ‘집중투표제 방식의 이사 선임 청구’ 안건 결의에 대해 법적 하자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MBK는 “유미개발의 주주제안 중 집중투표제 도입에 대한 정관 변경을 내용으로 하는 주주제안은 유효하더라도, 집중투표제 방식의 이사 선임 청구를 내용으로 하는 주주제안은 효력이 없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현재 고려아연 정관에 집중투표에 의한 이사 선임을 배제하도록 하는 정관 규정이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이럴 경우 정관 변경을 사전에 해 놔야, 이후 주주가 집중투표 방식의 이사 선임 청구를 할 수 있다는 논리다.
하지만 법조계에서는 주총에서 정관 변경이 가결되는 것을 조건으로, 변경된 정관에 따른 주주제안을 사전에 하는 것(정지 조건부 주주제안) 역시 가능하다는 해석이 많다. 주주총회에서 정관 변경 안건은 가결되는 즉시 정관 변경의 효력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정관 변경 안건이 가결되는 것을 조건으로 후속 안건을 제안하고 주주총회에 상정하는 것이 허용된다는 점에 대해서는 법리적으로나 실무적으로 별 이견이 없다는 게 법조계 의견이다. 이와 관련해 다수의 선례도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실제로 지난 11월 28일 열린 H사 임시주총에서는 이사 수 상한 10인 중 9인의 이사가 선임되어 있는 상황에서 이사 수 상한을 늘리는 정관변경 안건이 가결됨을 전제로 이사 2인을 추가 선임하는 주주제안 안건이 주총 안건으로 상정됐다. 지난 2021년 3월 25일에 열린 HJ사 정기주총에서도 이사 상한 8인 중 8인이 선임되어 있는 가운데 이사 상한을 늘리는 정관변경안이 가결됨을 전제로 하여 이사 3인을 추가 선임하는 주주제안 상정되기도 했다.
다만 정관개정안 자체가 부결되어 이사 추가 선임건이 부결됐지만, 주주 제안으로 주총 안건으로 집중투표제 방식의 이사 선임 청구 안건이 상정되는 것은 문제되지 않았다.
상법 제542조의7 및 제382조의2는 주주가 ‘정관상 집중투표제를 배제하지 않은 회사’에 대해서만 집중투표청구를 할 수 있다는 규정은 없다. 따라서 조건부 집중투표청구를 다른 조건부 안건의 주주제안과 다르게 볼 이유가 없다.
절차적 하자도 없어 보인다. 상법상(제363조의) 총회일로부터 6주 전에 주주제안이 제출돼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는 것은 회사가 제안요청을 받고 소집통지 기타 안건작성 등 총회를 준비하는데 충분한 시간을 보장하기 위해서다. 상법 제542조의 7을 보면 집중투표청구에 대해서도 이와 동일한 취지로 6주의 제한을 두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고려아연은 주주인 유미개발의 주주제안 역시 임시주총 개최 6주 전인 12월 10일에 통지가 이뤄졌다는 점에서 이런 취지에도 부합하고, 절차적으로도 문제가 없다고 설명하고 있다.
다른 주주들에게 예상치 못한 손해를 끼치고 있다는 MBK·영풍 주장도 설득력이 떨어진다. 앞서 언급한 사례들 모두 상법 제363조의2에 따라 6주 전 주주제안을 제출해 주주들에 손해를 끼친 바 없고, 6주 기간 제한을 둔 취지에 부합하게 안건이 상정됐다. 마찬가지로 유미개발의 주주제안도 적법한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