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병성 칼럼 - 선비정신과 사무라이정신
우리나라가 선비정신이 기저(基底)에 깔려 있다면 일본은 사무라이정신이 있다. 선비는 붓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사무라이는 칼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이 두 정신 한쪽은 대의와 의리를 존중한다. 다른 쪽은 극단적인 명예를 존중한다. 두 정신이 좋고 나쁨은 개인의 생각에 따라 다를 수 있다. 그러나 이성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이라면 쉽게 판단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우선 사무라이정신의 극단적인 예가 충격적이다. 왜(倭)의 어느 가난한 홀아비 무사가 떡 장수 이웃집에 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떡장수가 무사의 아들이 떡을 훔쳐 먹었다고 누명을 씌웠다. 이에 격분한 무사는 자신의 칼로 아들의 배를 갈랐다. 그러나 내장 속에는 떡이 없었다. 아들의 누명을 죽음과 맞바꾼 것이다. 눈 깜빡할 사이에 벌어진 끔찍한 광경에 놀란 떡장수는 부들부들 몸을떨었다. 그것을 증오의 눈으로 노려보던 무사는 살려 달라고 애원하는 그의 목을 단칼에 베어버린다. 그리고 자신도 할복(割腹)으로 생을 마감한다.
조선시대 길을 가던 나그네가 양반집 사랑에 묵게 되었다. 저녁을 먹은 후 무심코 밖을 내다보았다. 마당에는 주인집 아이가 구슬을 갖고 놀고 있었다. 그만 실수로 구슬을 땅에 떨어트리자 거위가 그것을 삼켜버렸다. 구슬이 없어진 것을 안 집안이 발칵 뒤집혔다. 그 구슬은 대대로 내려오는 가보(家寶)였기 때문이다. 아무리 찾아도 나오지 않자 주인은 급기야 나그네를 의심한다. 나그네는 아니라고 변명했지만 통하지 않았다. 결국 포박 당한 채 사랑채 기둥에 묶이는 신세가 된다. 그래도 그는 거위가 구슬을 삼켰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하룻밤을 고생하고 난 나그네는 다음날 관가로 끌려가기 직전 주인에게 거위가 눈 똥을 잘 살펴보라고 한다. 다행히 잃어버렸던 구슬은 거위 똥 속에서 나왔다. 주인이 의아해서 “무엇 때문에 거위가 구슬을 삼키는 것을 보았으면서도 얘기를 않고 밤새 고생을 했소?”라고 물었다. 그 말에 나그네는 “내가 어젯밤에 그 사실을 밝혔더라면 당신은 급한 김에 그 자리에서 거위의 배를 갈랐을 게 아니오. 내가 하룻밤 고생한 덕에 거위는 목숨을 건졌고, 당신은 구슬을 찾게 되지 않았소.”라고 답했다. 그 말을 들은 주인의 입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두 상황은 모두 양 국 고전(古典)에 나오는 실제 사례이다. 명예를 위해서는 물불을 가리지 않는 사무라이정신과 미물의 목숨도 중요하게 생각하며 의(義)를 중요시하는 선비정신이 잘 나타난다. 이 두 정신이 본격적으로 부닥친 것이 임진왜란(壬辰倭亂)이었다. 사무라이정신은 주군에 대한 충성심은 단순한 복종을 넘어 명예를 중시하는 것이 핵심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명예를 위해서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선비정신은 인격적 완성을 위해 끊임없이 학문과 덕성을 키우며, 세속적 이익보다 대의와 의리를 위해 목숨까지 바친다.
두 대결은 선비정신의 승리로 끝났다. 개인의 명예보다 대의와 의리를 중요시하는 정신이 승리로 이끈 원동력이 된 것이다. 하지만 전쟁이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었다. 그 후로도 사무라이의 야욕은 쉽게 사그라지지 않았다. 그러나 야욕의 말로는 처참했다. 제국주의의 망상에 젖어있던 전범국에 내려진 심판은 회생불능일 정도로 가혹했다. 그렇게 죽어가는 그들에게 소생의 호흡기를 달아 준 것이 6·25 전쟁이었다. 미국이 전쟁물자 공급국으로 일본을 선택하면서부터다. 그들은 그렇게 다시 살아났다. 우리나라의 비극이 그들을 살린 호흡기가 된 것이다.
요행히 회생한 ‘사무라이 재팬’은 초고속 성장을 거듭하며 미국 다음의 경제대국이 된다. 반대로 일제 식민지와 6·25 전쟁을 겪은 우리는 회생불능 상태에 빠졌다. 일본의 전철을 그대로 밟으며 그들의 경제 종속국으로 전락했다. 그러나 ‘조센징’이라는 수모를 당하면서도 ‘쪽발이’를 넘고자 하는 우리의 노력은 뼈를 깎는 치열함이 따랐다. 일본을 부러운 눈으로만 본 것이 아니라 언젠가는 그들을 넘어설 것이라는 각오에 핏발이 섰다. 30년 이상 뒤처진 거리를 좁힌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하지만 꿈이 희망의 불씨였다. 그리고 마침내 그들을 따라잡았다. 2024년 1인당 국민소득이 앞지른 것이다. 또 한 번 선비정신의 쾌거였다.
세계은행은 지난해 8월 대한민국을 ‘중진국 함정’을 극복한 대표 사례로 꼽았다. ‘성장 슈퍼스타’라고 추켜세우며 성과를 인정했다. 그러나 국내 전문가들의 평가는 몹시 인색하다. 저성장 늪에 빠진 것만 지적한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우리 스스로 성과를 깎아내릴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동안 피나는 노력을 되새김질하면서 또 다른 ‘다이내믹 코리아’를 꿈꾸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부는 경제 안정과 성장을 위한 정책 추진에 더욱 신경 써야 한다. 기업은 기술 혁신과 투자 확대로 경쟁력을 강화해야 한다. 개인은 경제 주체로서의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 일본이 따라오지 못하도록 앞서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