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병성 칼럼 - 큰 어르신의 영면(永眠)

황병성 칼럼 - 큰 어르신의 영면(永眠)

  • 비철금속
  • 승인 2022.02.16 06:05
  • 댓글 1
기자명 황병성 bshwang@snm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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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나 가정, 기업이 문제없이 굴러가려면 제대로 된 어른이 있어야 한다. 오랜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어른의 지혜야말로 어려움을 극복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하지만 요즘 사회적 비판 중 하나가 ‘어른다운 어른이 없다’라는 것이다. 이 비판이 제기되는 것은 어른들의 잘못이 크다. ‘꼰대’로 치부해 버리는 젊은이들의 잘못도 있다. 어른들은 ‘잔소리꾼’이라는 선입관에서 나오는 비판이기도 하다.    

이러한 이유로 가정에서나 사회에서 두 세대는 갈등의 골이 깊다. 늙은 사람들은 젊은이를 이기적이고 패기가 부족하다고 지적한다. 반면 젊은 사람들은 늙은이를 융통성 없는 막무가내식이라고 비판한다. 양 세대는 마치 합의(合議)는 없고 평행선만 달리는 철도의 레일과 같다. 하지만 젊은 사람들은 늙은이를 대놓고 무시할 수 없다. 자신들의 패기와 견줄 수 없는 현명한 지혜를 가졌기 때문이다. 

‘한비자’에는 ‘노마지지(老馬之智)’라는 고사가 나온다. 고죽국을 정벌하러 떠났던 제나라 군사들이 산중에서 길을 잃게 되자 재상이었던 관중이 늙은 말을 풀어서 길을 찾을 수 있었다는 얘기다. 공자도 사냥꾼에게서 이 같은 가르침을 얻었다. ‘큰 새는 경험이 많아 위기에 곧잘 대처하므로 잡기가 어렵고, 어린 새들은 경험이 없고 먹이에 집착하기 때문에 잡기 쉽다’라는 것이다. 그 이치가 인간의 삶과 같다는 것을 알고 제자들에게 가르침을 주었다.

이렇듯 나이를 먹었다고 무시할 수 없는 것은 어른들의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지혜 때문이다. 겨울이 막바지를 치닫는 2월 11일 급박히 전해진 비보에 하늘이 무너지는 듯 놀랐다. LS니꼬동제련 구자홍 회장의 별세 소식이 속보를 타고 우리 업계를 슬픔으로 몰아넣었다. 옆집 할아버지처럼 인자한 미소를 기억하기에 안타까움은 컸다. 고인은 한국비철금속협회장을 맡아서 우리 업계의 발전을 위해 힘썼다. 그가 남긴 족적이 위대하기에 애틋한 마음은 강물처럼 깊고 바다처럼 넓었다. 

“너무 자상하고 따뜻한 분이셨다. 좀 더 오래 살아계셔서 많은 가르침을 주셨으면 좋았을 텐데 너무 빨리 돌아가셔서 매우 아쉽다”라는 것이 조문을 마친 사람들의 공통된 소회(所懷)였다. 그 말 속에는 슬픔과 안타까움이 묻어났다. 어른다운 어른을 더는 볼 수 없게 됐다는 아쉬움에 눈시울을 붉히는 그들의 마음을 백번 공감할 수 있었다. 소탈하고 온화한 성품으로 직원들과 소통하며 건강한 기업문화를 정착시키는 데도 노력했다는 평판은 그의 훌륭했던 삶을 잘 대변한다. 

남쪽 어디선 가에는 파릇한 새싹이 돋아날 것이다. 반가운 봄 소식 대신 슬픈 비보에 5일 동안 우리는 고인을 기리며 슬퍼했다. 보내기 싫지만 그를 떠나보내야 한다. 다만,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것은 생전 웃어른으로서 그의 가르침이다. 경영이든, 더불어 살아가는 이웃에 대한 베풂이든 모범적으로 살았던 이승에서의 삶은 젊은이들에게는 큰 교훈으로 남을 것이다. 길을 잃었을 때 늙은 말을 풀어 길을 찾았듯이 그의 삶 속에도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는 지혜가 분명히 담겨 있을 것이다.

‘어른다운 어른이 없다’라는 세태의 비판에도 올곧게 살았던 고인이야말로 진정 큰 어른으로서 소명을 다했다. “좋은 어르신이셨는데 상당히 안타깝다”라는 빈소를 찾은 SK그룹 최태원 회장의 마음이 곧 우리 모두의 마음이라는 것을 그는 잘 알 것이다. 그렇기에 영면으로 가는 길은 외롭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는 실천으로 이 세상에 많은 가르침을 남겼다. 그 가르침을 이어받아 좋은 일로 승화시키는 것은 이제 우리의 몫이 됐다. 그가 애정으로 돌봤던 회사는 물론 우리 업계 종사자의 책임이 커졌음을 의미한다. 

고인이 세상과 마지막 작별을 고하던 15일  바람이 유난히 차가웠다. 장례 행렬 속 가족들은 슬프게 흐느꼈다. 따뜻하고 인자했던 그를 더는 볼 수 없다는 슬픔에 엉엉 소리 내어 우는 사람도 있었다. 그 슬픔의 끝자락을 잡고 삼가 고인의 명복을 오래오래 빌었다. 우리업계도 영원한 안식을 기원하며 슬프게 그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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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 2022-02-25 16:50:52
좋은 글입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