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태풍에 넘어진 포항, 수해 복구 '안간힘'

[르포] 태풍에 넘어진 포항, 수해 복구 '안간힘'

  • 철강
  • 승인 2022.09.16 0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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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명 (경북 포항)백종훈 기자/엄재성 기자 jhbaek@snm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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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강단지 곳곳에서 수해 흔적…물류 흐름 재개 불구 복구작업 여전히 진행 중
소재 및 부자재 수급난 우려…주요 공장 정상생산 어려움 남아
수해 지원 확대 요구 목소리 높아…철강공단, 완벽 복귀까지 비상체제 유지
포항시 집계, 사유시설 피해 1조7천억원 추산…기업 피해 30% 넘어, 대송지구 피해 가장 커
철강산업 파급효과 감안, 산업위기 선제대응지역 지정 필요할 듯

포항역에 내리자 미안함이 더해지며 발걸음이 한층 무거워졌다. 최근 태풍 '힌남노'가 할퀴고 간 포항의 수해 현장들을 뒤늦게나마 직접 둘러보기로 해서다. 태풍이 지나간지 2주일 가까운 시간이 흘렀음에도 아직 수해 복구 작업이 한창이라는 소식에 본지 취재진이 현장 취재에 나섰다.

포항 지역 철강업계에 따르면 9월 6일 태풍 '힌남노'가 포항에 뿌린 시내 강우량은 지역 별로 동해면 541mm, 오천읍 509.5mm, 대송면 453mm로 나타났다. 이들 집중 피해 지역 평균 강우량은 501.1mm를 기록했다. 수년 치 강우량이 하루 단 몇 시간만에 한 곳에 쏟아져 내린 것이다. 

이처럼 무거운 발걸음과 쏟아진 빗물 이상의 책임감을 안고 먼저 포항 철강산업단지로 이동했다. 단지 내 도로는 대체적으로 정돈된 느낌이었지만 여러 곳에서 수해의 흔적을 찾을 수 있었다. 

(사진=철강금속신문)
(사진=철강금속신문)

메인 도로 양 옆 가장자리로 자갈과 진흙, 쓰레기 등이 뒤엉켜 있었고 부러진 나뭇가지들도 길가에 널브러져 있었다. 차량 운행에 큰 지장을 초래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간혹 도로 구석에는 진흙이 발목 높이로 쌓인 곳도 있었다. 주인을 잃은 듯한 침수 차량들도 보였다. 차량 내부에는 진흙과 각종 이물질들이 들어차 있었다. 외부는 온통 흙탕물로 뒤덮였던 흔적이 가득했다. 복구 인력으로 보이는 한 사람이 커다란 삽을 이용해 차량 사이로 진흙과 쓰레기를 끊임없이 퍼다 나를 뿐이었다. 

메인 도로에서 단지 내 각 업체로 뻗어 있는 이면 도로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살수차가 돌아다니며 도로에 연신 물을 뿌렸다. 길 위에 붙어 있는 진흙을 씻어내기 위함이었다. 정도가 심한 곳은 지게차와 포크레인 등 중장비를 이용해 진흙 등 폐기물을 처리해야 할 수준이었다.

(사진=철강금속신문)
(사진=철강금속신문)

상황을 살피고 이면 도로에서 메인 도로로 재진입 하려는데 지나가는 화물 트럭 몇 대가 눈에 들어왔다. 단지 내 빗물에 소실됐던 도로의 통행이 일부 뚫리며 물류 흐름이 재개된 것을 두 눈으로 확인했다는 게 컸지만 무엇보다 실려있는 선재와 코일 등에 진흙이 묻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단지 내 어느 업체 관계자에게 물었더니 "도로 통행이 어느 정도 가능해지면서 진흙 등으로 스크랩 해야 할 물량과 살릴 수 있는 물량을 구분짓기 위한 작업부터 차츰 이뤄지고 있는 듯 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제서야 공장 주변 도로 등 외부 청소를 마무리 짓고 내부 시설 청소와 점검에 들어갔다"면서 "단지 내 업체 관계자 대부분 쉬는 날 없이 수해 복구에만 매달리고 있는 상황"이라고 안타까워 했다.  

이후 업체 별 수해 상황을 보다 면밀히 살펴보기 위해 산업단지 내에 위치한 각각의 공장으로 이동했다. 이동 시간과 동선을 고려해 선재업계, 특수강, 합금철 공장 순으로 돌기로 했다. 

선재업계의 경우 현대종합특수강은 공장 침수 피해를 입은 상태였고 복구를 위해 추석 연휴 기간에도 구슬땀을 흘리며 설비 보수에 힘을 쏟았다. 하지만 여전히 공장을 정상 가동하지 못하고 있었다. 

대호특수강과 세아특수강은 상대적으로 사업장이 높은 지대에 있어 침수 피해를 입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들 역시 포스코의 조업 중단으로 소재 수급난, 질소 등 각종 열처리용 가스 공급난 등에 시달리며 공장을 정상적으로 가동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코스틸의 경우 침수 피해는 없었으나 산사태로 연강선재를 생산하는 1공장 야적장에 토사물이 덮치면서 펜스 등 일부 시설물이 파손된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생산 설비에 피해가 있지는 않아 공장 가동은 정상적으로 하고 있었다.

(사진=철강금속신문)
(사진=철강금속신문)

이 지역 선재업계 관계자는 “선재업계의 경우 침수로 인한 피해는 그리 크지 않은 편"이라며 "하지만 침수 피해를 복구하더라도 소재와 부자재 수급이 어려워 공장을 정상 가동하기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건설과 자동차 등 주요 전방산업 관련 수요가 점차 증가하는 시점에 소재와 부자재 수급난이 장기화될 것으로 예상되면서 국내 공급이 부족해질 것으로 보인다"며 "특히 중국이 철강 감산 조치를 취하고 있어 소재 수급난이 당초 예상보다 심각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 상황이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특수강과 합금철을 생산하는 동일산업은 봉강사업부 공장 가동을 중단한 상태였다. 봉강과 빌릿, STS와 비철금속 등의 절단 및 연마를 위한 연마석과 절단부품을 생산하는 제일연마공업 주식회사 역시 포항 공장 생산을 중단한 상태였다.

(사진=철강금속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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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일산업 관계자는 “정확한 공장 가동률을 알려주기는 어려운 상황이지만 당초 예상보다 복구가 늦어지는 것은 맞다”며 “연휴 기간에도 임직원들이 피해 복구에 총력을 기울였지만 피해가 예상보다 커서 단기간 내에 생산을 정상화 하기는 어려울 수도 있다”고 말했다.

합금철 제조업체 심팩 또한 이번 태풍으로 포항에 위치한 합금철 공장 침수 피해를 입었다.

(사진=철강금속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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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팩 관계자는 “포항 1공장과 2공장 모두 침수 피해가 발생하여 현재 복구를 진행하고 있다"며 "다행스럽게도 일부 설비는 가동을 재개했고 9월 하순부터는 1공장과 2공장 모두 정상 가동이 가능해서 원료의 경우 재고 물량이 있어 당분간 수급에 큰 어려움은 없다"고 말했다. 다만 "포스코의 조업 중단으로 합금철 수요가 다소 감소할 것으로 우려되고 있으며 피해 복구가 장기화될 경우 경영에 상당한 압박을 줄 것으로 우려된다”고 부연했다.

세아제강은 침수 피해가 발생해 현재 설비를 복구 중에 있으며 일부 생산라인은 가동을 재개한 상태였다.

(사진=철강금속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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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측은 “현재 침수 피해를 복구하는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으며, 이달 말부터는 정상적인 공장 가동이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며 "포스코의 침수 사태로 우려하는 이들도 있지만 당사는 광양제철소에서 소재를 많이 공급받아 와서 고객사의 주문에 대응하는 데는 큰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산업단지 내 대부분 업체들은 태풍으로 인한 피해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무엇보다 이야기를 나눈 산업단지 관계자들 모두, 수해로 인한 피해 지원을 지금보다 더 큰 폭으로 늘려야 한다고 입 모았다. 침수 피해를 복구하더라도 포스코의 조업 중단으로 원부자재 수급에 어려움을 겪거나 수요 감소로 인한 피해가 커질 것으로 뻔히 예상되서다. 앞서 포항철강산업단지 내 기업들은 9월 14일 포항철강산업단지 관리공단 회의실에서 열린 '정상화 비상경제대책회의'를 통해 단지 내 폐기물 처리와 인력 및 장비 등을 포함한 복구 지원책을 내놓을 것을 촉구했다.

포항철강산업단지 관리공단 관계자는 이 같은 산업단지 내 상황에 대해 "수해 완벽 복구 전까지 비상체제를 항상 유지하며 긴장의 끈을 늦추지 않고 있다"며 "관리공단 관계자들 역시 눈코 뜰 새 없이 바쁘지만 산업단지 식구들과 고통을 조금이나마 함께 한다는 생각으로 맡은 바 업무에 최선을 다하는 중"이라고 강조했다. 

세아제강 공장 방문과 포항철강산업단지 관계자 인터뷰를 마지막으로 산업단지 둘러보기 일정을 끝내고 포항시청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태풍으로 인한 포항 지역 전반의 구체적 피해 상황과 이에 따른 후속 대책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자 함이었다.

포항시청에 도착한 뒤 관계자 안내를 받아 관할 부서 업무 공간으로 들어갔다. 수해 복구 조치가 최대치로 진행됨에 따라 시청 직원들 너나할 것 없이 모두 분주해 보였다. 이윽고 담당관을 소개 받아 현재 포항시 전반의 구체적 피해 상황과 지자체 차원의 최우선 해결 과제가 무엇인지에 대해 물었다.

포항시청 관계자에 따르면 현재 포항시의 주요 태풍 피해 현황은 크게 ▲인명피해 ▲공공시설 피해 ▲사유시설 피해 ▲기업 피해로 나뉘어 지속 모니터링을 받고 있는 중이다.

인명피해는 지금까지 사망 9명, 실종 1명, 부상(구조) 2명으로 나타났다. 최초 이재민은 1천여명 가까이 발생했으며 이들 모두 77개 대피소로 거처를 옮긴 상태다.

공공시설 피해액은 잠정 310억 규모로 파악됐다. 피해 건수로는 총 1,940건이며 도로 피해 443건, 하천 피해 269건, 산사태 및 임도 피해 64건, 기타 피해 1,164건으로 나타났다.

사유시설 피해액은 무려 1조7천억원으로 조사됐다. 피해 건수로는 주택·상가 파손 및 침수 피해 1만2,263건, 농업 피해 2,2023ha, 어업 피해 33개소, 단수 및 단전 피해 6,109세대, 차량침수 피해 8,463대로 나타났다. 이 과정에서 재난 폐기물이 9,560톤이나 생겨났으며 죽도시장 등 전통시장 16개소가 침수됐다.

(사진=철강금속신문)
(사진=철강금속신문)

기업 피해는 포항시 기업체 수 1,287개 대비 30.3%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수로 환산하면 390개 기업이 수해를 당한 것이다. 이 중 대송지구에 속해 있는 기업들의 피해가 컸다. 피해율로는 94.1%로 가장 높았다. 그 다음은 영일만산단(46.9%), 포항철강산업단지(28.7%), 기타 산단 및 개별기업(23.6%) 순이었다. 다만 드러난 수치보다 포스코 조업 중단에 따른 경제적 손실이 상당할 것으로 우려되고 있는 상황이다. 

(사진=포스코 제공)
(사진=포스코 제공)

이 같은 태풍 피해는 포항 지역 지방천인 '냉천'이 범람하면서 그 크기를 키운 탓에 더욱 치명적이었다. 냉천은 포항시 오천읍에서 포스코 포항제철소를 왼쪽에 두고 바다로 흐른다. 이 냉천 범람으로 인근 A아파트 지하주차장에 물이 차면서 7명의 생명을 앗아가는 등 극심한 피해를 남기기도 했다. 냉천에 인접한 포스코 포항제철소 역시 불어난 물에 조업을 중단하는 등 극심한 피해를 입었다.

포스코의 침수 피해는 단순히 철강산업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게 큰 문제다. 조업 중단이 장기화될 경우 자동차와 조선, 기계 등 국내 주력산업이 큰 타격을 받을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번 침수사태로 인해 사실상 국내 공급이 중단되는 품목도 있다. 전기강판이 대표적인데 이 제품은 포항제철소에서만 생산했던 터라 조업 중단이 장기화될 경우 모터와 변압기 제조업체들은 큰 타격을 받을 것으로 보이며, 대표적 미래산업인 전기차 또한 타격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또한 포스코모빌리티와 포스코강판 등은 자동차와 전자산업에 소재부품을 공급하는 업체들이기 때문에 관련 산업계 전체에 악영향이 올 것으로 예상된다.

포항 철강산업단지에 위치한 현대제철과 동국제강 공장도 침수 피해가 큰 상황이다. 특히, 동국제강 포항공장은 아직 일부 가동도 재개하지 못한 상황이며, TCC강판 또한 설비 가동을 재개하지 못한 상황이다. 

이로 인해 포스코가 생산하는 판재와 선재 뿐만 아니라 봉형강류 공급에도 상당한 차질이 빚어질 것으로 보이며, 팬데믹 이후 수요가 급증한 석도강판 공급도 차질을 빚을 것으로 우려된다.

아울러 포항시는 이 같은 문제점을 인지하고 포스코 등 지역 거점 기업은 물론 경상북도, 산업통상자원부와도 협력해 이 지역 정상화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우선 냉천 범람을 원천적으로 막기 위한 인프라 재구축에 돌입했다. 동시에 지난 9월 6일 침수 피해 발생 이후 8일 동안 초대형 양수기 2대와 수백대의 중소형 양수기를 동원해 총 190만톤에 달하는 물을 우선적으로 빼내었다. 이후 진흙을 제거하는 준설차(바큠카) 60여대와 민관군 인력을 대거 투입해 시내 곳곳을 재정비 하고 있다. 복구 진행율은 현재 98%에 이른다. 명절 연휴와 휴가를 모두 반납하고 밤샘을 불사하며 얻어낸 작은 성과다. 다만 남은 2%가 사실상 수해 복구의 핵심으로 알려져 있다. 바로 제철소 가동 '완전 정상화'다.  

이에 포항시는 2%를 채우기 위해 정부로 하여금 포항시를 빠른 시일 내에 '산업위기 선제대응지역'으로 지정케 하는 것을 현재 최우선 해결 과제로 뒀다. 관계자에 따르면 현재 '산업위기 선제대응지역'으로 지정되면 지금보다 더 큰 폭의 지원을 국가 차원에서 받을 수 있다. 선제대응지역이 아닐 경우 제한된 폭의 정부 지원만 받을 수 있다. 포항시는 행정안전부 9월 7일자 고시에 의거해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된 상태다.

참고로 산업위기 선제대응지역으로 지정되려면 '지역 산업위기대응 및 지역경제 회복을 위한 특별법 제8조'에 따라 대규모 재해 및 질병이나 국제정세 변동이 발생한 경우여야 한다. 이 때 시·도시사는 산업위기 선제대응지역 계획을 수립해 산업통상부 장관에게 지정을 신청할 수 있다. 또 같은 법 시행령 제6조에 따라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되어 주된 산업의 현저한 악화가 우려되거나 대내외 산업환경 변화 등에 따라 지역의 주된 산업에 대한 대응이 시급히 요구되는 경우여야 한다. 아울러 산업통상자원부의 '지역 산업위기대응 제도의 지정기준 등에 관한 고시'에 따라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되어 지역의 주된 산업의 휴·폐업, 대량 실업 등 산업 활동 위축에 대한 우려가 현저한 것으로 판단되는 경우여야 한다.

포항시청 관계자는 "포항의 철강산업은 국가산업 및 경쟁력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차지한다"며 "철강산업의 위기는 건설, 자동차, 조선 등 연관 산업에 미치는 파급효과가 크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세계 철강시장 경쟁이 과열되고 있는 상황에서 국가 차원의 대책이 시급"하다며 "지역 산업 위기 극복을 위해 최대한 신속히 포항을 선제대응지역으로 지정해주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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