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저 등에 업은 日 철강재, 한국 시장 교란
日 해외 생산·포스코 현지 생산 등 역수입 물량도 늘어
中 수입 물량 최근 다시 늘어... 경각심 높아져
산업 경쟁력 중추·국민 안전 직결 철강산업 보호해야
최근 중국산 철강재 수입이 다시 늘어나고 있지만, 앞서 몇 년간을 살펴보면 중국산 수입이 다소 주춤한 상황이었다. 이 기간 엔저를 등에 업은 일본산 철근과 H형강 등 철강재 수입은 크게 늘었다. 여기에 H형강을 중심으로 일본 업체 해외 생산 물량, 포스코의 해외 현지 법인 생산 물량 등도 국내 시장 점유율을 높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기초 소재 공급 산업으로서 철강산업은 한 나라 산업 전반의 발전에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한다. 더불어 건설 자재로 쓰이는 철근과 H형강 등은 국민 안전에 직결되는 중요 철강재라 할 것이다. 이번 기사에서는 국내 철강 시장에서 점유율을 높이고 있는 일본산 철강재와 일본 자본이 투입된 제3국 생산 철강재의 국내 수입 실태를 살펴보고, 이에 따른 대응책을 살펴봤다.
■국내 시장 교란 中 물량 준 사이... 日 물량 증가
앞선 몇 년간 중국산 저가 철강재로 교란됐던 국내 시장에서 중국산 철강재가 줄었다. 중국이 팬데믹 기저효과에 따른 자국 내 수요 충당에 바쁜 데다 탄소 중립 대응과 환경 규제 등으로 생산 감축이 이어지면서 해외로 나가는 물량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다만, 최근 들어 다시 기지개를 켠 중국 업체들은 경쟁력 있는 가격으로 한국 시장을 두드리고 있어 경각심을 놓을 수는 없는 상황이다.
한국철강협회에 따르면 중국산 철강재의 국내 수입 물량은 지난해 674만2천톤으로 전년 대비 10.7%가 감소했다. 중국산 철강재 국내 수입은 2018년과 2020년에도 각각 전년 대비 34.5%, 29.2%가 줄어든 바 있다.
다만, 중국산 철강재의 수입 감소를 다른 나라들이 채우면서 수입산 철강재 면모가 오히려 다양해지는 부작용도 나타나고 있다.
일례로 지난해 일본 철강재의 국내 수입은 543만4천톤으로 전년 대비 13.7%가 늘었다. 중국산 철강재가 줄어든 틈새시장이 생긴 데다 엔저 여파로 일본산 철강재의 경쟁력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특히, 일본산 철근과 H형강의 국내 수입량 증가세가 눈에 띈다. 지난해 일본산 H형강 수입은 18만8천톤으로 전년 대비 30.8%가 증가했다. 같은 기간 전년 대비 58.0%가 늘어난 중국산 H형강 수입은 6만9천톤 수입에 그쳤다.
가장 많은 철강재를 한국으로 수출하는 중국이지만 지난해 중국의 한국향 철근 수출과 H형강 수출은 모두 두 자릿수 감소했다. 이는 중국산 철근과 H형강이 자국 수요를 충당하는 데 바빴던 데다, H형강의 경우 덤핑방지관세 및 가격 약속 제도를 통해 한국향 수출 가격의 하한선을 운영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업계에서는 또 2020년부터 일본 내 공급 초과분을 한국으로 떠밀듯이 싼값에 수출하고 있는 상황 속에서 지난해 일본산 H형강 수입량이 급증한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일본산 철강재 수입은 전 제품에서 증가하는 가운데 특히 건설용으로 많이 쓰이는 철근, 형강, 후판의 수입량이 큰 폭으로 증가했다.
철근의 경우도 지난해 일본산 수입은 37만9천톤으로 전년 대비 5.1%가 줄기는 했지만, 이는 2021년에 전년 대비 137.0%가 증가한 39만9천톤을 한국으로 수출한 기저효과 영향이 컸다. 게다가 지난해 일본산 철근의 국내 수입 시장 비중은 61.2%를 차지했다. 반면, 전통적으로 가장 많은 물량이 들어오는 중국산 철근의 지난해 수입은 20만톤으로 전년 대비 48.0%나 감소했고, 국내 수입 시장 비중도 32.3%로 줄어들었다.
이처럼 철근과 H형강 등 건설 자재 수입량 중 중국산 철강재 수입 감소분을 일본산 철강재가 파고드는 흐름은 2018년 이후 최근 들어 갈수록 뚜렷해지는 모양새다.
■산업 경쟁력 중추 철강산업 보호해야
철강업은 소재 공급산업으로서 국가 전반 산업의 기초를 만들고, 안정적인 제품 공급을 통해 자국 산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데 중추적인 역할을 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자국 철강재 시장을 수입산에 내준다면 향후 철강 제품의 가격은 폭등하고 제품의 퀄리티도 담보할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높다.
과거 조선산업의 경우 불경기 때 후판 수요가 줄고 가격이 떨어지자 중국과 일본에서 생산된 수입산 후판 제품이 국내 시장을 잠식했다. 이 여파로 국내 후판 생산업체들은 생산능력을 감축하고 공장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후 조선 경기가 살아나 후판 수요가 늘어나자 공급량을 갑자기 늘릴 수 없는 국내 공급사 사정상 후판 가격이 크게 오르는 부작용을 피할 수 없었다. 이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국내 조선사들에 돌아갔다.
지금은 건설 철강재 위주로 수입산이 시장을 교란하면서 조선산업에서 일어났던 상황이 건설 철강재 시장에서 다시 벌어질 조짐이 보이고 있다. 만약 국내 중소 철강사들이 수입산에 버티지 못하고 문을 닫는다면 향후에는 조선업계가 겪었던 전철을 국내 건설사들이 반복할 수밖에 없다. 지금부터라도 수입 건설 철강재에 대한 물량 및 가격 통제를 통해 철강사와 건설사를 보호해야 할 것이다.
이와 관련 현대제철 관계자는 "최근 현대제철은 국내 수요가 위축되어 수출 확대에 힘쓰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수입이 증가하는 만큼 수입 원가 수준으로 강경 대응할 방침이다"라고 강조했다.
■제3국서 들어온 日 H형강 물량 증가 '눈길'
일본산 철강재 물량 증가는 단순하게 일본산 수입 증가에 그치지 않는다. 해외 현지 생산으로 제3국에서 들어온 철강재 중에서도 일본 업체 제조 물량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포스코가 일본 야마토와 합작한 PY-VINA(구SS VINA)의 형강 물량도 빼놓을 수 없다. 일본 야마토가 49% 지분을 보유한 PY-VINA는 수출 시장을 다변화하려 노력하고 있지만, 한국향 수출도 일정 부분 유지하고 있다.
바레인의 SULB 역시 바레인 Foulath Holding과 일본 야마토가 각각 51%와 49%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야마토가 지분을 보유한 이 업체도 한국향 수출을 늘리고 있다.
국내 철강업계는 이처럼 베트남과 바레인 등 일본과 포스코 합작 또는 일본 기업 투자 해외 생산 법인의 H형강 물량 등이 해당 국가 내에서 소화되지 못하고 한국으로 역수입되는 실정인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지난해 PY-VINA가 있는 베트남에서 한국으로 수출한 H형강 물량은 12만8천톤 수준이었다. 야마토가 투자한 SULB가 있는 바레인의 한국향 H형강 수출은 지난해 5만8천톤 수준을 기록했다.
철강업계 한 관계자는 "특히, 야마토는 베트남과 바레인 등 타국에서 생산하는 제품을 일본에 수출하지 않고, 한국을 큰 중심 수출국으로 두고 일부 제품만 주변국으로 수출하는 상황"이라면서 "야마토의 수출 시장 운영 정책에 의구심이 들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수출 주력 국가로서 한국의 철강 시장은 수입에 대응해 자국 철강산업을 보호할 수 있는 방법이 거의 전무하다. 이 때문에 인근 지역에서 무차별적으로 한국 시장을 공략해도 철강사들이 손을 쓸 방법이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일본 기업 지분이 높은 베트남과 바레인의 형강 제조업체마저 한국 시장 공략에 나서면서, 국내 업계 관계자들의 경계심이 높아지고 있다.
2015년 국내 철강업계는 국내 시장을 교란하던 중국산 H형강에 대해 반덤핑 제소를 진행했고,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과 업계의 노력으로 중국산 수입 감소를 이뤄냈다. 그러나 최근 들어서는 앞서 언급한 대로 일본산 제품이 중국산 물량을 대체하고 있는 실정이다.
국내 철강업계는 이런 추세가 계속된다면 중국산 H형강이 한국 시장을 교란했던 상황이 되풀이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만약 일본산이나 일본 업체의 해외 생산 H형강 제품이 지속적으로 한국 수출 물량을 늘려 시장을 교란한다면 국내 철강업계는 중국산 제품에 대해 반덤핑 제소를 진행했던 것처럼 일본산 철강재에도 적극적인 대응을 통해 자국 시장을 보호해야 한다는 자각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중국의 H형강 수입이 줄어든 틈을 타 일본산을 비롯한 3국산 제품 수입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상황"이라며 "만약 이런 상황이 지속된다면 국내 철강사들의 어려움이 가중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반덤핑 및 상계 관세 제소를 비롯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적극적으로 대응할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국민 안전 직결되는 건설 자재 불법·편법 수입 막아야
철강산업은 자국 산업에 안정적인 철강재 공급을 통해 시장을 보호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일본산 철강재의 수입 물량이 장기간 증가할 경우 건설 시장 교란을 통해 철근을 생산하는 국내 중소 철강사는 물론 국내 전체 철강사들이 큰 손실을 입을 가능성이 높다. 이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안전 관리와 건설자재 확보 등에 있어 건설사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과거 중국산 H형강이 저가로 국내 시장을 교란했던 점을 큰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
2010년대 초반 중국산 H형강은 연간 70만톤 이상의 물량이 국내 시장에 유입됐으며, 당시 국산 제품 유통가격을 급격하게 끌어내린 바 있다. 이처럼 저가로 들어온 중국산 H형강은 불법·편법 수입 논란과 불량 철강재 우려 등으로 국민 안전을 위협하는 문제를 낳기도 했다.
중국산 H형강 편법 수입에 따른 악용 사례와 피해를 보면 △부분 가공을 통해 무관세 수입 후 국내 시장에서 다른 용도로 사용하는 경우 △관세 포탈, 유통질서 훼손은 물론 용도 변경 사용으로 인한 국내 건축물의 안전 위협 등이 있다.
특히, 최근 철강 유통 시장에는 H형강에 철판을 용접한 형태의 편법 수입 철강재가 등장하기도 했다. 이는 H형강 양 끝단에 일명 ‘마구리판’이라 불리는 엔드 플레이트(End-Plate)를 붙이고 철판의 네 귀퉁이에 구멍을 뚫은 구조로, 구멍을 볼트와 너트로 조립하여 건축물의 기둥과 보의 용도로 활용하는 제품이다. 이 제품은 HS코드(수입품목 분류코드) 기준 ‘기타 철구조물’로 수입된다.
문제는 이 제품이 국내에 수입된 뒤 제품 끝단에 용접된 마구리판을 제거하여 H형강으로 사용될 소지가 크다는 데 있다. 실제 유통가에선 이 같은 상황이 포착되기도 했다.
수입 과정에서 이 같은 편법을 사용하는 이유는 H형강 본래의 HS코드로 수입할 경우 덤핑방지관세 32.7%가 적용되지만, ‘기타 철구조물’로 수입할 경우 관세가 적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즉 정상적으로 수입된 H형강 대비 시장에서 월등한 가격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
더구나 이번에 편법 수입된 가공 H형강은 JIS SS400 강종으로 국내 표준 규격인 KS 기준에 부적합한 제품이다. 즉 KS 기준을 적용한 건설 현장에 해당 제품이 사용될 경우 건설기술진흥법을 위반하는 결과로, 항복강도 미달로 인한 구조물 붕괴 가능성까지 우려됐다.
이처럼 국내 시장을 교란하는 중국산 H형강에 덤핑방지관세가 적용된 시점은 지난 2015년으로, 당시 저가 중국산 철강재가 국내 유통 시장을 점령하며 국내 철강업계가 고사 위기에 몰렸었다. 당시 당국과 업계에선 이러한 상황을 심각하게 받아들여 지난한 과정을 거쳐 중국산 철강재에 덤핑방지관세를 부과하는 제도를 마련했다.
게다가 품질을 보증할 수 없는 수입 철강재의 범람으로 경주 마우나리조트 붕괴 사고가 발생하는 등 국민 안전이 심각하게 위협받자 모든 수입 철강재에 대한 유통이력제를 신설하는 등 관리를 강화했다.
그러나 최근 발생한 중국산 H형강의 편법 수입은 어렵게 마련한 국내 철강산업에 대한 최소한의 보호장치를 무용지물로 만들어 다시금 위기 상황을 초래할 단초가 되고 있다.
철강업계 한 관계자는 "작게는 국내 철강산업의 경쟁력을 갉아먹고, 크게는 국민 안전을 위협하는 단초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일부 수입 업체의 이번 편법 수입을 단지 개인적 이익 추구로만 치부할 수 없다"라면서 "국내 산업 보호는 물론 국민 안전을 위한 당국의 관심과 수입업체의 자성이 절실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