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병성 칼럼 - 장인 정신이 일본의 발목을 잡았다

황병성 칼럼 - 장인 정신이 일본의 발목을 잡았다

  • 철강
  • 승인 2024.09.02 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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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명 황병성 bshwang@snm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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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인 정신(匠人精神)하면 일본을 떠올린다. 특히 특유의 정갈함과 장인 정신을 담은 일본의 노포 요리는 미식가들 오감을 자극한다. 이 노포들은 몇 세대를 이어온 가업 형태가 많다. 가문의 요리 비법은 대를 이어 전하며 더 좋은 맛으로 발전시킨다. 기술도 마찬가지다. 일본이 기술 강국이 된 것은 장인 정신이 토대가 됐다. 소재, 부품, 장비의 경쟁력이 세계 최고를 자랑하는 것이 이것을 입증한다. 한 우물만 파는 끈질긴 집념의 산물이기도 하다. 

이들의 장인 정신은 세계가 부러워했다. 경제 대국으로 성장한 원동력이었기 때문이다. 과거 미국 다음 경제력을 갖출 수 있었던 것은 이것이 출발점이다. 일본의 장인들은 각 분야에서 수십 년 동안 기술을 연마해 완벽한 제품을 만들어 냈다. 이러한 정신이 물건을 만들고 판매하는 시스템에 녹아들였으니 세계 최고가 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그 기술이 자동차와 전자, 조선, 철강 등으로 옮겨가 성공 신화를 만든 것이다. 이처럼 ‘메이드 인 재팬’ 제품이 세계를 휩쓸자 그들은 마치 구름 위를 걷는 듯 몽롱한 꿈속에서 행복했다.

일본은 1960년대 이후 30여 년간 고도 경제성장을 이어갔다. 1960년대는 10%, 1970년대는 5%, 1980년대는 4%에 달하는 경제 성장 덕분에 세계 2위 경제대국으로 우뚝 설 수 있었다. 그러나 버블경제 꿈속에 빠져 행복했던 순간은 영원하지 않았다. 거품이 심했던 사상누각의 경제는 처참히 붕괴했다. 그 결과 30년 이상 저성장 기조에 빠져 헤어날줄 모르고 있다. 그러는 동안 자기네를 따라오지 못할 것이라고 장담했던 한국이 야금야금 쫓아와 일본을 추월했다. 한 수 가르쳐 주며 훈수를 두던 철강 산업을 비롯해 반도체, 조선 등은 저만치 앞서가고 있다.

일본의 자존심에 큰 상처를 낸 것은 전자산업이 추월당한 것이다. 전자제품 하면 일본이 최고이던 시절이 있었다. 이것은 세계적 추세였다. 우리도 그랬다. 텔레비전, 카메라, 게임기, 녹음기 등 일본제품을 가져보는 것이 소원이었다. 당시 우리 기업들은 엄두도 내지 못하던 것을 저들은 잘도 만들어냈다. 우리 업체가 기껏 만든 것은 다리 달린 흑백텔레비전이 전부였다. 하지만 지금은 전세가 역전됐다. 우리 기업들이 만든 각종 전자제품이 세계 시장에서 일본제품을 밀어내고 높은 점유율을 자랑한다. 격세지감(隔世之感)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이것만이 아니다. 우리 경제가 일본을 따라잡으려면 30년 이상 걸릴 것이라던 전문가들의 분석이 보기 좋게 빗나갔다. 국민소득이 일본을 앞질렀기 때문이다. 2023년 일본의 1인당 국민소득은 3만 5,793 달러였으나 한국은 3만 6,194 달러로 사상 처음 앞섰다. 이에 더해 2024년 1월부터 한국과 일본은 수출 총액에서 세계 5위 자리를 놓고 엎치락뒤치락하고 있다. 급기야 올해 5월 수출액이 581억 5,000만 달러로 일본을 추월했다. 도저히 믿기지 않는 일이 현실이 되고 있다. ‘꿈은 이루어진다’라는 말을 이처럼 실감한 적이 없었다.  

전기차로 전환 중인 자동차도 일본 추월이 임박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가? 일본이 1990년대 디지털 전환 시기에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한 것이 원인이라는 전문가들의 지적이 일리가 있다. 가장 잘하고 자랑스러워하던 아날로그 시스템을 버리지 못한 것이 문제였다. 그 기저에는 일본의 장인 정신과 종신고용이 있다. 현재 관점에서 보면 장인 정신은 디지털로의 전환에 걸림돌이 되었고, 종신고용은 직원들의 창의적인 참여기회를 박탈하고 노동생산성을 떨어트렸다. 모든 부문에서 경쟁력 약화 원인이 됐다.   

일본은 내수시장이 주요 고객이었기에 장인 정신으로만 무장하면 될 줄 알았다. 굳이 디지털화가 필요 없다는 생각이 실기였다. 디지털화가 세계적 흐름이었는데도 말이다. 반면 우리나라는 디지털화에 성공해 각종 산업에 적용하며 큰 성과를 내고 있다. 세계는 글로벌화되어가는 데 집토끼 지키기에 급급했던 일본의 결말은 이미 예견된 것이었다. 만약 장인 정신에 디지털기술을 접목했다면 결과는 달라졌을 것이다. 국내 업체들도 이것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일본 기업처럼 도태되지 않기 위해서는 흐름에 뒤처지지 않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우리 업체에도 일본의 장인처럼 명장(明匠)이 많다. 대부분 정년을 앞두거나 퇴직한 고령 근로자다. 회사에 꼭 필요한 인재이다. 이들이 정년으로 퇴직하면 회사는 손해가 막심하다. 일본이 장인 정신에 디지털을 접목하지 못해 뒤처진 것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명장의 기술에 디지털을 접목하려면 정년의 유연화가 우선이다. 고령의 숙련 인력은 디지털화가 진행되는 회사의 데이터 구축에 반드시 필요하다. 이들의 경험과 기술은 아무나 대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디지털 전환을 위해 정년연장 카드를 만지작거리는 회사가 늘어나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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