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병성 칼럼 - ‘짬밥’ 순서 아니고 ‘레벨제’

황병성 칼럼 - ‘짬밥’ 순서 아니고 ‘레벨제’

  • 철강
  • 승인 2025.03.24 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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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명 황병성 bshwang@snm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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짬밥’은 군대를 다녀온 사람이라면 다 아는 단어다. 이 말의 뜻은 군대에서 먹다가 남긴 밥을 이르는 말이다. 군대 생활에서 경력과 연륜을 비유적으로 말할 때 쓰인다. 짬밥 순이라는 말은 이 뜻에서 파생됐다. 하늘 같은 고참(古參)은 짬밥 경력이 오래된 병사를 일컫는다. 그래서 그가 하는 말에 절대복종하는 것이 군 생활의 철칙이었다. 이 짬밥문화는 위계질서를 잡는 데 필요했지만 부작용도 많았다. 지금은 많이 바뀌었다고 하지만 점호 후 고참에게 ‘빠따’를 맞아야 깊은 잠을 잘 수 있었던 그때를 잊지 못한다.

짬밥 순이 직장에서 연공서열이다. 우리 직장 내 오래도록 뿌리내렸던 제도이다. 이 제도 속에는 일본의 흔적이 남아있다. 일본의 직장은 서열 문화가 심하다. 역사가 오래되거나, 계열사 체제로 돌아가거나, 전통 기업일수록 상상 그 이상이다. 배경에는 2차 대전이 자리한다. 군수공장이 중요해지면서 기술인력 이직을 막기 위한 대책이 필요했다. 그래서 오래 근무하면 연봉이 올라가는 호봉제를 도입한 것이다. 임시 수단이었지만 전쟁이 끝난 후 되돌리지 못했다. 오히려 전통으로 자리 잡았다. 지금도 그 때를 다 벗지 못했다.

우리도 일제강점기부터 오랜 기간 일본을 답습했다. 그러나 1995∼1996년 이후부터 주요 대기업들이 이 제도를 폐지하고 성과연봉제를 도입했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에는 대부분 기업에서 사라졌다. 그러나 표면적으로만 사라졌을 뿐이다. 아직 일부 기업과 집단에서 여러 형태로 남아있다. 사회 발전을 저해하는 폐습으로 지적받는다. 유령처럼 서성대는 이 제도에 대한 비판이 적지 않다. 직무나 기술상의 성과를 무시함으로써 근무의욕을 떨어트린다고 지적한다. 특히 부하 직원의 성과를 상사가 탈취하는 비정상적 시스템이 몰매를 맞았다.

연공서열제도가 단점만 있는 것이 아니다. 현시대에 뒤떨어질 뿐 장점도 있다. 이 제도는 연령이 높고 근속 연한이 많을수록 높은 임금을 보장받는다. 이는 오래 근속할수록 경험이 많고 성과도 높을 것이라는 추측에서 근거한다. 이에 따라 연공과 함께 근속 연한을 중요시하기 때문에 이직을 줄일 수 있었다. 근로자에게 안정적 직장을 보장했기 때문에 기업에 대한 충성심도 높았다. 이것이 기업 성장의 원동력이 되기도 했다. 과거 대부분 기업의 성장은 이 제도가 밑바탕이 됐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연공서열의 군대식 문화는 ‘나’가 아닌 ‘우리’가 중요시된다. 이에 부서를 책임지는 부서장 권한이 막강했다. 이른바 ‘부장님의 문화’가 그것이다. 이 문화에서 상사와 부하직원은 ‘갑과 을’의 수직적 관계였다. 부작용이 난무했다. 직무 경험을 중요하게 여긴다는 점에서 좋아 보였지만 아무리 유능해도 근속연수가 짧으면 빨리 승진하지 못했다. 비효율적인 제도로 평가받는 이유다. 성과주의에 밀린 최대 원인이다.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연봉은 서열대로 올라갔다. OECD 중 노동생산성이 최하위에 머문 원인이기도 하다.

퇴직한 선배들은 이러한 연공서열을 중요시했다. 그들에게는 향수처럼 그리움으로 남아있을 것이다. 부장님 말 한마디에 군대처럼 부서가 움직였다. 그리고 업무적으로 유능한 것이 고과를 잘 받는 것이 아니었다. 부서장에게 얼마나 잘 보이느냐에 따라 고과 성적이 결정되는 악용도 빈번했다. 이것이 성과주의로 바뀐 것은 천만다행이다. 우리는 일제의 잔재를 끊어내기 위해 치열히 노력했다. 직장의 연공서열제도도 일제의 잔재였다. 이것을 직장에서 몰아낸 것도 청산의 일환이다. 선진국이 된 경쟁력 향상의 동인이 되었음은 물론이다. 

퇴직한 선배들이 깜짝 놀랄 기사가 최근 관심을 끌고 있다. 이름만 대면 다 아는 회사가 성과주의를 뛰어넘은 ‘레벨제’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직원의 업무 역량과 성과를 레벨로 평가하겠다는 것이 골자다. 직원의 업무 능력을 중시하는 수준을 넘어 역량을 중심으로 평가하겠다는 발상이 획기적이다. 역량에 따라 보상도 차별화 된다. 이 제도가 현실화되면 성과가 높은 대리가 부장보다 연봉을 더 많이 받을 수 있다. 실력과 성과를 바탕으로 한 공정한 평가방식을 선호하는 Z세대들이 좋아할 방식이다. 부장님도 좋아할지는 의문이다. 

회사가 뒤집힐 충격적인 평가 방식에 찬반의 논란도 있다. 내부 경쟁을 심화시키고 단기성과 중심 평가 등을 우려한다. 명확한 평가 기준과 공정한 보상제도 마련도 과제이다. 하지만 이 방식이 ‘성장 동기’를 부여할 것이라는 점에는 이견이 없는 것 같다. 이처럼 셈법이 복잡한 것은 방식이 그만큼 획기적이라는 의미다. 연공서열에서 성과주의로 바뀌었듯이 레벨제도도 자리 잡지 말라는 법은 없다. 한 회사의 이러한 발상이 허무맹랑한 것이 아니라 그럴듯한 제도여서 관심을 끈다. 성장과 발전은 발상의 전환에서 나온다. 이 회사 의 현 위상을 보면 이 진리가 틀리지 않은 것 같다. 역으로 우리 회사는 무엇을 하고 있는지 들여다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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