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갑게만 느껴지는 철(鐵)에 예술의 옷을 입히면 따뜻한 온기를 느낄 수 있을까? 철은 원래 가장 뜨겁게 태어난다. 하지만 세상으로 들어가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차갑게 돌변한다. 덩달아 철을 취급하는 사람도 차갑고 보수적인 사람들로 오해의 그림자를 씌운다. 사실 알고 보면 따뜻한 마음을 가진 철강 인이 너무 많은 데도 말이다.
우리 업계도 이러한 인식의 틀을 허물고자 온갖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해마다 오페라 공연을 주최하는 업체가 있는가 하면 옛날 공장 건물을 전시장으로 탈바꿈시킨 업체도 있다. 일반인을 대상으로 주제가 있는 공연을 기획해 생활 속으로 더 다가가려는 업체도 있다. 이 모든 것이 잘못된 철(鐵)의 이미지를 개선하기 위한 노력 중 하나다.
철강업계를 들여다보면 예술혼(魂)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 이런 사람들을 보면 철을 취급하는 사람들에 대한 인식이 얼마나 잘 못 되었는지를 실감한다. 그들은 철의 차가운 이미지에 예술혼을 불어 넣어 철이 처음 태어날때 지녔던 따뜻한 상태로 되돌리려고 한다. 취미로 출발했다가 훌륭한 예술가의 경지에 오른 그들의 도전은 아름답다. 더불어 철강 업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보면서 존경스러운 마음이 저절로 나온다.
4월 ‘붓으로 찾아가는 꿈길’이라는 개인전을 가졌던 빈석주 화백을 기억할 것이다. 본지를 통해 소개했던 빈 화백은 고려철재 빈옥균 사장의 부친이다. 취미로 시작한 그림이 시간을 더하며 많은 정진이 있었다. 지금은 화백으로 불릴 정도로 한국화의 대가가 되었다. 오랫동안 몸담았던 철 스크랩 업을 떠나 예술가가 된 그의 모습은 하나도 어색하지 않다.
그가 작품을 완성하는 과정을 들어보면 대가의 냄새가 흠씬 풍긴다. “내 마음속에 닿았던 순간이나 추억을 떠올리고 사진을 보면서 뇌리에 남아 있는 형상들을 하나 둘 꺼내어 작품을 완성한다. 시인이 시상을 떠올리듯이 화가는 그림을 떠올린다.”는 말은 유난히 가슴에 와 닿는다. 그가 우리 업계에 몸담았던 원로라는 사실이 자랑스러운 것은 이 때문이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함을 보여주며 우리 춤에 푹 빠진 철강 CEO도 있다. 세한철강 이순도 회장은 철강인과 국악인으로서의 삶을 동시에 살아가고 있다. 취미로 했던 국악이 어느덧 사명감으로 국악 홍보에 앞장서기에 이르렀다. 나이를 잊은 그가 젊은이들과 공연하는 춤은 ‘버꾸춤’이다. 전라남도 해안지역에서 행해지던 농악 놀이 중 하나다. 경상북도 구미시에서 유래한 ‘무을 북춤’도 그가 자주 추는 춤이다. 전통 국악 계승자가 된 그의 모습 또한 자랑스럽다.
그는 국악에 입문하게 된 동기를 “세월이 흐르고 문화가 바뀌어도 우리 DNA 속에는 아직 옛 조상의 흔적이 남아있다. 국악도 조상의 흔적이 남아있는 놀이로 전통 범위 안에서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나를 표현하는 수단이어서 애착이 갔다.”고 말했다.
철과 예술, 동떨어진 것 같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조화롭다. 아마도 철로 악기를 만들고 무대를 만들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기에 예술을 사랑하는 철강 인들의 따뜻한 마음이 어우러지면서 차가운 철의 이미지를 많이 희석했다. 철과 예술은 상생(相生)의 표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