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모 특집) 철과 같은 마음으로② - 인간 이운형 그 마음과 삶

(추모 특집) 철과 같은 마음으로② - 인간 이운형 그 마음과 삶

  • 철강
  • 승인 2020.03.18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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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명 황병성 bshwang@snm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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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남겨준 유산은 배려하는 마음”

■ 한결같은 장남, 남편, 아버지

이운형의 아버지 해암 이종덕은 스스로 원칙에 꼿꼿한 사람이었다. 주변 사람에게 잘못을 지적할 때도 주저함이 없었다. 그런 아버지 밑에서 자랐기 때문에 그는 어릴 때부터 아버지에게 호통과 꾸지람을 다반사로 들었다. 하지만 그는 항변하기는커녕 인상도 찌푸리지 않고 그 말에 귀 기울였다고 한다. 그런 아들이었기에 아버지는 자주 역정을 내면서도 장남 이운형을 누구보다 좋아했다고 한다.

 “성향이 다르긴 했어도 일하면서 의견이 다른 경우는 거의 없었다. 특히 회사의 일상에 관한 한 더욱 그랬다. 유일한 옥신각신은 형이 거절을 잘 못하고 도움 청하는 사람들을 도와주려 한 것 때문에 가끔 내가 불만을 토로할 때다. 고민하는 것을 보다 못해 ‘끊을 건 끊어야지 어떻게 모든 사람에게 잘 할 수 있겠냐’고 하면 ‘글쎄 말이야’ 하고는 어느새 누군가를 도와주는 일로 고심하는 사람이 형님이다.”

현 세아그룹 이순형 회장이 형을 이렇게 회고한다. 이처럼 형제는 아버지의 유지를 받들어 변함없는 형제애와 협력으로 회사를 운영했다.  
  
요란하게 치장해 마음을 표하지 못했던 이운형은 눈을 사로잡는 화려함 대신 마음을 데우는 따뜻함으로 순간의 반짝임보다 한결같은 은은한 빛으로 함께한 남편이었다. 그는 박의숙에게 단순한 남편을 넘어 아버지로, 때로는 오빠로, 늘 함께하며 기댈 수 있는 든든한 아름드리나무였다. 박의숙은 남편 이야기 첫머리에 ‘재미없는 사람’ 수식어를 꺼내 들었다가 이내 ‘사람들이 가장 부러워할 남편’이라고 말을 바꾼다. 

아내에게 재미없는 사람이라는 말을 들었던 그는 평생 아내의 생일과 결혼기념일을 잊은 적이 없었다고 한다. 뜻밖의 선물을 준비해 두었다가 날짜에 맞춰 배달하거나, 바빠서 잊은 척하다가 꽃이나 예쁜 장식품을 슬며시 꺼내 놓기도 했다. 

장남 이태성은 매년 결혼기념일이 가까워져오면 선물 준비로 고민하는 아버지의 모습이 마치 수줍은 소년 같았다고 회상했다. 

그는 다감하고 자상한 아버지였다. 자식들에게는 작은 것 하나라도 더 주고 싶어 했다. 아버지도 딸도 생활은 여유 있었지만, 경제 사정과 상관없이 그는 눈앞의 자식에게 지갑을 열어 몇만 원이라도 꺼내 쥐여 주지 않으면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 사람이었다.
 
셋째 딸 이지성은 장성해 출가한 자식에게조차 매번 지갑을 털어 용돈을 주었던 아버지, 많든 적든 무엇이라도 자식에게 주려는 마음뿐이었던 아버지의 모습이 가장 기억난다고 말했다. 

부모로서 이운형의 남다른 지혜는 따로 있었다. 양육의 책임을 갖고 물질적 지원은 아끼지 않되 한 인격체로 존중해 권위적 간섭이나 강요는 하지 않았다. 이는 단순한 보살핌을 넘어 부모로서 가장 지혜로운 처신이다. 머리로는 알면서도 자식 걱정에 매몰되다 보면 정작 실천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그는 이를 몸소 보여주는 아버지였다. 자식들이 어릴 때도 권위를 내세워 말하는 법이 없었고, 자기 생각을 자식에게 강요하지 않았다고 한다. 

 “해라, 하지 마라 하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었다. 언제나 제가 원하는 대로 하도록 배려했고, 설사 그것이 아버지가 원하는 방향이 아닐 때도 ‘네가 선택한 것이라면 믿는다’며 수용하고 격려해 주셨다.”고 셋째 딸 이지성은 회고한다. 

 
■ 멘토이자 롤 모델이었던 아버지

가족 나들이를 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언제나처럼 이운형은 골목 입구 슈퍼에 들러 음료수를 사서 아이들 손에 쥐여 주고는 집으로 들어가기 전 경비실에 들렀다. 환한 미소로 경비실 문을 두드리는 아버지를 보고 꾸벅꾸벅 졸던 경비원이 깜짝 놀라 미안한 표정으로 문을 열었다. 그 모습을 보고 이운형은 “아이고 얼마나 피곤하셨으면…. 감사합니다. 수고하세요.”하며 잠을 깨운 것에 대한 미안함으로 짧은 인사와 함께 슬그머니 음료수를 건네고 황급히 문을 닫는 아버지를 아들 이태성은 옆에서 지켜보았다. 

아버지의 눈에는 근무시간에 졸고 있는 경비원의 모습이 아니라 우리를 위해 밤새 피곤함을 무릅쓰고 수고하는 고마운 사람의 모습이 먼저 보였다. 그런 아버지와 함께하며 이태성은 사람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는지, 세상을 어떤 거울로 보아야 하는지 조금씩 깨달았다고 한다. 

대학을 졸업한 이태성은 사회에 갓 나온 여느 젊은이들처럼 경험 삼아 해보는 일에 관심을 가졌다. 학교에서 배운 지식을 마침내 직접 적용해 볼 수 있는 때가 왔다고 여겼다. 그간 쌓은 지식도 충분하다고 생각했고, 젊은이 특유의 열정과 자신감 또한 가득했다. 자식의 이런 모습에 그는 “때로는 손쉽게 큰 이익을 볼 수 있는 일도 있지만 그렇게 얻은 이익은 언젠가는 문제로 돌아오는 경우가 많더구나. 단기간에 쉽게 돈을 벌 수 있을 것 같은 일에 더 신중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하지만 이태성이 패기로 시작한 일에 대해 “그렇게 자신 있다면 한번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다만 너무 만만하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구나.”라고 격려했다고 한다. 그렇게 시작된 일의 결과는 아버지가 예상한 대로 끝났다. 

이처럼 결과가 뻔히 보이는 일에 자식이  고집을 피우더라도 나무라는 것으로 대화를 시작하지 않았다. 먼저 이야기를 들어보고 아버지로서 바람을 이야기하되 어떤 결정이든 자식들 스스로 하고 그 결정에 책임지도록 했다.

“아버지는 우리 형제자매에게 모든 것을 터놓을 수 있는 분이자, 인생의 훌륭한 롤 모델이자 멘토였고 더 없이 큰 우산이었다. 누구에게나 사랑을 베풀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아버지를 우리는 점점 닮아가고 있다. 아버지가 남겨준 가장 큰 유산은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 바로 이런 ‘마음’이 아닌가 싶다.”

자식들에게 정신적 지주였던 이운형이 세상을 떠났을 때 큰딸 이은성이 아버지를 보내며 가눌 길 없는 마음을 이렇게 편지에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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