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모 특집) 철과 같은 마음으로③ - 인간 이운형의 길, 세아의 길

(추모 특집) 철과 같은 마음으로③ - 인간 이운형의 길, 세아의 길

  • 철강
  • 승인 2020.03.18 15:00
  • 댓글 0
기자명 황병성 bshwang@snmnews.com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경영해 보니 정직할 때가 가장 편안했다”

■ 세상을 아름답게 

“큰 변화의 시대에 우리가 꼭 가져가야 할 것을 하나만 꼽는다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라고 전략기획팀 김철홍 수석이 이운형 회장에게 물었다. 질문을 받은 그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이윽고 그의 입에서 단어 하나가 흘러나왔다. “정직입니다.” 그 순간 김 수석은 멍했다고 한다. 수많은 가치 중에 왜 하필이면 정직이냐고 되물었다. 그러자 그는 “내가 사십 년 동안 경영을 해보니 정직할 때가 가장 평안했다.”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그가 말한 정직은 단순히 거짓의 반대말이 아니었다. 특정 행위를 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라 살아가는 마음가짐의 근본을 어디에 둘 것인가 하는 이야기였다. 정직은 남이 몰라도 자기 스스로 분명하게 한다는 점에서 양심의 다른 말이다. 정직할 때 가장 평안하더라는 말은 외부의 눈길에 상관없이 스스로 부끄러움이 없을 때만 평안하더라는 것으로, 자기 행위의 기준을 오직 양심에 두고 살아왔다는 영혼의 고백 같은 말이었다. 

이 정직의 말은 전략기획팀 책임자인 아들 이태성에게도 신선한 충격이었다. 자식으로서 아버지의 가치관은 익히 알고 있었다. 그래서 부모를 떠나 한 사람으로서 아버지를 존경해왔다. 그러나 어릴 때부터 보고 들었기에 그저 당연하게 생각했고 때로는 흘려듣기도 했던 아버지의 여러 가르침을 그는 새삼 뭉클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정직한 사람은 절제할 줄도 알았다. 그는 밥 먹고 옷 입는 일상에서부터 검소가 몸에 배어 있었다. “부인 분이 징그럽다고 할 정도로 정말 낡은 옷이었다. 추워지면 난방을 해야 하는데 점퍼를 입고 견딜 때까지 견디셨다고 그러더라. 그 옷을 세탁해서 지금도 우리 집에 가지고 있다.” 그가 세상을 떠난 후 회사로 직접 찾아가 유품 몇 가지를 얻어 왔다는 후배 기업인 김관수는 사무실에서 입던 작업복 이야기를 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그는 의전이나 예우 등에서 직원 몇십 명을 둔 중소기업 사장만큼의 편안함도 챙기지 않았다. 남에게 보이는 반드레함을 중요하지 않게 본 것이면서 동시에 남이 자기를 위해 애쓰는 것은 불편해하는 타고난 겸양 때문이었다. 그는 분수를 알아야 한다고 자주 말했는데 분수라는 뜻이 ‘자기 신분이나 맞는 정도’임을 생각하면 그는 실상 회장으로서 남이 인정할 만한 정도의 분수소차 누리지 않았다. 

 ■ 철과 같은 마음

정직과 더불어 이운형의 경영철학을 엿볼 수 있는 상징적인 표현이 ‘철과 같은 마음’이다. 평소에도 여러 자리에서 하던 말이지만 그는 생의 말년에 특히 이 말을 자주 사용했다고 한다. 2012년 ‘언스트앤영 철강 부문 최고기업가상’을 받는 자리에서 그것을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철은 세상에 수많은 혜택을 주면서도 변하지 않는다. 겸손하면서 변하지 않는 것, 그것이 철과 같은 마음이다.”

철과 같은 마음이 경영 철학으로 녹아들어 세아의 기업문화로 자리 잡은 것이 그가 늘 강조하는 겸허하고 감사하는 마음, 기본과 원칙을 지키는 자세다. 그는 신입사원들에게 세아인에게 바라는 마음을 분명히 밝혔다. “우리 회사가 지향하는 덕목은 감사와 겸허의 마음이다. 함께 일하는 동료와 선후배들에게 감사하고, 우리에게 원료를 공급하는 회사, 우리 제품을 이용하는 회사들에 감사해야 한다. 그것이 우리 세아를 일류 기업으로 만드는 첫 번째 자세라고 생각한다.”

남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는 성격이었지만 그는 회사 일에서만큼은 권한을 함부로 사용하지 않았다. 현재 세아M&S 대표 마정락이 세아제강 수출팀장으로 근무할 때였다. 이운형이 전화로 아는 사람이 어느 지역에 판매 독점권을 원하는데 가능하겠는지 알아보라고 했다. 사장의 말이라 신중히 검토했지만 여러 가지 리스크를 예측할 수 있었다. 이에 자신이 아는 상황을 보고하며 독점권을 주기 어렵다고 말했다. 꼭 해야 하신다면 못 할 건 없지만 이라고 덧붙이자 “실무적인 판단이 그렇다면 그대로 하면 된다.”고 하며 그 후 그 이야기는 다시 꺼내지 않았다고 한다.  
 

■ 진심으로 쌓아 올린 신뢰 

그는 “신세를 지면 꼭 갚아야 한다. 하나를 받으면 열을 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세아의 외국 합작회사 중 세아 EAB은 과거 여러 우여곡절을 겪었다, 그때마다 그는 “서로 원해서 합작한 것인데 사소한 일로 다툴 필요가 있는가? 믿음으로 양보하면서 가자.”라며 상대 회사를 설득했고, 직원들 또한 같은 말로 다독였다. 상생을 최우선으로 두었기에 주인이 세 번이나 바뀐 회사와도 30년 넘게 합작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다. 

컨설팅 회사 대표로 있는 장종현은 이해관계의 정반대 위치에서 이운형을 처음 보았던 그의 회고는 그가 거래 상대방에게 어떻게 비쳤는가를 보여준다. “상대방 입장에서 생각하는 것이 파트너의 기본인데 이운형 회장은 양쪽을 이해하면서도 균형을 잡아가는 모습이 돋보였다. 협상을 떠나 전문가로서의 정직한 모습으로 일관했다.”며 합작 관련 협상테이블에서 그를 처음 본 장종현은 협상 기술보다는 신뢰를 먼저 쌓으며 일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고 회고했다. 

비즈니스 세계에서 이해타산 전략은 당연하게 여기지만 한편 그렇지 않기 때문에 상대를 얼마나 신뢰할 수 있느냐가 거래 성사의 중요한 구심점 역할을 한다. 장종현이 전하는 일화는 그 점에서 시사 하는바가 크다. 이운형의 도덕적 품성이 단지 개인의 미덕에 그치지 않고 사업 현장에서도 유리한 자산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 것이다. 

세아의 큰 장점은 함부로 돈을 빌리지 않은 점이었다. 회사들은 해외에서 대규모 단기 외채를 들여와 외형을 과시하는 설비 확장이나 부동산 등에 눈을 돌렸다. 사업다각화라는 미명 아래 문어발식 계열사 늘리기에 혈안이 되어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IMF 외환 위기가 닥쳐 많은 회사가 어려움에 처해 있을 때에도 믿음의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는 세아는 그 어려움을 쉽게 헤쳐 나올 수 있었다.  
 

저작권자 © 철강금속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