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과 무역마찰로 반도체 주요 소재와 부품 등의 국산화가 중요 과제로 떠올랐다. 이 무역 분쟁은 일본의 화이트리스트에서 한국을 제외하면서 격해졌고, 한국은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을 종료하며 이에 맞섰다. 소재가 무역마찰의 본격적인 무기로 등장했음을 알렸다. 중국도 마찬가지다. 전 세계에 공급되는 희토류 80%가 중국에서 채굴되고 있다. 미국과 무역마찰에서 중요한 무기로 빼든 것이 희토류였다.
이처럼 세계는 지금 총칼로 하는 전쟁이 아닌 소재 전쟁이 본격화되고 있다. 자원이 빈약한 우리나라로서는 걱정이 태산이다. 대책을 세우지 않으면 가만히 앉아서 당할 수밖에 없게 됐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소재 확보가 성공의 열쇠이다. 첨단 기기에 사용되는 소재는 더 단단하고 녹슬지 않아야 한다. 이른바 꿈의 신소재라 불리는 타이타늄(Titanum)도 4차 산업을 이끌 대표적 소재 중 하나다.
타이타늄은 지각에 많이 분포되어 있고 가벼우면서도 아주 단단한 특징을 가진다. 열역학적으로는 반응성이 큰 금속이지만 물이나 공기와는 아주 느리게 반응한다. 이는 산화물 부동화 보호 피막을 만들기 때문인데, 부식에 강한 특성이 있다. 또한, 생체 친화성도 높다는 장점이 있다. 타이타늄은 금속 자체로 또는 여러 금속과 합금을 만들어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며, 다양한 분야에서 아주 유용하게 활용되고 있다.
영화 ‘아이언 맨’ 속 슈트 소재가 타이타늄이다. 서울시 동대문에 가면 우주선처럼 생긴 디자인 플라자(DDP) 건물이 있다. 반짝이는 은색 외벽 소재가 타이타늄이다. 이 밖에도 항공기, 의료기, 발전소, 자동차, 방산, 레저 등에 활용되고 있다. 이러한 중요성 때문에 선진국들은 타이타늄 산업을 국가 전략산업으로 육성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 현실은 타이타늄을 전량 수입에 의존할 정도로 열악하다. 안타깝지만 아직 후진국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
타이타늄은 엄연히 우리나라에도 부존하는 광물이다. 최근 국민의힘 이철규 의원이 보도자료를 통해 밝힌 것처럼 태백·삼척·봉화 일원의 태백 면산 층에서 타이타늄-철 부존을 확인했다. 부존량은 2억2천만 톤 가량으로 이 중 타이타늄 함유량은 7.57%(1천만여 톤)로 예상한다. 매년 7만 톤을 수입하는 것을 계산하면 143년을 쓸 엄청난 양이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그림의 떡이다. 광물로서 가치를 부여하려면 추출 기술이 중요한데 이것이 문제다.
국내 타이타늄 관련 최고 전문가는 추출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에 차라리 수입하는 것이 더 싸게 먹힌다고 냉철히 말한다. 지난해 무역 통계에 따르면 타이타늄 관련 원료 및 관련 소재의 무역적자가 6,919억 원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의원은 탐사 및 기술 개발에 들어가는 비용이 200억 원으로 예상했다. 무역적자보다 비용이 적게 들어간다면 답은 나왔다. 경제 활성화 차원에서라도 추출 기술 개발로 상품화하는 것이 우선이다.
제조 산업이 4차 산업혁명으로 고도화되면 새로운 물성을 가지는 소재 활용이 필수적이다. 그 소재가 타이타늄이다. 이미 많은 선진국이 국가 전략산업으로 육성한 것만 보더라도 타이타늄의 가치는 실로 엄청나다. 하지만 정부는 그 중요성을 잘 못 느끼고 있다. 한 전문가는 요즘 국가 기관 연구소에 눈먼 돈이 쏟아진다고 비판했다.
국가가 소재 국산화 등을 위해 예산을 투입하지만 실상 효과는 미미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미 실패했거나 안 되는 것으로 결론 난 기술 개발에 또다시 예산을 낭비하기 때문이다. 차라리 결과가 확실한 타이타늄 산업에 예산을 투입하는 것이 이치에도 맞다.
지질자원연구원이 태백 면산 층 타이타늄 광의 경제성 등을 검토한 결과 광물로서의 가치가 있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정부는 당장 추출기술 개발에 예산을 투입해야 한다. 가격이 저렴하다하여 수입에만 의존한다면 나중에는 큰 낭패를 당할 수 있다. 타이타늄도 자원전쟁에서 무기로 돌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4차 산업 시대 핵심 소재인 만큼 글로벌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서라 지금도 늦지 않았다. 확실한 대비책 마련이 시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