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로트 가수 활동 및 자서전 판매로 발생하는 수익 전액 기부
김 회장, “‘평화와 번영’을 함께하자는 의미로 통일 음악회 개최할 것”
<편집자주> 국내 데크플레이트 시장 점유율 26%를 자랑하며 업계 부동의 1위 자리를 유지하고 있는 덕신하우징을 바닥부터 일궈낸 무봉 김명환 회장이 트로트 가수로 데뷔해 화제를 모으고 있다.
건축용 데크플레이트 기업 덕신하우징은 김 회장이 자수성가로 중견기업을 일구며 봉사와 나눔을 실천해온 자신의 삶과 열정을 담은 노래를 발표함으로 트로트계를 접수하러 나선 것. 지난해 6월 ‘두 번째 인생’과 ‘밥은 먹고 다니냐’란 노래로 싱글 앨범을 발표한 이후 올해 1월 수록곡 ‘눈물의 대전역’, ‘잊을수가 있을까’, ‘부모님’, ‘우리는 하나(통일곡)’ 등 정규앨범을 발매해 본격적인 가수 대열에 합류했다.
사업을 성공시키고 회사 경영을 안정적인 궤도에 올려놓은 김 회장은 올해 나이 70세를 맞아 자서전(제목: ‘까다로운 고객이 명품을 만든다’, 출간 미정)과 노래를 만드는 과정에서 프로가수 제안을 받았다. 평소 노래 부르기를 좋아했고 청년 못잖은 성량을 인정받았던 노래를 들은 주변 관계자들이 가수 데뷔를 적극 추천했다. 다소 늦은 나이이지만 후회 없이 살기 위해, 또 자신처럼 열심히 앞만 보고 살아온 장년층과 코로나19 사태로 가라앉은 사회에 용기와 에너지를 불어넣어보겠다는 마음으로 실행에 나선 것이다.
김 회장은 가난에 힘들었지만 콧노래를 부르며 농사일 도왔던 그때, 마음 한켠에 노래를 부르고 싶다는 작은 바람이 있었다. 아울러 나누고 봉사하면서 살겠다는 뜻으로 사무실 한쪽에 녹음실과 연습실을 만들어 가수 지망생에게 공간을 무료로 내주는 작은 봉사를 실천하고 있다. 또한 노래로 나오는 수익금은 자신의 호를 딴 ‘楙奉 장학재단’에 전액 기부함으로써 나눔의 가수로 두 번째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
Q 자신의 삶을 담은 노래를 발표하며 트로트 가수 활동에도 나섰다. 트로트 가수 활동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A 어린 시절부터 노래하는 것을 좋아했다. 회사일로 지치고 힘들면 노래방을 찾아 평소 즐겨 부르는 노래를 목청껏 부르고 나면 스트레스가 풀렸다. 10년전 일기장에 적기를 2020년에는 트로트 가수로 데뷔하겠다고 적었는데, 10년전 일기장에 적은 꿈을 이룬 것이다. 내 노래가 많이 불리어져 아이들에게 수익금으로 큰 금액이 돌아갔으면 한다. 그리고 2~3년 뒤에는 평양에서 ‘통일 음악회’를 개최하고 싶다. 우리나라 독립유공자 후손과 이산가족 어린이를 초대해 평화와 통일에 대한 염원을 함께 노래하고자 한다.
이 콘서트는 저 말고도 국내에 내로라하는 가수들과 함께 갈 것이다. 2~3년뒤 통일 음악회를 끝으로 나는 가수에서 은퇴를 하고, 무봉재단을 통해 더 많이 나누고 더 널리 나눌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며 살고 싶다.
Q 트로트 가수로서 앞으로의 행보가 궁금하다
A 인기가수들의 인생과 사는 이야기를 살맛나게 들여다보는 뮤직 토크쇼 ‘뮤직플랫폼’을 제작할 계획이다. 이 프로그램은 국민MC 김병찬씨와 환상의 하모니로 고품격 음악 프로그램을 원하는 시청자들의 안방에 찾아갈 예정이다. 특히 뮤직플랫폼 녹화를 위해 촬영 장소인 인천 청라 무봉아트홀에 별도 무대 및 음향, 방송장치를 설치, 음악 전용 공연장으로서 탈바꿈 했다. 내년에는 한강 공원에 상설 스튜디오(공연장)를 신축해, 코로나로 인해 공연 관람 및 문화생활에 목마른 서울시민들을 위한 작고, 큰 공연 및 행사를 계획하고 있다. 또 공연장 대관이 힘든 무명가수 및 예술가를 위해 상설 스튜디오를 무료로 제공할 계획이다.
Q 평소 ‘신용과 품질이 생명’으로 품질 완벽주의를 추구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무엇인지?
A 신용은 본인이 쓴 자서전에서 맨 첫 장에 글을 쓴 것만큼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신용과 품질은 생명이다’라는 회사의 사훈도 상대방과의 약속을 목숨보다 중요시하는 자세가 바로 성공의 근간이 되는 정신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한번 신용이 있는 사람으로 각인이 되면 사업 파트너에게 언제든지 돈을 빌릴 수 있다. 바로 이러한 것이 그 개인의 무형의 재산이 된다. 기업과 기업간의 거래뿐만 아니라 개인하고의 관계에서도 신용이라는 것은 그 사람의 말은 믿을 수 있다는 신뢰는 보이지 않는 엄청난 재산이 된다. 같은 맥락에서 바라보면 기업의 신용은 생산하는 제품의 품질이다.
영업사원의 말을 믿고 제품을 주문했는데, 제품의 사양이나 품질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당연히 신뢰를 잃는 것이기 때문이다. 신용과 품질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 제품의 품질도 고객과의 약속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신용과 품질은 생명과도 같다는 사훈 아래 품질에 대한 자신감이 바로 현재의 덕신하우징을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Q 이와 관련해 ‘까다로운 고객이 명품을 만든다’는 제목의 자서전을 지난해 출판했다. 자서전을 통해 독자들에게 어떠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은지 궁금하다
A. 이번에 자서전을 출간한 이유는 책의 서문에도 밝혀놓았다. 내가 걸어온 길을 기록하고 새로운 꿈을 꾸기 위함이다. 그리고 이 땅에 사는 젊은이들에게 내가 경험한 성공의 정공법을 전하기 위함이다.
시대는 달라도 성공에는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세상의 원리가 있다. 1980년 창사 이후 1992년 김포공장, 2003년 천안공장, 2011년 군산공장에 이어 2015년에는 베트남공장, 그리고 지난해 제2천안공장을 준공하며 일자리 창출과 함께 외연도 많이 성장했다. 흐뭇한 일이다.
특히, 베트남 생산거점을 두고 12개국에 우리 덕신의 제품이 판매되고 수출지도가 계속 넓어지고 있어 자랑스럽다. 이제 서산으로 기우는 낙조와 같은 나이에 접어들었지만, 나는 여전히 꿈을 꾼다. 책속에는 나의 간절한 소원이 담겨 있고, 통일 조국에 대한 염원도 담겨 있다. 또 지난 2019년에 설립한 무봉재단을 통해 내가 즐겁게 일하며 자아실현을 이룩하게 해준 사회에 보답할 것이다. 이러한 성공의 과정과 현재의 보람, 그리고 내가 앞으로 해야 할 일들에 대한 기록을 하는 심정으로 이번 자서전을 출간하게 되었다.
Q 자서전의 내용 중 ‘창업주의 정신으로 직원을 양성하라’라는 소제목이 눈에 띈다. 41년 동안 기업을 이끌어 오면서 직원 양성에 대한 어떠한 철학을 가지고 있었는지?
A. 41년간 회사를 운영하면서 같이 있던 직원중에 창업을 해서 지금은 번듯한 회사의 대표로 있는 사람들이 여럿 있다. 이 직원들에게 회사 상호도 사용하게 해주고 어렵다고 하면 회사 창업자금도 빌려준 적이 있다. 직원을 경쟁자로 보면 못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가능하면 자식뿐만 아니라 직원도 하버드 대학교에 보내고 싶은 마음이다. 자식만 잘 키워서 독립시키는 것이 아니라 능력과 재능이 있다면 직원도 얼마든지 독립시키고 싶다. 여전히 임직원들의 독립과 성공에 서운하지 않다. 독립해서 성공한 직원들이 명절 때마다 와서 세배를 하면 감동해서 눈물이 난다. 우리는 서로 예의를 지키고 정정당당하며, 밥그릇 싸움을 하지 않는다. 임직원을 가족으로 생각하기에 이런 생각과 직원에 대한 철학을 가질수 있는 것 같다. 월급쟁이와 투자자의 마인드는 내 일기장에 이렇게 적혀 있다. 이처럼, 창업주 즉 투자자의 마음으로 일하는 직원들이 많아진다면, 그 회사의 성공은 따 놓은 당상 아니겠는가?
Q 재단법인 ‘무봉(楙奉)재단’을 비롯해 어린이 재능 개발지원을 위해 ‘덕신하우징배 주니어 골프대회’를 매년 개최하고 있다. 이러한 사회공헌활동이나 나눔의 활동에 대한 생각을 듣고 싶다.
A. 지난 2019년에 무봉장학재단을 설립하고 지난해 10월 17일에 제2회 장학생에게 장학금을 수여했다. 무봉재단의 장학생 선발 방식은 기존의 성적위주의 기준과는 확연히 다르다. 독립유공자후손도 있고, 줄넘기 장학생, 판소리 영재, 미술 영재 등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학업지원을 요청한 아이들을 대상으로 장학금을 지급한다.
주니어 골프대회도 골프 유망주인데, 가정형편이 어려운 친구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 개최하는 대회이다. 어린 시절에 매우 가난했던 나는 그 가난이 주는 아픔과 고통을 그 누구보다 잘 안다. 우리나라 어린이들이 가정형편 때문에 기가 죽거나 주눅이 들면 대한민국을 성장시켜야 하는 에너지가 약해지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아이들에 꿈을 이룰 수 있게 하기 위해 아낌없이 나누고 힘있게 받들어줄 예정이다. 또 ‘애국심을 가진 어린이가 바르게 자란다’는 생각아래, 2013년 백두산 탐방, 2014년 독도에 이어 2019년에는 상해임시정부수립 100주년을 기념하여 상해에 260명의 어린이들과 직접 방문하기도 했다.
Q 회사 이야기를 해보자. 덕신하우징은 창립 41주년을 맞이했다. 그 소감을 듣고 싶다.
A. 덕신하우징은 1980년 덕신상사로 시작해 41년간 데크 플레이트만 생산하고 있는 전문기업이다. 창업자금 단돈 300만원으로 시작해 지금의 매출 2,000억원 규모의 코스닥 상장사를 만들었으니, 나도 이제 어디 가서 성공했다는 말을 좀 하고 다녀도 되지 않나 싶다.
그러나, 늘 만족하고 머무는 것은 도태하고 낙후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시 도전하고, 기록하며 성공을 이루었던 마음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은 것 같다. 지난해 코로나19로 세계시장이 침체되었지만, 덕신하우징은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해가는 과정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세계에서 인정받은 1등 기업 덕신하우징의 41주년과 지난해로 칠순(고희)를 맞은 개인적인 감회는 “참 고생 많았다. 수고했다.”로 정리하고 싶다.
Q 마지막으로 창립 41주년을 맞이해 임직원들에게 당부하고자 하는 말과 향후 목표가 있다면?
A. 국내 10개 정도의 경쟁사가 있지만, 독자적인 기술연구소를 가지고 있는 것은 우리 덕신하우징뿐이다. 제품에 대한 자신감도 있지만, 더 좋은 품질을 개발하기 위한 노력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한다.
특히,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기 위한 노력과 도전은 계속되어야 할 것이다. 덕신하우징에 대한 세계 NO.1 에 만족하지 말고, 더 넓은 세계무대에서 일등기업으로 발돋움 하는데 모두 노력을 해 주었으면 한다. 그리고 코로나19로 모두가 힘들어하는 이때에 기업으로써 개인으로써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서로 배려하고 도와주며 이 위기를 극복하자고 당부하고 싶다.
◆ 楙奉 김명환 회장
- 출생 : 1951년 1월 13일 충청남도 홍성
- 소속 : 트로트 가수, 덕신하우징(회장), 무봉 장학재단(이사장)
- 데뷔 : 2020년 싱글 앨범 [두 번째 인생]
- 대표곡 : 눈물의 대전역, 두 번째 인생, 잊을 수가 있을까
- 수상 : 2020년 제28회 대한민국문화연예대상 성인가요 신인상
제26회 대한민국연예예술상 연예예술발전공로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