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반기 가격협상 스타트… 제조원가 급등분 반영 불가피
조선업계 “공급 늘리고 가격 인상은 최소화”
철강업계 “물량 최대한 지원 … 가격 현실화 양보 못해”
최근 국내 철강사와 조선사 간의 하반기 후판가격 협상이 시작된 가운데 양측의 의견이 또 다시 엇갈리고 있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철강 원료가격이 상승했고 올해 들어서 상승폭이 커지면서 후판 제조원가도 크게 오른 상황이지만, 조선사들은 선박 건조에 가장 큰 원가인 후판 가격 인상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상황이다.
관련업계에 따르면, 상반기 가격 협상에서 국내 철강사들은 원가 인상이 컸음에도 불구하고 조선사들과의 상생을 위해 공급가격 인상을 최소화했다. 기본적으로 조선용 후판 가격 협상은 단기간 움직이는 일반 유통 시황과 달리 반기별로 진행되기 때문에 직전 반기의 원가 변동요인을 반영하여 협상을 진행한다.
하지만 이러한 가격협상 툴은 과거에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 조선업황의 부진이 상당기간 지속되면서 조선사들이 어려움을 호소하며 후판 가격 변동 최소화를 항상 요구했기 때문이다. 올해 조선시황이 개선되고 있지만 이번에도 마찬가지 상황이 연출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 원료가격 급등, 제품가격 반영 반드시 필요해
지난해 11월부터 철강제품 가격은 원료가격 급등에 따른 원가 인상요인이 반영돼 왔지만 조선용 후판만큼은 조선업계의 어려운 사정을 감안해 상반기 인상폭이 최소 수준인 10만원 안팎에 그쳤다. 하지만 최근까지도 원료가격이 고공행진을 벌이고 있어 하반기에도 후판 제조원가는 더욱 높아지게 된다.
본지에서 철광석과 원료탄 투입비를 감안한 제선원가(단순 추정치)는 지난해 3분기부터 올해 1분기까지 전기대비 15.0%, 8.5%, 23.0% 상승했으며, 2분기에도 추가로 11.9% 오를 것으로 예상된다. 조선용 후판 가격 협상 기준인 반기를 기준으로 할 때는 2020년 하반기에 15.41% 올랐고, 올 상반기에는 35.66%가 급등한 것으로 추산된다. 최근 철광석 가격이 잠시 하락했다가 다시 상승하고 있고 하반기에도 원료가격이 강세를 보일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현재 국내 후판 가격은 2분기 이후 급등하면서 최근 조선용을 제외한 타산업 및 유통가격이 톤당 120만~130만원 수준을 형성하고 있다. 중국 밀들의 수출 오퍼가격은 톤당 1,000달러 수준이며, 일본 밀들은 최근 1,100~1,200달러에 제시하고 있다. 이에 반해 상반기 조선용 후판 가격은 80만~85만원 수준인 것으로 파악된다. 현재로선 건설이나 에너지, 유통시장에 판매하는 가격에 비해 현저히 낮은 수준이기도 하고 세계 기준으로도 가장 낮은 수준으로 평가된다.
■ 매번 반복되는 불만…조선사 실적 부실이 후판 탓??
조선사들도 후판 제조원가가 급등했다는 점을 인지하고 있지만 자신들의 수주경쟁력 악화와 수익성 하락을 이유로 후판가격 인상을 자제해 달라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선박 건조비용에서 후판이 차지하는 비중이 20% 이상이어서 후판 가격이 인상되면 경영실적 악화가 불가피하다는 주장이다.
이러한 주장은 가격 협상 때마다 항상 있었고, 철강사들은 조선사들이 수주절벽을 겪으며 큰 위기를 겪었던 2016~2017년에 슬래브 가격에도 못 미치는 수준으로 가격을 내리며 지원했지만 이후 지속적인 원료가격 상승과 선가 회복에도 불구하고 후판 가격 인상은 항상 최소 수준에 그쳤다. 이는 소재산업으로서 조선사들과 함께 가야 한다는 상생협력 의지 때문이다.
하지만 현재 조선사들의 실적 부진은 저가 출혈수주 경쟁과 해양플랜트 사업에서의 대규모 손실 충당이 직접적인 원인으로 지적된다. 또한 조선사들은 과거 경영실적이 양호했을 때도 저가 중국산 수입으로 국내 철강사들을 압박해 왔다. 조선사와 정부의 요청으로 후판 설비를 증설했던 철강사들은 후판이 대표적인 만성적자 품목으로 전락하는 아픔을 겪었다. 동국제강이 후판사업을 축소한 것이 이 때문이기도 하다.
철강업계는 2011년 이후 최고가를 경신하고 있는 철광석 가격의 고공행진 속에서 원가 인상요인을 전체 판재류 가격에 적극 반영해 왔지만 그동안 후판은 상대적으로 더디게 적용했기 때문에 하반기에 반드시 가격 현실화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 증량 요청엔 최대한 지원…가격 인상 양보 못 해
후판 공급 측면에서도 양측의 입장에 차이가 있다. 당초 올해 조선용 후판 수요는 지난해에 비해 15%가량 줄어든 300만~310만톤 수준에 그칠 것으로 전망됐다. 하지만 지난해 4분기 이후 선박 단납기 수주가 크게 늘고 선표 조정 등으로 당초 예상에 비해 크게 늘어난 450만톤 수준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조선용 후판 수요가 예상 외로 늘면서 조선사들은 후판 조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중국이 수출을 억제하고 가격도 높아진 상황이며, 일본도 공급여력이 충분치 않다. 이로 인해 국내에 증량을 요구하고 있는데 철강사들의 적극 대응하려 하지만 충분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국내 철강사들은 조선용 출하가 점점 감소함에 따라 안정적인 판매기반 구축을 위해 건설, 에너지, 유통 등 비조선 공급 비중을 꾸준히 높여왔다. 수요 변화에 따른 전략적인 대응이었기 때문에 올해 조선사들의 단기적인 요청에 100% 대응하기는 사실상 어려워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철강사들은 공급계획을 최대한 수정하여 지원에 나서고 있다.
업체 중에서 포스코는 수출을 줄이면서 비조선 물량을 조선용으로 전환하여 계획대비 30만톤 이상 공급 확대를 검토 중이다. 연초 고로에 문제가 있었던 현대제철은 최근에는 슬래브에 다소 여유가 생겨 후판 공장 가동률을 끌어 올려 조선용 후판 생산을 늘리고 있다. 동국제강도 단납기 대응력으로 적극 지원할 방침이다.
다만 이들 모두 조선용 후판 가격의 현실화가 전제되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생산과 판매계획을 조정까지 해서 필요한 물량을 최대한 지원하고 있는데 지금처럼 손실을 보면서 팔 수 없다는 강경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