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공급망 재편이 화두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침공과 대만 사태 등 미-중 갈등으로 냉전 시대와 같은 진영화 논리가 거세게 힘을 받으면서 세계의 공장이라는 중국의 입지가 무너진 지 오래다.
미국은 핵심 제조업과 미래 산업의 자국 우선주의를 더욱 노골화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최근 불거진 것이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 법과 한국산 전기차의 보조금 제외다. 이처럼 글로벌 공급망 재편 속에 우리의 이익을 고수하기가 점차 힘들어지고 있다.
글로벌 사회 속에서 그야말로 총칼 없는 전쟁인 기업들 간의 초국가 경쟁이 날로 극심해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냉전과 자국 우선주의 확대라는 새로운 부담이 얹어진 셈이다.
이런 가운데 윤석열 정부의 첫 국감이 열리면서 기업들에 새로운 부담이 가중됐다. 기업들의 국감 스트레스는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국감 시즌만 되면 어느 기업이 어떻게 불려갔다. 어떤 기업 총수가 국감 증인을 면했다는 둥 뒷이야기가 펼쳐진다.
올해 국감도 마찬가지다. 그나마 국감장의 기업인 망신 주기가 효과도 적고, 불편하다는 여론이 많아지면서 이번 국감에는 기업 총수보다는 실무를 담당하는 전문 경영인 쪽에 초점을 맞추는 변화가 감지되기도 했다.
글로벌 경제 위기와 공급망 재편 속 생존을 위한 몸부림에도 시간이 모자란 경영진들이 국감장에 불려가 망신만 당하는 일은 우리 기업들의 성장과 경쟁력 강화에 그리 도움이 되는 일이 아닐 것이다.
17대 국회 국감 당시 연평균 52명이던 기업인 호출 수는 꾸준히 늘면서 20대에는 159명으로 확대됐다. 더구나 소환된 기업인들을 상대로 공격적인 질문을 쏟아낼 뿐 정작 기업인들의 답변은 들으려고도 하지 않는 망신 주기 국감이 되풀이되면서 국감을 통해 국정과 기업 운영 실태를 들여다본다는 본연의 취지는 찾을 수 없게 됐다는 지적도 커지고 있다.
물론, 우리나라는 세계은행의 기업하기 좋은 나라 순위 조사에서 매년 수위권을 달리고, G20 중에서도 톱(Top)급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기 위해 국회가 하나만 더 신경을 쓴다면 어떨까. 글로벌 위기 속에 생존을 건 비상경영에 매진하기도 바쁜 기업인들이 위기 대응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야말로 국회가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드는 데 일조할 수 있는 가장 쉬운 길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