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여 년 전인 것 같다. 동네 사진관에는 흑백으로 된 가족사진이 여러 개 걸려있었다. 어린 나는 그것을 보며 참 보기 좋다고 생각했다. 한편으로는 부러웠다. 그때 나도 어른이 되어 가정을 꾸리면 가족사진을 찍어 자랑스럽게 거실에 걸어놓을 것이라고 다짐했다. 세월이 흘러 우리 집 거실에는 천연색 가족사진이 걸려있다. 유년의 풋풋한 꿈은 이루었지만 왠지 마음 한구석이 허전하다. 사진 속 가족들은 활짝 웃고 있지만 어딘가 부자연스러웠다. 사진사의 연출이 너무 과해서인지 나는 만족하지 못하고 있다. 흑백과 컬러사진의 차이에서 느끼는 선입관일 수도 있다.
컬러사진을 보면 마치 발가벗은 기분이 든다. 점하나, 주름하나, 어느 것 하나 빼놓지 않고 자세하게 묘사되기 때문이다. 더욱 선명하고 화려하게, 형형색색의 색감과 또렷한 색상을 추구하는 컬러사진에서 느끼는 감정은 몰 인간적이다. 비주얼을 강조하는 지금의 추세와 너무 닮았다. 이에 비해 흑백사진은 어떠한가. 흑백사진은 실물의 형상을 검은빛의 농담만으로 나타낸다. 컬러사진이 디지털을 대표한다면 흑백사진에서는 아날로그의 진한 향수가 느껴진다. 그래서 흑백사진에서는 인간적인 면모를 느낄 수 있다. 추억을 더욱 사무치게 하는 독특한 매력이 있다.
흑백사진은 컬러에 묻혀버린 사물의 실제 모습을 선명하게 드러내 준다. 일상의 모든 복잡한 색이 흑백 모노톤으로 단순하게 정리하여 보는 이로 하여금 더욱 몰입하도록 한다. 또한 절제된 흑백 이미지는 사진 감상자의 상상을 자극해서 또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 내기도 한다. 따라서 보이지 않는 컬러, 흑백의 대비와 선으로 표현되는 흑백사진은 표현의 깊이가 있다. 무엇보다 힘이 살아있다. 사물로 표현하자면 컬러사진은 차가운 얼음과 같고 흑백사진은 온돌방의 아랫목과 같다. 지나친 논리 비약일지 모르지만 느끼는 감정이 그렇다.
그러나 흑백사진은 이제 옛 유물이 됐다. 그 시절 유난히 인간적이었고 소박한 사람들의 꿈도 과거 속에 묻혔다. 아쉬움이 밀물처럼 밀려온다. 사람들은 중요한 순간을 남기고 싶어 사진을 찍는다. 돌 사진이 그렇고, 졸업사진이 그렇고, 결혼사진이 그렇다. 이 기념사진은 자연스러움이 덜한 것이 흠이다. 사진을 찍는 사람의 간섭이 심하기 때문이다. 고개를 숙여라, 자연스럽게 웃어라 등 인위적인 표정을 강요당한다. 그래서 사진 속 사람들의 표정은 천편일률적이다. 감동은 없다. 좋은 날을 기억하고 싶어 하는 기념 개념만 있을 뿐이다. 이 또한 나름 의미가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인간의 기억은 컴퓨터가 아니어서 시간이 지나면 쉽게 잊힌다. 하지만 가끔 앨범 속 사진을 보면 그날의 일들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그것이 사진이 갖고 있는 최고 장점이다. 인간은 사진을 통해 감동을 전하고 무엇을 알리기 위한 용도로도 활용한다. 화가의 그림 못지않게 가치를 지닌 사진작가의 작품은 큰 감동을 준다. 기념사진과는 다른 생명력이 살아 움직인다. 아울러 무엇을 전달하려는 메시지를 사진에 담으면 기대 이상의 효과를 얻는다. 열 마디의 말보다 한 컷의 사진이 더 유용하다. 한국철강협회 주최의 ‘철강산업 사진 공모전’이 이것을 입증하고 있다.
철강이 우리 생활에 어떻게 쓰이는지를 알리는데 최고를 들라면 철강산업 사진 공모전에서 나온 작품이다. 그 공헌 때문에 전통으로 자리 잡았다. 올해로 24회를 맞는 이 공모전은 차갑게 인식되던 철강이 이미지를 벗는데 큰 역할을 했다. 철강협회의 노고가 컸음을 짐작할 수 있다. 해마다 수많은 작품이 접수되면서 중요한 행사로 자리매김했다. 올해 주제는 ‘철, 사람을 담다’이다. 우리가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철이 어떻게 숨 쉬는지 작품으로 만날 아마추어 작가들에 거는 기대가 크다.
시간은 앞으로 흐르지만 사진은 과거로 흐른다. 과거 수많은 기억의 편린(片鱗)들이 빛바랜 사진 속에 숨어있다. 그것을 깨우면 추억이 되고 미래를 꿈꾸는 희망이 된다. 철강산업 사진 공모전 취지도 여기에 있다. 사진 속에는 희망찬 미래를 열고자 하는 큰 뜻이 담겨있다. 차가운 철이 아닌 우리 생활 속에 인간과 호흡하는 따뜻한 철을 발견하는 것이 ‘철, 사람을 담다’의 최고 지향점이다. 이번 공모전이 기대되는 이유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