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박을 먹다가 ...

수박을 먹다가 ...

  • 철강
  • 승인 2023.08.09 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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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명 손유진 기자 yjson@snm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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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수박을 먹었다. 맛있는 수박을 자르려는데 문득 그린스틸을 외치는 우리 업계가 생각났다. 묵직한 육중에 초록색 바탕에 비정형으로 그여진 검은줄. 중후장대이자 굴뚝산업이라 불리는 철강 제조업과 똑 닮았다. 

줄무늬를 손으로 문질러봤다. 역시나 안 지워진다. 수박 껍질에 줄무늬를 지워보려 애쓰는 철강업계의 요즘 모습이 투영됐다. 태생부터 탄소 배출, 남성 중심, 산업재해 DNA가 설계돼 만들어졌는데 지워질 리가 만무하다. 

전과범에는 빨간줄, 탄소주범은 검은줄. 검은줄 지워보겠다고 여간 노력하는 게 아니다. ESG(환경·사회·지배구조)를 제창하는 한편, 요즘은 지속가능경영성과를 담아내는 통합보고서 발간이 유행이다. 그런데 통합보고서에는 잘한 것만 담겨있다. 부정적 사건들과 의문 제기는 가독성과 현란한 비주얼 콘텐츠 구성에 묻혔다. 

E(환경). 제철공정 전환한다 하지만 먼미래만 공약해 놓은 상태다. 한 치 앞을 알 수 없고 상용화된 기술 없는 지금 시점에서는 이론적으로 가능한 중장기 전략이 믿음이 안 가는게 사실이다. 야적된 원재료들은 물을 뿌려도 비산먼지가 날리고, 폐수가 제대로 처리되지 않는 등 문제도 여전하다. 새로운 기술을 시행하기 위해 바다 매립을 해보겠다고 했지만 해양포유동물 출현과 백사장 유실 사례를 무시했다며 환경보호단체의 지탄을 받기도 했다.

S(사회). 사회공헌활동으로 식재, 초복음식 제공, 교육기부 등 마치 봉사왕 선발대회라도 나간 것 같다. 그런데 안은 어떤가. 코일에 압사, 지꺼기를 긁다, 고온 철강분진에 깔려 등 잇달은 산재사고가 발생했다. 이 밖에도 비정규직, 직장내 괴롭힘, 남녀 임금차별, 성추행과 성폭력 등이 비일비재하다. 안에서 사람을 죽이고 밖에서는 사람 살리는 게 철강업계가 꿈꾸는 S란 말인가.

G(지배구조). 애당초 바꾸기 어렵다. 지배구조가 투명하지 못한 이유는 철강기업은 오너기업이 대부분이어서다. 형제가 나눠가지거나 친인척이 함께하거나 아버지가 아들에게 물려주고 2세, 3세 경영을 하는 곳이다. 전문 경영인이 전두지휘하는 기업도 외부 입김이 크게 작용한다는 것은 모두가 공공연하게 알고 있다.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이라는 말이 있다. 외실이 아닌 내실 있는 성과를 달성할 때다. 수박이 원래 그렇게 생겨먹은 걸 어떻게 지운단 말인가. 근데 수박 껍질을 깎으면 된다. 대신 내실이 튼튼해야 수박을 깎을 수 있다. 박피하는 고통 없이는 철강업계가 ESG를 달성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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