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이 2026년부터 본격 시행하는 탄소국경조정제도(CBAM)의 전환기간이 시작됐다. 앞으로 유럽지역 수출을 위해서는 수출 품목의 탄소 배출량을 의무적으로 보고해야 한다. CBAM의 전환기간은 10월 1일(현지시간)부터 2025년 말까지로 2년 3개월간이다. EU는 제3국에서 생산된 6개 제품군(철강제품, 알루미늄, 시멘트, 전기, 비료, 수소)에 우선적으로 적용되고 점차 적용 품목을 확대해 나간다는 계획이다.
EU 지역에 수출하기 위해서는 생산 과정에서 탄소 배출량을 산출해 분기 단위로 보고해야 하고 본격적으로 CBAM이 시행되는 2026년 1월부터는 비용 부담이 발생하게 된다. 전년도에 수출한 제품의 탄소 배출량에 상응하는 CBAM 인증서를 구매해서 제출해야 하기 때문이다. 보고를 하지 않을 경우 톤당 10~50유로의 벌금이 부과되는 등의 조치도 취한다는 점에서 국내 제품의 유럽 수출에 어려움이 따를 것으로 우려된다. 특히 유럽의 CBAM 시행에 따라 가장 큰 피해가 우려되는 제품은 철강이다. 작년 기준 한국의 EU 수출액은 681억달러다. 이중 CBAM 대상 6개 품목의 수출액은 51억달러에 달한다. 철강제품이 차지하는 비중은 45억달러로 90%에 육박하고 있다.
전환기간 시행을 앞두고 주요국들이 제시한 탄소배출량 계산방식 등에 대해 어느 정도 받아들이면서 시행령이 다소 완화되기는 했지만 유럽의 요구에 맞는 준비가 요구되고 있다. 당초 유럽은 당초 전체 생산 공정을 하나로 묶어 가중 평균을 내는 방식으로 탄소 배출량을 계산할 계획이었으나 내년 말까지는 EU 산정 방식 외에 제3국의 기존 탄소가격제 혹은 별도로 검증된 자체 산정체계를 인정키로 했다. 더욱이 생산 공정별로 탄소배출량이 차이가 있기 때문에 이에 맞게 배출량을 산정해야 한다는 기업들의 입장이 반영됐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여전히 의무 보고 규정이 까다롭고 자칫 민감한 기업정보가 과도하게 유출될 수 있다는 지적이 많다는 점에서 대안 마련도 요구된다. 유럽에서부터 시작된 이러한 탄소규제는 앞으로 다른 지역으로 더욱 확산될 전망이다. 이에 따라 상대적으로 탄소배출량이 많은 우리나라 기업들의 부담이 더욱 가중될 수 있어 선제 대응이 필요하다. 특히 탄소규제가 새로운 무역장벽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어 수출 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에는 직접적인 영향이 불가피할 것으로 우려된다.
최근 영국도 EU와 마찬가지로 수입 철강제품에 대해 탄소국경세 부과를 적극 추진하고 있다. 영국 정부도 지난해 말 EU가 합의한 탄소국경조정메카니즘 도입 결정 이후 본격적으로 탄소세 부과를 검토하고 있다. 영국이 검토하고 있는 탄소국경세는 자국 철강산업 보호를 목표로 수입 철강제품에 대해 탄소배출 비용을 부담시키겠다는 것이다.
미국 정부도 탄소 배출량을 기준으로 한 새로운 관세 부과 기준을 설립하고 우호국들과 관련 무역기구 설립에 나서는 등 규제를 추진하는 등 탄소규제를 명분으로 선진국을 중심으로 한 보호무역주의가 더욱 강화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에 따라 기업들의 철저한 준비와 대응이 요구되고 있고 정부차원에서의 지원도 더욱 강화할 필요가 있다. 기업들이 대응하는데 있어서 애로사항을 지속적으로 수렴해 대응책을 마련하는 것은 물론 보다 과감한 투자와 지원을 통해 기업들이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