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손자의 돌잔치 초청 전화였다. 순간 친구를 통해 벌써 손자 볼 나이가 되어버린 나 자신을 발견하곤 놀란다. 그리고 걱정이 됐다. 돌잔치에는 필수적으로 따르는 것이 금반지 선물이다. 이 금반지는 한 돈에 5만∼6만 원 할 때는 부담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 시세는 30만 원을 훌쩍 넘는다. 친한 친구이니 체면 상 한 돈은 선물해야 하는데 금전 부담이 컸다. 그렇다고 안갈 수도 없고 그래서 생각한 것이 축의금으로 대체하는 것이었다. 친구는 부담 갖지 말고 식사나 하고 가라지만 분명 진심이 아닐 것이다.
금값이 올라도 너무 올랐다. 시세로 한 돈에 36만 원이 넘는다. 경제가 어렵다는 증거이다. 금은 안전자산으로 불린다. 이에 따라 경제가 어려울수록 투자 대상으로 금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세계 어느 나라에서나 그 가치를 인정받기 때문에 사고파는데 거리낌이 없는 특징을 갖고 있다. 금이 중요한 자산으로 인식된 것은 옛날부터이다. 희귀성과 아름다움으로 엄청난 부의 상징이 되었다. 부식되지 않은 성질로 오랜 시간 고귀한 가치를 유지한다. 이러한 이유로 금은 교환 매체, 가치 저장 수단 등으로 부와 권력을 대변했다.
이 높은 가치 때문에 고대에는 금을 만들려는 시도도 있었다. 연금술사의 출현을 두고 하는 말이다. 그러나 그들은 그것이 어리석은 생각이라는 것을 쉽게 깨닫지 못했다. 하지만 후한 평가도 받았다는 것은 불행 중 다행이다. 새로운 실험 기구를 만들어내고, 새로운 물질을 발견하는 등 근대 화학의 발달에 많은 기여를 한 점을 높이 산다. 물론 이에 대해 많은 논란이 있지만 대체로 화학의 발달에 대한 연금술의 공헌을 인정하는 추세다. 특히 금광이 없었던 유럽의 경우 금이 귀했기 때문에 이런 허황된 생각이 나왔고 실제로 행동이 뒤따른 것이다.
우리나라도 금과 관련한 흑역사가 있다. IMF라는 엄혹한 바람이 거세게 몰아치던 때가 있었다. 금 모으기 운동이라는 국민적 희생이 눈물겨웠던 1997년을 잊을 수 없다. IMF 구제금융 요청 당시 부채를 갚기 위해 국민들은 장롱 속의 금을 자발적으로 내놓았다. 나라의 빈 곳간을 금으로 채우고자 안간힘을 썼다.
신혼부부는 결혼반지를, 젊은 부부는 아이의 돌 반지를, 노부부는 자식들이 사준 효도 반지를 내놓았다. 운동선수들은 평생 자랑거리였고 땀의 결정체인 금메달까지 내놓기도 했다. 당시 대한민국은 외환 부채가 약 304억 달러나 달했다. 이 부채를 변제하기 위해 351만여 명의 국민이 동참했다.
그 결과 18억 달러 어치 약 227톤의 금이 모아졌고 한다. 이 운동에 세계가 감동했고 그 희생이 바탕이 되어 IMF를 조기 졸업할 수 있었다.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아야 하겠지만 당시 우리 국민들의 단결력은 세계가 인정할 만했다. 어느 나라도 할 수 없는 일을 우리 국민이 해냈기 때문이다. 문어발식 확장으로 IMF 구제금융을 받게 한 원인 제공자는 대기업이었다. 그러나 애꿎은 국민들만 희생해야 했다. 나라가 어려움에 닥치면 분연히 일어나는 우리 민족의 저력이 생생히 증명됐지만 세월이 흐른 지금 아쉬움도 남는다.
그때 국민들의 희생만큼 기업도 바뀌었나 하는 것이다. 결론은 그렇지 않다는 생각이다. 아직 손가락질받는 기업이 많다. 경제 발전에 배치되는 악덕 기업도 여전히 존재한다. 우리 업계는 이에 해당하는 업체가 없는 것은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금을 사업으로 삼는 업체만 있을 뿐이다. 고려아연과 LS MnM 등 비철금속업체가 그 주인공이다. 그야말로 금쪽같이 소중한 금을 통해 매출을 발생시킨다. 금의 높은 가치를 인정받는 요즘 이 회사도 덩달아 발전하고 있을 것으로 믿는다. 다만 사업 비중이 크지 않은 것이 아쉬울 뿐이다.
‘황금 보기를 돌보듯 하라’는 최영 장군의 말이 생각난다. 이 세상에는 최영 장군만 빼고 금을 돌보듯 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성경에서는 ‘금을 하느님의 영광’이라고 했다. 불교에서는 불상을 금으로 만들고 사원을 금으로 만들기도 한다. 이처럼 금은 종교와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이것이 금의 가치를 증명하고 있고 복부인의 손가락에 굻은 금반지를 끼게 하는 원인이다. 친구가 손자 돌잔치에 금반지를 안 사 왔다고 섭섭해하지 않을까 걱정하는 이유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