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리 빼앗긴 국산 후판…“후판 AD 제소? 열연보다 어려워”
수입 주도하는 조선업계, 국산 가격 낮추기 전략
공통된 의견 나와야 후판 AD 가능…“제조사별 입장 달라”
국내 후판 시장에 무역 장벽을 세워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건설 등 주요 전방산업이 어려움을 겪으며 국산 철강재 판매가 줄어드는 가운데, 견조한 수주잔량을 바탕으로 한 조선산업 시황 개선 수혜를 사실상 수입산 후판이 누리고 있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국내 철강 제조업계는 지난해 수입이 급증한 열간압연강판 반덤핑(AD) 제소 카드를 손에 쥐고 고심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이에 산업의 기초 소재로 사용되는 열연강판 AD 제소 가능성이 높은 가운데 후판 AD 제소가 더욱 시급하다는 주장이 나왔다.
▣ 수요자 중심의 후판 시장…힘 잃은 철강업계 “열연보다 더 어렵다”
국내 후판 시장은 철근 시장과 같이 수요자의 힘이 강력하게 작용하는 곳 중 하나다. 연간 800만 톤 후판 시장에서 조선업계가 사용하는 물량은 500만 톤 이상인 것으로 추정된다. 건설(철근)과 자동차 등을 포함해 단일시장으로는 최대 규모에 속한다.
국내 조선업계에서 사용하는 물량이 많아 가격 협상력 또한 철강업계가 열위에 놓여있다는 평가가 주를 이룬다. 업계 관계자는 “조선업계가 후판 수입량과 수입 제품 가격을 통해 국산 가격을 흔들고 있다”라며 “공급가격 협상에서도 국산과 수입산 가격을 놓고 국산 가격을 뭉개는 경우가 발생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이에 철강업계는 후판 AD 제소가 다른 제품군과 비교해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특히 조선용 후판 공급가격이 시중 가격 대비 낮은 수준을 형성하고 있어, 철강업계 입장에서도 뼈아픈 부분으로 작용하고 있다. 또한 범람하는 저가 수입재 영향으로 원재료 가격 상승에도 제품 가격을 원가 상승분만큼 인상할 수 없는 부분도 AD 제소 주장 배경에 자리하고 있다.
다만 철강업계는 후판 수입을 조선사가 주도하고 있어 후판 AD 제소에 어려움이 많을 것이라는 의견을 내놨다. 열연강판의 경우 유통업계가 수입을 주도하는 한편 후판은 실수요자 중심의 수입이 주를 이룬다는 설명이다. 특히 조선업계는 무역통상 관련 정부기관에 국내 철강가격으로는 산업 경쟁력을 갖출 수 없는 점을 강조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 관계자는 “현재 후판 수입을 주도하는 것은 유통사가 아닌 조선사들”이라며 “국내 가격을 낮추기 위해 사실상 고의적으로 중국산과 일본산 물량을 수입하는 모양새”라고 주장했다. 이어 관계자는 “열연의 경우 유통상이 수입을 주도하는 반면 후판은 수요업계가 수입을 주도하고 있어 상황상 AD 제소 과정에서 수요자의 반대 등으로 인해 복잡하고 어려울 것”이라며 “이와 같은 상황에서 중국 철강업계는 한국 조선사를 대상으로 프로모션 강화를 진행 중이며 수입산 물량은 더욱 늘어날 수 있다”라고 부연했다.
▣ 후판 AD 제소?…쉽사리 의견 내놓기 어려운 철강업계
수입산 철강재에 대해 AD 제소를 진행하기 위해선 관련업계의 공통된 의견이 중요하다. 특정업체의 의견만 고려할 경우 특혜와 관련된 시비를 피하기 어렵다. 업계 관계자는 “수입 제품에 대한 후판 제조사의 공통된 의견이 나와야 할 것”이라며 “산업부 또한 후판업계의 공통된 의견이 나오지 않으면 관련 사항을 진행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다만 각 후판 제조사의 후판 판매 비중에 따라 입장이 달라 공통된 의견이 나오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업계 관계자는 “조선용 판매 비중에 따라 후판 AD 제소에 대해서도 입장이 달라질 것”이라며 “조선용 판매 비중이 높은 제조사는 후판 AD 제소가 시급하지만, 그렇지 않은 제조사는 조금 더 추이를 지켜볼 가능성이 있다”라고 설명했다.
이에 본지 취재를 종합해 보면 국내 후판 제조업계는 후판 AD 제소에 대해 현재 공식적인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포스코는 “면밀히 예의주시하고 있다”라고 설명했으며, 다른 후판 제조사 관계자는 “현재 회사 차원에서 공식적으로 준비하는 것은 없지만, 내부적으로 여러 고민은 있으며 힘을 보태야 할 시기가 되면 움직임이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한편 국내 후판 제조업계는 조선용 후판 수익성 하락이 심화하자 비조선용 시장 개척에 적극 나설 계획이다. 빌트업 H형강 등 건설용 판매를 늘릴 계획이며 해상풍력 시장 확대도 기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