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정훈 동기술연구조합 이사(전 수원과학대학교 교수)
구리는 우리 인류가 알고 있는 가장 오래된 금속 중에 하나로 청동기시대 이후 수 천년 동안 사용해 오고 있다. 구리는 우수한 전도성으로 전선 등에 사용되고 또 내식성이 우수하여 파이프, 배관 등의 건축자재로 널리 사용되고 있다. 특히 최근 반도체나 전기자동차와 같은 최첨단 산업에도 필수적인 재료이다.
이와 같이 구리의 용도는 주로 공업재료로 사용되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다른 금속에서는 볼 수 없는 다양한 색상의 구리는 음악, 미술, 건축 등 분야에서도 많이 사용되고 있다. 다음 내용들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가장 먼저 연녹색의 자유의 여신상을 들 수 있다. 자유의 여신상은 미국 뉴욕 리버티섬에 있는 건축물로 미국과 뉴욕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상징물이다. 이 동상은 미국독립 100주년을 맞이하여 프랑스가 미국에게 준 것으로 세계를 밝히는 자유(Liberty Enlightening the World)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자유의 여신상 크기는 높이가 46m, 받침대까지 합하면 93m에 이른다. 동상의 재질은 구리로, 그 무게가 무려 27톤에 달한다. 프랑스 조각가 프레데릭 오귀스트 바르톨디가 디자인 했으며, 내부의 철골구조는 프랑스 파리의 상징인 에펠탑을 설계한 구스타브 에펠이 제작했다. 제작된 철골구조에 두께 2.4㎜의 구리판을 입혀 전체를 완성했다. 프랑스에서 제작된 동상은 운반에 어려움 때문에 동상 표면의 구리판을 약 300여 조각으로 분해한 후 운반, 미국에서 재조립했다.
1886년 설치 당시 자유의 여신상의 색은 현재와 같은 연녹색이 아니라 구리 특유의 붉은 갈색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표면의 색은 점차 연녹색으로 변하게 되었다. 이는 구리가 공기와 접촉되면서 산화되어 표면에 녹청(patina)을 형성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형성된 녹청은 구리 표면에 강력한 산화층을 형성하여 더 이상의 산화를 억제하는 일종의 코팅제 역할을 하며 점차 연녹색으로 변화하게 된다.
최초 구리는 공기 중에서 산소와 반응하여 붉은 색의 산화구리를 형성(Cu₂O)를 형성하고, 이후 계속해서 산소와 반응하여 검은 색의 산화구리(4CuO)로 변한다. 여기에 대기 중 많은 황(S)과 반응하여 검은 색의 CuS을 형성한다. 또한 CuO는 대기중 이산화탄소와 눈, 비 등의 수분과 반응하여 녹색의 Cu₂CO₃(OH)₂, 청색의 Cu₃(CO₃)₂(OH)₂, 녹색의 Cu₄SO₄(OH)6라는 세 가지 화합물을 형성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순수한 구리는 대기 중에 노출되어 시간이 변함에 따라 최초 붉은 갈색에서 검은색으로, 이어서 연녹색으로 변화하게 된다. 또한 녹청의 생성과 변화된 색상 정도는 온도, 시간, 습도, 화학적 환경 등 다양한 변수에 따라 결정되며 자유의 여신상의 경우 지난 수십년간 공기와 습기가 반응하여 만들어낸 결과물이며 자유의 여신상만의 시그니쳐 컬러가 형성됐다.
우리나라에도 이와 같이 산화되어 녹색이 된 곳을 찾아볼 수 있다. 여의도 국회의사당과 서울역 및 한국은행, 충남 천안의 독립기념관 지붕은 모두 순동으로 제작되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연녹색으로 보다 밝은색으로 변화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구리는 음악에서도 중요한 소재인데, 황금빛 금관악기는 모두 황동으로 제작되고 있다. 오케스트라 연주회에 가보면 악단의 배치상 뒷 열에 황금빛 악기들이 눈에 띈다. 이 악기들이 주로 금관악기이다. 일명 브라스(brass)라고 부르는 것처럼 황동으로 만들어진 악기로 압도적 음량을 자랑한다. 소리가 크다 보니 목관악기보다 뒷 열에 배치된다.
금관악기는 보통 호른, 트럼펫, 트럼본, 튜바로 구성되며 관악기의 음색은 관악기 내부의 공기가 진동하는 방식에 따라 결정된다. 따라서 음색은 악기의 모양과 관의 길이뿐만 아니라 진동관의 재료 품질에 따라 미묘한 정도로 달라지게 된다.
황동은 구리와 아연의 합금으로 가공이 쉽고 녹이 슬지 않으며 미관이 아름다워 오랫동안 금관악기의 재료로 사용되어 왔다. 악기의 음색은 사용된 구리와 아연의 비율에 따라 달라지며 악기 제작자들은 이를 활용하여 다양한 소리를 내는 악기를 제작한다.
Cu 70%와 Zn 30%의 Yellow Brass는 밝고 힘찬 음색을 내며 Cu 85%와 Zn 15%로 구성된 Gold Brass는 풍부하고 광대한 음색을 낸다. 간혹 은빛색의 악기를 보게 되는데 이는 황동에 니켈을 더한 니켈-실버로 황동보다 내식성이 뛰어나며 울림이 깊다고 알려져 있다.
국내 역사에서 성덕대왕신종은 우리에게 에밀레종이란 이름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통일신라시대의 범종으로 우리나라 범종 가운데 가장 크고 화려하다. 종소리가 마치 에밀레하고 어미를 부르는 것처럼 들려 이 종을 에밀레 종이라 부르게 되었다 한다.
지난 1999년에 종의 성분을 분석하였는데 구리 80~85%, 주석 12~15% 그밖에 납, 아연 등이 확인되었다. 다행히 인성분이 검출되지 않아 아이를 쇳물에 넣었다는 전설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성분분석 결과를 보면 구리에 주석이 들어간 청동(bronze)이다.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전부터 사용했던 합금으로 이 금속의 등장으로 인류는 청동기시대를 맞이하게 된다. 원래 청동의 색은 불그스름한 구리색에 가깝다. 그런데 산화가 되면 푸른빛이 도는 초록색으로 변하게 된다. 우리가 박물관에서 청동기시대의 유물을 보면 대부분 초록을 띠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청동의 용도는 순동이나 황동에 비해 주조성이 좋고 내식성이 강해 화폐, 종, 미술공예품, 동상, 병기, 기계부품 등 널리 사용되고 있다. 은백색의 고가구 속 장석에서도 구리를 볼 수 있다. 장석이란 목가구 등에 장식 및 개폐용으로 사용되는 금속을 말한다. 장석은 가구의 문을 여닫거나 하는 기능적 역할 이외에도 다양한 문양으로 가구의 아름다움을 나타내는 장식적인 기능도 겸하고 있다. 이러한 장석에 사용되는 재료는 무쇠, 청동, 황동, 백동 등이 있다.
백동이 본격적으로 사용된 것은 조선시대 후기로 그 색상이 은백색을 나타내 고급스럽고 나비, 꽃 등의 화려한 문양이 적용되어 가구의 가치를 더욱 높여준다. 백동은 구리에 니켈이 10~30% 정도 포함한 합금이다. 니켈의 양이 많은 것은 은과 비슷한 은백색을 띠고 있어 은의 대용품으로 화폐 등에 사용되기도 한다. 우리나라의 동전중 100원 및 500원 동전이 백동으로 만들어졌다 또한 구리에 니켈이 첨가됨으로써 강도, 내식 및 내산화성이 증가하며 해수에 대한 내식성 및 내침식성이 우수하여 콘덴서, 열교환기 등에 사용된다.
이처럼 순수한 구리는 붉은 갈색을 띠지만 산화과정을 거쳐 검은색에 가까운 갈색으로 변하고 점차 연녹색으로 되고 황금빛의 황동, 푸른빛의 청동 그리고 은백색의 백동까지 구리의 색은 참으로 다양하다. 보통 구리는 전선 등의 공업재료로만 알고 있지만 앞으로 우리생활 주변에 다양하게 사용될 수 있는 보다 친숙한 재료다.
최근 어느 연구기관에서 구리를 원자 단위로 쌓을 수 있는 방법을 개발하여 360가지 이상의 총천연색 구리를 개발했다 하니 그 활용도가 더욱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