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외 모든 기업들에게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은 피할 수 없는 시대적 어젠다라고 한다. 특히 제조공정에서 많은 에너지를 사용하는 철강·비철금속 제조업체들은 환경 이슈를 극복해야 지속가능한 경영으로 다가설 수 있다. 지나치게 환경(E) 요인만 강조되는 경향이 있지만, 전통적인 제조방식을 고수하면 시대적인 흐름에서 도태될 것은 분명하다.
제조기업들이 탈탄소 시대의 친환경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재생에너지 사용이 필수가 되고 있다. 제조 공정에 필요한 에너지를 재생에너지 100%로 활용한다는 이니셔티브인 RE100이 대표적이고, 이러한 흐름에 맞춰 과거 정부에서 발전 구조 개편을 추진하면서 신재생 에너지 비중을 크게 높이는 정책을 펼쳐 왔다. 하지만 아직 국내에서 신재생 에너지 보급은 여전히 제자리 걸음을 걷고 있다.
특히 수소환원제철이나 직접환원철 활용 전기로 등에 있어서 재샌에너지는 필수적이다. 블루수소와 달리 그린수소를 만들기 위해서는 친환경 재생 에너지에 의존해야 한다. 또한 기존의 고로 기반의 일관제철소는 각종 부생가스를 에너지원으로 삼아 전기를 생산해 사용했기 때문에 외부 전력 조달이 제한적이었는데, 수소환원제철로 전환하면 부생가스 발전을 할 수 없어 막대한 외부 전력을 필요로 하게 되는데, 화석연료 에너지를 사용하면 탄소중립은 아예 이룰 수가 없다.
최근 서울대 도서관에서 기후경제학 추천도서로 선정된 ‘착한 자본의 탄생’에서 김경식 고철연구소 소장 겸 ESG 네트워크 대표는 국내 재에너지 시장의 가장 큰 문제는 그동안 정책에서부터 수요 창출은 외면하고 외형 확대에만 치중한 점을 꼽았다. 한전의 철옹성 같은 에너지 판매독점이 계속되는 한 재생 에너지 생산·공급 증대는 공허한 메아리일 뿐이라는 지적이다. 민간자본의 투자로 만들어진 재생에너지를 자유롭게 사고 파는 시장이 만들어져야만 기업이나 지역에서 수요가 만들어진다고 주장했다.
재생에너지 생산 비중을 중장기적으로 산업용 전력 수요인 50% 이상까지 끌어올려야 하고 재생에너지 수요가 확대되면 공급시장에서도 생산을 적극적으로 확대할 동기가 발생하는 선순환 구조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얼마전 본지를 방문한 원자재시장 분석기관 CRU의 그린스틸 컨설턴트도 한국의 에너지 시장 구조 개편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현재 독일 등 유럽에서는 풍력 등 재생에너지 비중이 월등히 높아 수소환원제철 등 친환경 철강기술 개발에 한 발 앞서 있다.
결국 국가 전력정책에 반드시 신재생 에너지 시장 확대방안이 담겨야 하는데, 국내 전력시장은 한전이 독점하고 있다. 그래서 한전을 민영화하여 전력시장을 개방해야 한다는 주장이 이어지고 있다. 개방 방식에 따라 예상되는 문제점도 많다. 전력 소매 시장만 개방하는 것이라면 한전이 송·배전망을 독점하는 구조가 바뀌지 않는 한 민영화와는 거리가 멀다. 마치 알뜰폰 사업자들이 기존 이동통신사의 통신망을 빌려서 저렴한 서비스 요금을 제공하는 것과 유사하기 때문이다.
탄소중립은 국가적 과제이기 때문에 민간의 재생에너지 투자 확대를 유도하는 제도적인 뒷받침이 있어야만 국내 제조기업들이 재생에너지 사용을 늘리며 탄소 배출을 최소화 하는 공정 혁신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