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병성 칼럼 - 큰 어른의 깊은 가르침

황병성 칼럼 - 큰 어른의 깊은 가르침

  • 철강
  • 승인 2024.06.24 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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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명 황병성 bshwang@snm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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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천에서 용 난다’라는 말이 있다. 시원찮은 환경이나 변변찮은 부모에게서 빼어난 인물이 나는 경우를 이르는 말이다. 이와 비슷한 의미로 쓰이는 것 중 자수성가(自手成家)라는 말이 있다. 물려받은 재산이 없이 자기 힘으로 벌어서 살림을 이루고 재산을 모으는 것을 말한다. 사회적인 성공을 위해서는 근면 성실한 노력은 물론이고 많은 절제가 필요하다. 이에 옛날이나 지금이나 자수성가하기는 ‘하늘의 별 따기보다 어렵다’라고 한다. 부의 대물림이 심한 요즘은 더욱 그렇다.

‘금수저’라는 신조어기 유행으로 번지던 때가 있었다. 부모로부터 물려받을 재산이 많은 자식을 일컫는다. 2023년 대한민국 부자보고서에 따르면, 금융자산 100억 원 이상 부자는 ‘부모의 증여·상속’이 현재 자산 형성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결과는 한국 사회가 부의 대물림이 심화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하지만 상속을 통해 부자가 된 사람이 모두 부유한 삶을 사는 것은 아니다. 상속받은 재산을 잘 관리하지 못하거나, 자신의 능력이 부족하면 재산이 물거품처럼 사라지는 것을 수없이 목격했다.

그러나 상속은 부자가 되는 데 가장 빠른 방법 중 하나인 것은 분명하다. 자수성가형 부자 증가가 한계에 직면한 이유다. 2023년 대한민국 부자보고서에 따르면, 부자 10명 중 6명이 상속형 부자로 나타났다. 지난 10년간 이 수치는 큰 변화가 없었다. 이것은 자수성가형 부자가 되기 위해서는 더 많은 노력과 열정이 필요함을 말해준다. 운도 따라주어야 한다. 부자가 아닌 입장에서는 부의 대물림을 바라보는 마음은 몹시 불편하다. 그리고 그 부를 지키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행태를 보는 시선도 곱지 않다.

우리 주위에는 돈을 모을 줄만 알았지 쓸 줄 모르는 수전노(守錢奴)와 같은 부자가 수없이 많다. 무덤까지 가져가려는 듯 돈을 쓰는데 굉장히 인색하다. 특히 어려운 이웃이나 사회를 위한 기부에 소극적이다. 오히려 넉넉하지 않은 형편임에도 기부를 하는 사람들이 더 많다. 축적한 부(富)를 지키려는 이 수전노들은 재산을 자식들에게 물려주고자 온갖 편법을 동원 한다. 탈세도 서슴지 않는다. 이것은 평생 김밥 장사로 모은 전 재산을 기부하고 세상을 떠난 어느 김밥 할머니와 비교되는 부끄러운 모습이다.

돈을 열심히 버는 것도 중요하지만 잘 쓰는 것도 중요하다. 부의 대물림을 보며 드는 생각이다. 최근 정문술 전 미래산업 회장이 향년 86세로 별세했다. 고인은 2001년 KAIST에 300억 원을 기부했다. 2013년 다시 215억 원을 보태 바이오·뇌 공학과, 문술미래전략대학원을 설립하는 데 기여했다. 국내에서 개인이 이처럼 고액 기부를 한 사례는 고인이 최초였을 정도다. 그의 생전 약속은 ‘부(富)를 대물림하지 않겠다.’라는 것이다. 그 약속을 실천하며 숭고한 삶을 살다 간 그의 생애는 후세 귀감이 되기에 충분하다.

고인은 생전에 기부를 나 자신과 싸움에서 승리라고 했다. 또 한편으로는 나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는 소중한 기회라고 했다. 그래서 그것을 이뤄 기쁘다는 소회를 밝혔다. 대한민국의 미래 인재 양성에 유난히 심혈을 기울였던 그의 헌신은 차츰 결실을 맺을 것이다. 갖은 고생을 해 번 돈을 선뜻 기부하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 기부자들처럼 큰 뜻을 세우고 실천한 데는 망설임이 없었다. 특히 부를 대물림 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지킨 업적이 위대한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부자는 진짜 부자와 가짜 부자로 정의한다. 진짜 부자는 오늘을 살고 그날의 기쁨에 충실히 한다. 가짜 부자는 내일만 산다. 오늘은 내일을 위해 희생하는 또 다른 하루일 뿐이다. 이에 진짜 부자는 돈을 쓰는 그 순간을 즐기면서 행복해 하지만 가짜 부자는 금고에 돈을 가득 쌓아 놓고 쓰지 못한다. 갖고 있는 돈이 없어질까 봐 노심초사하는 삶은 걱정과 불안의 연속이다. 고(故) 정문술 회장이야말로 진짜 부자의 본보기가 아닌가 생각한다. 젊은이들의 발전에 도움을 주기 위해 돈을 쓰는 것을 즐겁고 행복하게 생각한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의 영면이 아쉬운 것은 이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서 큰 어른을 더는 볼 수 없는 현실이 슬픈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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