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산 철강재가 글로벌 시장에서 내세우는 것은 저가(低價)이다. 품질은 뒷전이고 싸구려가 최고 전략이었다. 이것은 철강에만 국한하는 것이 아니다. 중국이 생산하는 모든 제품이 이렇게 낙인 찍혔다. 노동력이 큰 무기인 저들의 물량공세는 각종 문제를 야기한다. 글로벌 시장 물을 흐려 놓는 것은 물론이고 질 낮은 제품으로 피해를 보는 소비자가 늘고 있다. 이것은 우리가 실생활에서 직접 경험하고 있다. 철강재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공공의 적이 되었다. 급기야 각국은 중국을 향해 보호무역 카드를 꺼내 들었다. 잇따른 수입규제가 그것이다.
중국 철강업계는 이 사태에 위기의식을 느끼며 정신을 차리는 듯했다. 그들은 지난 4월 자국 철강 경쟁력 강화를 위해 저가 수출을 지양하겠다고 발표했다. 중국 정부도 불법경로를 통한 수출을 근절하겠다며 단속 의지를 내비쳤다. 그러나 애초 이 발표를 신뢰하는 사람은 드물었다. 과거 말 바꾸기 행태를 경험한 전례로 미덥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같은 단정은 결국 현실이 됐다. 자국 내수 부진으로 남아도는 철강재가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왔다. 그 피해를 고스란히 본 것은 우리나라였다. 넘쳐나는 저가 중국산은 국산 철강재 가격 세우기에 큰 방해꾼이었다.
국내 철강업계는 수출이 감소하고 내수 판매도 어려움에 처해 있다. 특히 수익성이 큰 문제다. 팔아도 남는 것이 없으니 경영자들의 한숨은 강물처럼 깊다. 이윤을 남기려면 가격을 올려야 하는데 저가 중국산이 앞길을 가로막고 있으니 낭패다. 저가 수출을 지양하겠다는 저들 약속은 공염불이 되고 말았다. 특히 열연강판 오퍼 가격은 3년 5개월 만에 최저치다. 여기에 중국 철강사들은 가격을 더 내리겠다고 공언 한다. 계절적 비수기에 진입한 국내 철강업계는 수익성 방어에 비상이 걸렸다. 모두 중국 탓이다.
중국 철강업계가 공약을 지키지 못하는 것은 집권 3기를 맞이한 시진핑의 다급함과 궤를 같이하는 것 같다. 중국 경제는 지금 부동산시장 침체, 소비 부진, 무역전쟁 등으로 심각한 침체기를 겪고 있다. 시진핑의 지도력이 크게 흔들리는 원인이다. 그는 집권하자마자 미국과 강하게 맞서왔다. 2049년까지 미국을 뛰어넘겠다는 원대한 목표도 세웠다. 세계 초강대국이 되겠다는 ‘중국몽’은 중화사상과 짝짜꿍 죽이 잘 맞았다. 그러나 이 꿈은 펼치기도 전에 허망하게 깨지고 말았다. 미국을 이기려는 과욕이 큰 패착을 불러온 것이다.
세계 초강대국 지위를 잃지 않으려는 미국의 공세는 상상을 초월했다. 중국이 세계 패권국가의 야심을 드러내자 미국은 사실상 전면전을 선언한다. 대표적으로 반도체를 정밀 타격하며 수출통제 정책으로 중국의 숨통을 조였다. 철강과 알루미늄도 마찬가지다. 이에 시진핑은 사실상 두 손을 들었다. 그리고 새로운 지도이념으로 ‘신품질 생산력’을 꺼내 들었다. 미국과 직접적인 대결을 피하면서 기술 혁신을 통한 제조업 업그레이드로 경제 체질을 개선하겠다는 것이다. 흔들리는 지도력을 복원하기 위한 최후 수단이다.
이 지도이념에는 위기를 타개할 정책 방향을 담았다. 이행 주체는 지방정부다. 첨단기술 역량 강화 등에서 중앙정부가 주도하던 기존 방식에서 탈피해 각 지방정부가 목표를 정해 경쟁하는 방식이다. 지방정부가 기술자립화 목표치를 세우고 이행 상황을 점검하지만, 대외 공표는 하지 않겠다고 한다. 철저히 발톱을 숨기려는 전략이다. 이 전략이 꺼져가는 중국몽의 불씨를 되살릴지는 미지수다. 꿈을 꾸는 것은 자유고 성패를 좌우하는 것도 그들 몫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지도이념에는 ‘중국산 하면 싸구려’라는 오명을 벗기 위한 의도가 담겼다. 가격보다는 품질에 승부를 걸겠다는 의지가 크다. 더는 싸구려로 천대받지 않겠다는 복안이다. 이것이 우리에게 위기가 될지 기회가 될지는 아직 판단하기 이르다. 다만 저들의 의지대로 고품질 제품 생산이 현실이 된다면 우리에게는 위기로 작용할 것이 분명하다. 저가 제품은 물론이고 고품질 제품과 싸워야 하는 우리 업계의 부담은 더욱 커질 것으로 우려된다. 지속적인 모니터링을 통해 대책을 세워야 피해를 줄일 수 있다. 과거 뼈저리게 경험했으니 명심해야 한다.
지금 중국은 ‘꼭 1등이 아니어도 괜찮다’는 자세로 끊임없이 연구개발에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다. 우리도 중국의 잠재적인 기술 경쟁력이 무엇인지 항상 확인하면서 주시할 필요가 있다. 저가 제품이 기술력까지 겸비한다면 저들과 경쟁은 더욱 힘들어 질 수밖에 없다. 정신을 바짝 차리고 대비해야 글로벌 경쟁서 살아남을 수 있다. 특히 우리 업계가 더욱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