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최대 사모투자펀드(PEF) MBK파트너스가 영풍과 손잡고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에 뛰어들면서 양측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 지난 75년간 유지해온 고리아연과 영풍의 동업 관계가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고 있다.
MBK는 10월 4일까지 고려아연 지분을 최소 7%, 최대 14.6% 공개매수하겠다고 밝혔다. 공개매수 규모는 지분율로 6.98~14.61%다. 현재 현재 고려아연 지분은 최윤범 회장측(우호지분 포함)이 33.99%, 영풍 측 33.13%, 국민연금 7.57%, 자사주 2.39% 등이다. MBK가 14.6%를 확보하면 영풍과 MBK측 지분은 47.7%까지 늘어난다. 의결권이 없는 자사주 등을 제외하면 지분 52.2%를 확보하게 된다.
MBK가 내세우고 있는 명분은 기업 지배구조 개선이다. 공개매수를 통해 지분을 추가로 취득해 훼손된 고려아연의 지배구조와 기업가치를 개선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번 공개 매수가 성공하게 되면 고려아연의 실질적 경영권은 영풍이 아닌 MBK가 갖게 된다는 점이다.
영풍은 MBK와 고려아연 이사 선임, 정관 개정, 자본구조 변경 등 의결권 공동 행사를 위한 경영 협력 계약을 맺었기 때문이다. 자세한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알려진바에 따르면 영풍은 MBK에 콜옵션을 부여해 MBK가 영풍보다 더 많은 주식을 확보할 수 있도록 했다.
또한 대표이사 및 재무담당임원(CFO) 지명권도 MBK에 있고 등기임원의 수도 1명 더 많이 선임할 수 있도록 해 사실상 MBK가 경영권을 확보하는 구조다.
시장에서는 MBK가 영풍의 우군으로 경영권 싸움에 뛰어든 것은 상당히 이례적이라는 평가다. 더욱이 부실기업을 매입해 기업 가치를 높인 이후 이를 재 매각하는 PEF 본연의 사업영역을 벗어 났다는 비판이 많다.
MBK는 기업 지배구조 개선을 명분으로 내세우고 있지만 이번 인수전은 자본시장에서의 PEF 역할에 어긋난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PEF 도입 취지는 기업의 구조조정 과정에 활용될 수 있도록 자본을 효율적으로 공급하는 것인데 MBK의 현 모습은 경영권 분쟁 한복판에 뛰어들어 단기차익을 노리는 행동주의 펀드와 유사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더욱 우려되는 것은 국가기간 산업을 해외에 매각하거나 기술이 해외로 유출될 수 있다는 점이다. 사모펀드의 투자목적은 짧은 시간(3~5년)에 투자수익을 극대화하는 데 있다. 결국 투자 후 가장 높은 금액을 제시하는 회사를 찾아 경영권을 넘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고려아연은 우리나라 기간 산업의 핵심 공급망 역할을 해왔다. 전자전기, 반도 체, 자동차, 조선, 철강 등 주요 산업에 기초 원자재를 공급한다. 아연·연·구리 등 기초금속과 더불어 금·은 등 귀금속, 인듐, 비스무스, 안티모니 등 희소금속까지 공급하고 있는 핵심 기업이다.
사모펀드가 고려아연의 경영권을 확보한 뒤 수익을 실현하기 위해 해외 기업에 매각할 경우 핵심기술 유출은 물론 글로벌 공급망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고 국내 산업 생태계에도 부정적일 것으로 우려된다.
지방자치단체와 소액주주 단체와 투자자, 해외 관계자들까지 나서고 있는 것도 이러한 우려와 함께 고려아연의 근본적인 경쟁력이 훼손될 수 있다는 걱정 때문이다.
이번 고려아연의 경영권 분쟁이 주목받고 있는 것은 국가 차원에서 보호해야 하는 미래 핵심기술을 보유한 우량기업 사모펀드에 의해 좌우될 것이라는 점이다.
따라서 우리나라도 국가 핵심 산업과 기술을 보호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이 시급하다.
또한 투기자본의 핵심 기업 인수를 제한할 수 있는 법적 근거 마련을 통해 국가 기간산업을 적극 보호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