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1위 비철금속 제련기업인 고려아연 경영권 전쟁 1라운드가 마무리됐다. MBK파트너스·영풍 연합은 주식 공개매수를 통해 5% 이상의 지분을 매입했지만 과반 지분에는 미치지 못했다. 2라운드는 주주총회서 표 대결이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주주총회의 핵심은 세계 1위 비철금속 제조업체의 경영을 누가 잘 할 수 있느냐 그 역량에 대한 평가로 귀결될 것이다.
고려아연은 국내 토종 자본과 기술을 바탕으로 비철금속 분야에서 글로벌 1위를 달성한 기업이다. 또한 2차전지 핵심소재인 니켈과 전구체 생산 기술을 비(非)중국 기업으로선 유일하게 독자적으로 확보, 국내 자본으로 생산시설을 건설 중이다.
특히 주력인 제련업에서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갖추었고 기존 제련업과 연관성이 높은 친환경 성장사업을 새로운 동력으로 삼는 ‘트로이카 드라이브(TD)’ 경영을 추진하고 있다. 신재생 에너지와 2차전지 소재, 자원순환 사업을 키우기 위해 중장기 투자도 차질 없이 진행 중이다. 그래서 경제 안보 차원에서 전략적으로 중요한 위치에 있다.
고려아연과 최윤범 회장은 TD 전략을 세우기까지 상당한 공을 들였다. 만성적인 적자 계열사였던 호주 썬메탈을 흑자로 돌려 세우며 경영능력을 인정받은 최 회장이 국내로 돌아와 대표이사에 오르면서 중장기적인 회사 발전방향에 대해 고민했고, 오랜 기간 대다수 임직원들이 참여한 ‘빅 퀘스천 프로젝트’를 통해 성장전략을 도출했다.
국내 대기업 가운데 톱다운 방식이 아닌 모든 임직원들이 참여해 신성장동력 목표를 세운 것은 거의 유일한 사례이기도 하다. 또한 신사업의 방향이 기존 제련업과의 연결성이 높기 때문에 빠른 추진이 가능했다. 그런데 고려아연을 ‘기업 사냥꾼’인 사모펀드가 가져가려 한다. 보통 사모펀드는 기업 가치가 하락한 기업을 싼 값에 사들여 경영을 정상화하거나 구조조정으로 가치를 높인 후 배당금을 챙기거나 매각한다.
동업자인 영풍과의 갈등에서부터 시작된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이지만 사모펀드가 이미 경영 실적과 기업 가치가 입증된 ‘알짜 회사’를 사들이려 하는 것 자체가 적대적 M&A로 비춰지는 이유다. 특히 장기적 전망으로 신소재 분야에 투자하는 고려아연과 같은 기업이 사모펀드의 단기 차익 실현 목적에 매몰되면 성장 동력을 잃게 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MBK는 TD 경영에 대해 지지한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이번 분쟁에서 고려아연의 이그니오 투자에 대한 평가를 보면 TD에 대한 이해가 떨어짐을 알 수 있다. 실체가 없는 기업 인수에 지나치게 큰 돈을 썼다는 것이 MBK와 영풍의 주장인데, 그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면 미래가치를 가늠할 수 있다.
이그니오는 세계 최대 전자제품 소비국인 미국에서 전자폐기물을 수거 및 파쇄하여 중간재를 판매하는 도시광산 기업이다. 저품위의 전자 폐기물에서 동, 금, 은, 팔라듐과 같은 유가금속으로 제련될 수 있는 중간재를 추출하는 독자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고려아연은 광석이 아닌 전자폐기물을 통해 구리(전기동)을 생산하고 있고, 향후 수요 확대 전망에 대응하여 구리 생산을 늘릴 계획이다. 이 계획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원료 확보인데, 가장 큰 시장이 미국이다. 이그니오는 미국 4개 지역에 전자폐기물 재활용 공장을 구축 중이며, 2022년부터 일부 사업이 진행 중이다. 광석 원료를 고려아연의 전기동은 부가가치가 상당히 높기 때문에 증산을 통한 사업 수익은 더욱 높아지게 된다. 이그니오의 가치는 이러한 사업 밸류체인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아직 양측의 분쟁은 끝나지 않았지만 현재까지 진행된 과정만 놓고 보면 사모펀드에 대한 견제가 필요하다. MBK는 고려아연을 인수하면 전문경영인을 세워 기업가치를 더욱 높이겠다고 하지만, 지금까지 고려아연을 세계 1위 기업으로 성장시키고 발전시킨 것은 현 경영진과 임직원들의 노력에 기인한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