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노래 중 ‘푸른 산호초’라는 제목의 노래가 있다. 1980년 8월 일본 가수 마쓰다 세이코(62)가 만 18세 때 불러 히트한 노래다. 일본이 한참 잘 나가던 ‘거품 경제(버블 경제)’ 시대에 유행했던 노래이기도 하다. 이 노래기 최근 다시 주목받았다. 국내 여성그룹 뉴진스(NewJeans)의 일본 도쿄돔 팬 미팅에서 멤버 하니(20)가 불러서 일본 기성세대들의 향수를 자극했다고 한다. 이 노래의 탄생은 무려 44년 전을 거슬러 올라간다. 발매 이후 수년간 꾸준히 사랑받으면서 거품 경제 시대에 일본의 국민적 가요가 됐다.
이 노래는 발매 시기만 놓고 보면 거품 경제 시대와 겹치지 않는다. 1985년 9월 ‘플라자 합의(Plaza agreement)’ 이후 엔화 가치는 상승하고 금리는 하락해 미국 등 해외 투자 자금 유입이 급증했다. 이와 함께 일본의 주가(株價)와 지가(地價)도 폭등하면서 과열된 투기로 경기에 거품이 끼게 된다. 1986년부터 1991년까지를 거품 경제 시기로 본다. 이 노래가 한창 유행하던 1980년대 초와는 시간적인 거리가 있다. 하지만 거품 경제 시대에도 꾸준히 사랑받았기 때문에 일본 기성세대들이 이 노래를 듣고 과거를 추억하는 것이다.
일본 국민은 5년 안팎의 짧은 호황기에 행복했었다. 하지만 영화는 잠시 두 배 이상 긴 불황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경제에 거품이 걷히기 시작한 1991년부터 2002년까지 ‘잃어버린 10년’은 일본이 속절없이 무너진 시기다. 불황의 터널은 길고 참혹했다. 그리고 그 고통은 지금도 끝나지 않았다. 회복을 위한 몸부림이 거세지만 여전히 아픈 곳이 많다. ‘부자가 망해도 3년은 간다.’라는 속담처럼 남은 저력으로 버틸 뿐이다. 이 같은 상황이 기성세대들로 하여금 좋았을 때 향수를 불러일으켰다. 노래가 자극제가 됐다.
일본 기성세대들의 거품 경제 시대를 회상하는 것은 병적이라고 한다. 잘 나가던 때를 잊지 못하는 것은 인간의 속성이다. 문제는 아직도 일본이 과거 잘 나갈 때 위치를 유지하고 있다는 착각이다. 착각은 자유라지만 현실이 그렇지 못하니 딱하다. 특히 우리나라를 여전히 후진국으로 인식하는 것은 심히 못마땅하다. 반대로 일본의 젊은이들은 오히려 우리나라를 일본보다 선진국이라고 생각한다고 한다. 한류에 편승한 팬덤식 생각에서 나온 것일지 모르지만 실제로 이제는 경제로도 일본에 꿀리지 않는다. 우리도 엄연한 선진국에 진입했다.
일본은 지금도 도장이 통용되는 사회다. 팩스 소통이 빈번한 아날로그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디지털화 한 세상과 벽을 쌓고 우물 안 개구리처럼 세상 물정을 잘 모른다. 과거 영화에 젖어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찬란했던 시대는 허무하게 끝났지만 그것을 인정하지 않으려 하고 있다. 그래서 자신들이 최고라는 생각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현실은 냉정하다. 그렇지 않음을 숫자가 말해준다. 국민의 먹고사는 문제를 따져보면 결과가 놀랍다. 얼마나 질 좋고 풍요한 생활을 하는가가 중요하다. 그것이 현실 경제이다.
올해 아시아 국가 1인당 국내총생산(GDP) 순위에서 일본이 한국과 대만에 이어 3위에 그칠 것이란 국제통화기금(IMF)의 전망이 나왔다. 인공지능(AI) 반도체 등 첨단산업 보유 여부와 엔저 현상 장기화가 순위 변동에 영향을 미쳤다. 한국의 올해 1인당 명목 GDP는 3만6,132달러로 지난해(3만5,563달러)보다 1.6% 증가해 아시아 국가 중 가장 높을 것으로 전망됐다. 대만은 3만3,234달러로 전년(3만2,404달러) 대비 2.6% 증가할 것으로 추정했다. 반면 일본은 3만2,859달러에 그치며 지난해(3만3,899달러)보다 3.1% 줄어들 것으로 내다봤다.
일본이 3위로 추락하는 것은 고질적 엔화 약세와 저성장 장기화 영향이 크다. 반면 한국은 삼성전자·SK 하이닉스, 대만은 TSMC가 AI 반도체 시장을 주도하며 경제 성장을 이끌고 있다. 새로운 성장 동력이 없는 일본의 1위 탈환은 당분간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우리에게는 좋은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일본의 기성세대들이 이 사실을 알았을 때 무슨 생각을 할지 궁금하다. 여전히 현실을 인정하지 않고 자신들이 최고라는 착각에 빠져 있을 수 있다. 아니면 현실을 직시하고 반전을 꿈꿀 수도 있다. 그러나 일본이 처한 여건이 만만치 않다. 반등을 억누르는 원인이다.
‘푸른 산호초’가 일본의 과거였다면 블랙핑크 로제가 부르는 ‘아파트’ 노래는 우리나라의 현실을 말해준다. 발전을 거듭하는 우리 경제와 세계를 사로잡은 K 문화를 바로 요즘 유행하는 아파트 노래가 대변한다고 생각한다. 푸른 산호초를 그리워하는 일본의 거품 경제처럼 되지 않기 위해서는 저들을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삼아야 한다. 세계가 열광하는 글로벌 으뜸 국가가 되기 위해서는 더욱 그렇다. 경제도 문화도 1등이 되기 위한 노력을 한시도 멈출 수 없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