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병성 칼럼 - 고혈(膏血)로 차린 잔치가 흥겨운가?

황병성 칼럼 - 고혈(膏血)로 차린 잔치가 흥겨운가?

  • 철강
  • 승인 2025.01.20 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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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명 황병성 bshwang@snm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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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권에서 철강 유통업체 K 철강사를 운영하는 김 사장은 월말만 되면 긴장한다. 20여 년 동안 끊었던 담배도 다시 피우기 시작했다. 불안한 마음을 안정시키기 위해 연방 줄담배를 피운다. 월말이 되면 그가 긴장하는 이유는 다름 아닌 대출이자 때문이다. 경기가 나빠지면서 수금이 잘 되지 않는다. 대출이자 갚기가 더욱 어려워졌다. 원금 상환은 엄두도 못 낸다. 특히 금리가 높다 보니 부담은 비탈길을 굴러가는 눈 덩어리처럼 커졌다. 이것은 김 사장만의 고충이 아니다. 중소업체를 운영하는 대부분 경영자들의 고충이다. 

중소기업 이곳저곳에서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경영 환경이 나빠지니 그 고통 소리가 더욱 크게 들린다. 많은 문제가 있지만 가장 절실한 것이 자금 문제이다. 중소기업 대부분은 은행권에서 대출 받아 사업한다. 그러니 고금리로 인한 부담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장사라도 잘 되면 걱정이 덜하다. 어려워진 경영환경에 매출이 뚝뚝 떨어지니 대책이 서지 않는다. 직원들 구조조정이라도 해야 숨통이 트이지만 의리상 그러지도 못한다. 벙어리 냉가슴 앓듯 안으로만 삭힐 뿐이다. 답답한 마음을 위로 해 주는 것은 쓰디쓴 소주라서 아쉽기만 하다.  

이 고통을 누군가와 분담하면 부담이 덜어질 것이다. 그러나 얼음장처럼 매정한 세상은 옆을 내주지 않는다. 네 고통은 네가 감당할 일이지 나와는 상관없다는 생각이 팽배하다. 국민의 고혈(膏血)을 짜서 배부른 잔치를 벌이는 곳이 이것을 입증한다. 대규모 성과급 잔치를 벌이고 있는 시중은행이 그 주인공이다. 고금리 대출이자로 이른바 ‘이자장사’를 통해 벌어들인 돈으로 자기들만의 잔치가 흥겹다. 국민의 고통은 안중에도 없는 이들의 행태는 사회적 공분을 사며 논란이 거세다. 이기적인 행태에 국민적 분노가 크다. 

은행의 수익은 생산적이지 않다. 고리대금업자 돈놀이와 다름없다. 그래서 은행은 단순히 수익을 추구하는 기업 이상의 역할을 해야 한다. 금융기관으로서 공공성과 사회적 책임이 크다. 이번 성과급 잔치는 이러한 책임을 망각한 것이다. 고금리로 고통받는 서민들에게 적절한 지원책을 펼치는 것이 이치에 맞다. 하지만 수익을 내부적으로 나눠 갖는 모습은 타인의 아픔은 생각하지 않는 몰지각한 행태다. 그래서 고리대금업자 소리를 듣는다. IMF 때 보조금 덕분에 어렵게 회생한 그들이다. 배은망덕(背恩忘德)도 유분수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전문가들의 지적이 일리가 있다. 고금리로 인한 초과 이익을 성과급으로만 지급할 것이 아니라 사회에 환원하는 방안을 모색했어야 했다. 또한 대출한 사람들을 위한 금리 인하 프로그램이나 채무 경감 정책을 마련해 사회적 책임을 다했어야 했다. 수익 배분 과정과 성과급 지급 기준도 투명하게 공개해 국민의 신뢰를 얻는 것이 우선이었다. 그러나 은행권은 이 모든 것을 외면하고 오로지 눈앞의 성과 잔치에만 혈안이 되어 있다. 국민적 신뢰가 무너진 이유이고, 도덕적 해이라는 지적에서 자유롭지 못한 원인이다. 

국민이 분노하는 것은 중소기업은 엄두도 못 낼 성과급 규모이다. 기본급의 285%에서 최대 400%에 특별격려금 300만 원 이상을 지급한다고 한다. 이것을 보고 중소기업 종사자들이 갖는 상대적 박탈감이 크다. 전국에는 봉급 주기도 버거운 영세한 기업이 수없이 많다. 대부분 은행권으로부터 대출받아 사업을 영위한다. 대출이자가 제일 큰 부담이다. 사업이 어려운 과정에서도 꼬박꼬박 대출이자를 갚느라 고혈을 짜낸다. 하지만 그 희생이 타인의 성과급 잔치의 제물이 되었다는 사실이 괴탄(愧歎)스럽고 억울함을 참지 못해 통탄한다.

고통분담이라는 말이 사회적 가치가 된 지 오래다. 이것을 외면하고 살아갈 수 없을 정도가 됐다. 이 고통분담을 외면하는 은행권의 성과급 잔치를 보며 그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시가 있다. ‘금잔에 담긴 좋은 술은 천 백성의 피요/옥쟁반에 담긴 맛있는 안주는 만백성의 기름이라/촛농 떨어질 때 백성 눈물 떨어지고/노랫소리 높은 곳에 원성 소리 높더라.’ 춘향전에서 이몽룡이 부패한 사또 잔치상 앞에서 읊은 시다. 논리비약일지 모르지만 작금의 은행권 행태에 국민의 생각이 이렇다. 여기에 “암행어사 출또야”를 외치고 싶은 심정이다.

누군가의 아픔이 누군가에게 즐거움이 되어서는 안 된다. 고통과 즐거움은 함께 나누고 보듬는 것이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이다. 이러한 사회가 조성되려면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이 필요하다. 은행권이 국민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사회적 가치에 충실하기 위해서는 더욱 그렇다. 배부른 자들은 배고픈 사람의 심정을 잘 모른다. 고통을 분담하고 행복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국가가 적극 나서야 하는 이유다. 지극히 상식적이지만 실천은 더욱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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