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의 근간이 흔들린다. 20세기 고속 성장 시기를 지나, 금융위기를 겪고 팬데믹을 버텼던 대한민국의 산업계가 성장은커녕 역행을 우려하고 있다. 저성장 시대를 맞이해 어렵지 않은 업계가 없으나, 기초산업의 어려움은 그 파급효과가 다르다.
우리는 석유화학 산업이 고통의 시간을 보내는 것을 바라보고 있다. 한때 그룹의 대표적 캐시카우였던 롯데케미칼은 어느새 대규모 적자 행진을 이어가고 있으며, 다른 석유화학 업체 또한 어려움을 겪기는 마찬가지다.
석유화학 산업 전반의 침체를 목격한 철강업계 관계자는 “그리 멀지 않았다”라며 “현재 철강산업은 일정 부분 버티고 있지만, 현 상황이 지속된다면 철강기업도 미래에는 이익을 내기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기자가 만난 관계자 대부분은 철강산업의 미래가 어둡다고 표현한다. 뚜렷한 돌파구도 없다. 오죽하면 자연재해와 전쟁을 통한 특수를 기대해야 한다는 관계자도 존재했다.
우리는 과거 산업화 시대를 지나며 희망으로만 쌓아 올린 탑을 무너뜨릴 시기가 왔다는 것을 직감한다. 눈이 부셨던 경제 발전과 이를 토대로 한 낙관적인 전망으로 설비를 늘리고, 시장 규모를 키웠던 시대는 지났다. 눈앞에 현실을 인정하고 과감한 결단을 내려야 한다.
대형 철강회사의 관계자는 기자와 만나 얘기한다. 그는 “좋았던 시절만을 떠올리며, 내일도 당연히 좋아야 한다는 환상이 철강산업을 발목 잡는 것 같다”라며 “포기할 것은 서둘러 내치고, 산업 재편 고민을 미뤄선 안 된다”라고 주장했다.
스웨덴의 말뫼는 한때 조선업으로 유명했던 도시다. 말뫼의 조선업은 유럽 조선업의 쇠퇴와 아시아 조선업의 성장이 맞물리며 경쟁력을 잃었다. 당시 말뫼의 상징이던 골리앗 크레인이 국내 기업에 단돈 1달러에 팔리는 아픔을 겪었다.
아픔을 뒤로한 말뫼는 단순 제조를 넘어 첨단 기술을 중심으로 산업을 재편했으며 현재 해운 탄소중립 관련 메카로 자리 잡았다.
물론 철강의 경우 산업의 쌀로서 제조업 자체를 등한시할 수 없다. 다만 이제는 물량을 중심으로 한 단순한 경쟁적 판매 구조를 뛰어넘어, 다양한 부가가치를 가져올 구조 개편을 미뤄선 안 되는 시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