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준양 회장 "탁월한 위업들 끊임없이 발전시킬 것"

정준양 회장 "탁월한 위업들 끊임없이 발전시킬 것"

  • 경조사
  • 승인 2011.12.17 1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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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명 방정환 jhbang@snm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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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결식서 조사 낭독

  정준양 포스코 회장이 고(故) 박태준 명예회장의 영결식에서 조사를 낭독하며 고인을 추모하며  넋을 달랬다. 다음은 정 회장이 낭독한 조사 전문이다.

 

 

조국 근대화 역사가 가장 아름다운 이름으로 영원히 기억할 박태준 명예회장님.

존경하고 사랑하고 벌써 그리워지는 우리 회장님.

북받치는 슬픔을 억누르며 다시 당신의 존함을 불러 봅니다.

 

우리의 박태준 회장님!


당신께서 영면하실 여기는 국립 서울 현충원입니다.

당신께서 몽매에도 잊지 못하신 박정희 대통령의 이웃으로 오셨습니다.

두 분의 인연은 갈라놓을 수 없는 숙명이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습니다.

 

어쩌면 당신께서는 지금쯤 그분과 해후할 준비를 하실 것 같습니다.

응접실에도 사무실에도 그분의 사진을 걸어놓고

그토록 그리워하신 박정희 대통령 곁으로 모시게 되어

그나마 저희에게는 조그만 위안입니다.

 

오늘 저녁이든 내일 저녁이든 저승 가시는 여독이 풀리시거든,

마치 부산 군수사령부 시절의 어느 저녁과 같이,

두 분께서 다정하게 주막에 앉아 막걸리 잔을 나누시기를 두 손 모아 빌겠습니다.

 

32년 만에 재회하시니 쌓은 회포가 얼마나 크고 무겁겠습니까?

 

지난 1992년 개천절이었지요..

사반세기에 걸쳐 포항제철소, 광양제철소 2100만톤 조강생산체제를 완공한 바로 다음이었던 그날,

당신께서는 세계 최고 ‘철(鐵)의 용상(龍床)’에서 스스로 물러나겠다는 결심을 세우시고

여기 박정희 대통령의 영전에 서서 임무완수를 보고하셨습니다.

그때의 순정하고 비장했던 장면을 어찌 잊을 수 있겠습니까?


“나는 임자를 알아. 제철소는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야.

어떤 고통을 당해도 국가와 민족을 위해 자기 한 몸 희생할 수 있는 인물만이 할 수 있어.

아무 소리 말고 맡아. 임자 뒤에는 내가 있어. 소신껏 밀어붙여 봐.”

 

이 한마디 말씀으로 조국 근대화의 제단으로 불러주신

각하의 절대적인 신뢰와 격려를 생각하면서

머리 숙여 감사드릴 따름이라고,

당신께서는 뜨거운 눈물로 회고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당신은 인생을 조국에 바치셨습니다.

육이오전쟁에서 구사일생 살아남은 청년장교의 푸른 영혼에 조각칼로 파듯이

‘짧은 인생을 영원 조국에’라는 좌우명을 새기시더니,

 

그 숭고한 애국정신을 필생의 나침반으로 삼으시고

한 치도 벗어나지 않는 길을 완주하셨습니다.

 

그 길은 ‘우향우’와 같이 목숨을 거는 형극의 길이었지만,

황무지를 옥토로 개간하고,

마침내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길이었습니다.

 

제철보국과 교육보국으로 일류국가의 밑거름이 되겠다는

신념과 실천은 당신의 삶 그 자체였습니다.

 

식민지, 해방, 분단, 전쟁, 폐허, 절대빈곤, 부정부패,

산업화와 민주화, 수평적 정권교체, 외환위기 극복 등으로 이어진 20세기 조국의 시련과 고난을

온몸으로 뚫고 나아간 당신의 삶은 늘 우리 시대의 구심점이었습니다.

 

국내외 많은 언론들이 당신의 임종 소식을 ‘한국의 영웅이 떠났다’고 보도했습니다.

왜 당신은 우리 시대의 영웅이었을까요?

 

철(鐵)은 국가다, 당신의 이 정신이 포스코를 조국 근대화의 견인차로 성장시켰습니다.

교육은 천하(天下)의 공업(工業)이다, 당신의 이 신조가 포스텍을 세계적인 명문대학으로 육성시켰습니다.

당신의 리더십은 강력했습니다. 그러나 그 근본은 통합과 사랑, 청렴과 헌신, 완벽과 합리였습니다.

 

그것은 ‘직원 사랑’의 가장 훌륭한 복지제도로 구체화되었습니다. ‘사회공헌의 선구적 모범’인 포스코 학교들, RIST, 포스코청암재단으로 실현되었습니다.

 

고희(古稀)의 정치인으로서 ‘산업화세력과 민주화세력의 화해와 통합’이라는

우리 시대의 절실한 메시아를 불러냈습니다.

통합과 사랑, 청렴과 헌신, 완벽과 합리가 당신을 영웅으로 만든 삶의 뿌리였습니다.

 

국가의 장래를 위해 마지막 일을 하시는 것처럼,

혼란한 우리 사회에 그 정신적 가치들에 대한 통찰의 계기를 마련해준 당신은 이제 홀연히 떠나셨습니다.

 

탁월한 위업을 당신의 실존처럼 남겨놓으시고,

그것을 끊임없이 발전시켜야 하는 과제를 후배들에게 맡겨놓으셨습니다.

부족하고 미숙한 저희로서는 두려운 마음이 없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과제를 제대로 풀어나가는 것이야말로 진정 당신의 유지를 받드는 것임을 명백히 알고 있습니다.

 

또한 저희는 당신께 배운 정신과 지혜와 용기를 간직하고 있습니다.

언제나 한결같은 자세로, 사심 없이, 심혈을 기울여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당신에 대한 공부와 연구도 더욱 열심히 하겠습니다.

흔히 사람들은 인물의 업적만을 기억하는 습관이 있습니다.

잘못된 습관입니다. 저희가 바로잡겠습니다.

 

‘당신의 무엇이 탁월한 위업을 성취하게 했는가?’

이 질문을 통해 당신의 정신세계를 체계적으로 밝혀내서

우리 사회와 후세를 위한 무형의 공적 자산으로 환원할 것이며,

그 가운데 저희가 맞을 난제의 해법을 구할 것입니다.

 

그런데 어쩐 일입니까?  추모와 다짐을 아무리 되뇌어도

저희의 마음에 넘쳐흐르는 슬픔을 가눌 수 없습니다.

“우리 세대는 다음 세대의 행복과 번영을 위해 희생하는 세대다!”

그 카랑카랑한 육성이 여전히 귓전에 생생한데, 어찌 저희가 당신을 떠나보낼 수 있겠습니까?

 

아니, 그 원대한 소망을 이루셨지만 어찌 당신께서 저희를 떠나실 수 있겠습니까?

어느 누구든 회자정리(會者定離)의 자연법칙을 거스를 수 없다고 해도,

당신과 저희 사이에서 그것은 육신에 한정할 뿐입니다.

 

 존경하고 사랑하는 박태준 명예회장님.

 

고인이라 부르고 싶지 않은, 포스코의 영원한 우리 회장님.

역경으로 점철된 한국 근대화 역사에 길이 남을 거인이시여.

 

그래도 저희는 당신을 보내드려야 합니다.

고생만 하신 당신을 편안히 쉬게 해드려야 합니다.

슬픔은 영일만과 광양만의 파도처럼 밀려드는데,

이 냉정한 회자정리의 강요 앞에서 저희의 심정을 형언할 수 없기에

만해 한용운 시인의 시를 삼가 당신의 혼백에 바치오니,

우리 회장님, 부디 편안히 쉬소서. 


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아아 님은 갔지만,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2011년 12월 17일

              장례위원장, 포스코 회장 정준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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