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병성 칼럼 - 한가위 소고(小考)

황병성 칼럼 - 한가위 소고(小考)

  • 철강
  • 승인 2020.10.12 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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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명 황병성 bshwang@snm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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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고 나면 너무 허무한 것이 휴일이다. 나름 알차게 계획도 세웠지만, 못내 아쉬움이 크다. 한가위 연휴도 마찬가지다. 5일 동안 시간은 누구에게는 긴 시간이고, 또 다른 누구에게는 짧은 시간일 수도 있다. 그러나 보내놓고 나면 아쉬운 것은 두 상황이 같다. 이번 한가위에도 설레는 마음으로 고향을 찾았다. “나에게는 5일이라는 연휴가 있다”는 비교적 느긋한 마음이어서 그런지 발걸음도 가벼웠다. 

늘 그랬듯이 어머님은 동구 밖에서 자식들을 기다리셨다. 자식들의 만류에도 아랑곳 않고 백발의 촌로(村老)는 항상 그 자리에 있었다. 그렇게 해후한 후 벼가 익어가는 가을 들녘을 보았다.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객지로 떠난 자식들을 위해 농사일을 손에 놓지 못하시는 어머님이었다. 태풍에 벼가 많이 누웠다는 얘기를 들었지만 설마 이 정도일 줄 몰랐다. 놀란 것은 그 많은 벼를 홀로 다 일으켜 세워놓은 어머님의 노고를 보았기 때문이다. 

팔순의 노모가 태풍에 누운 벼를 보며 얼마나 노심초사했을까 생각하니 가슴이 먹먹했다. 평생 농사꾼의 삶을 산 당신이 남의 일처럼 포기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노모는 노구를 이끌고 그 많은 벼를 홀로 세우셨다. 자식을 위한 희생은 끝이없다. 추수 후 항상 탈곡해 자식들에게  쌀을 보내주셨다. 늘 되풀이되는 사랑을 베풀지 못할까 하는 걱정에 분명 불면의 밤도 있었을 것이다. 그것을 잘 알기에 고향을 자주 찾지 못한 불효에 가슴이 아렸다. 

그렇게 어머님의 희생을 안타까워하며 남몰래 눈물을 훔치던 사이에 또다시 눈에 들어온 것이 있었다. 태풍에 허물어진 비닐하우스 전경이었다. 철강 용어로 농원용 강관이 지주대인 비닐하우스는 강관업체에는 수요처 중 하나다. 코로나19로 어려움에 처한 강관업체들에게는 태풍이 숨통을 트여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잠깐 머리에는 어머님의 농사와 어려움에 부닥친 강관업체가 교차했다. 그 순간 소금 장수 아들과 우산 장수 아들을 둔 어머니 이야기가 언뜻 떠올랐다.  

분명히 이 상황은 어머님의 근심을 우선 헤아리는 것이 자식된 도리로는 맞다. 하지만 직업정신에서 나온 생각이었는지 또 다른 생각도 했다. 어머님 앞에서 얼굴을 들 수 없는 이유였다. 또다른 광경도 눈에 들어왔다. 언제부터인가 마을 뒷동산에 설치된 태양광이 흉물스럽게 허물어져 방치한 모습이었다. 아무 고민 없이 바람길에 설치한 태양광이 태풍에 버틸 수 없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이다. 애꿎은 자연만 훼손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한가위는 코로나19 영향으로 모든 것이 제한적이었다. 고속도로도 비교적 한산했고, 휴게소도 음식을 포장해서만 판매했다. 이러니 명절 분위기가 나지 않는 것은 당연했다. 장사를 하는 사람들에게는 대목인데 정부의 비대면 강요로 이조차 여의치 않았다. 팔순의 노모도 이런 명절은 처음겪는 일이라고 했다. 고향에 가지 않는 대신 제주도나 동해안으로 여행을 떠난 사람이 많았다고 한다. 이러한 데 굳이 정부가 비대면 명절을 강요할 필요가 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세월은 기다려 주지 않는다. 사랑하는 사람은 영원히 나의 곁에 있을 수도 없다. 세월이 흘러가면 언젠가는 이별이 찾아오는 것은 순리다. 백발의 노모를 보면 그런 생각이 더욱 간절했다. 올해도 어김없이 자식이 떠나는 동구 밖에서 손을 흔드시는 노모의 얼굴이 오래오래 뇌리에서 아련했다.

 “살아계실 때 잘 해라. 죽고 나서 잘해야 소용없다”는 동네 어르신의 말씀을 가슴에 깊이 새긴다. 아낌없이 사랑을 받았으니 두고두고 보답해야 하지만 항상 아쉬운 마음이다. 다음을 기약하는 사랑은 하나 마나 인데도 말이다. 이렇듯 추석은 즐거운 마음으로 고향을 찾았다가 아쉬운 마음만 가득안고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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