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병성 칼럼 -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식 정책 더는 안 된다

황병성 칼럼 -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식 정책 더는 안 된다

  • 철강
  • 승인 2021.01.18 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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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명 황병성 bshwang@snm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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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이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죽은 뒤에 약방문을 쓴다는 뜻으로, 이미 때가 지난 후에 대책을 세우거나 후회해도 소용없다는 말이다. 

조선 인조 때 학자 홍만종의 순오지(旬五志)에 나오는 말로 굿이 끝난 뒤에 장구를 치는 것은 모든 일이 끝난 뒤에 쓸데없는 짓을 하는 것과 같고, 말을 잃어버린 후에는 마구간을 고쳐도 소용없다는 뜻이다. 즉, 사람이 죽은 후에 아무리 좋은 약을 써도 소용없다는 말이다. 이것은 어떤 일이 일어나기 전에 미리 대책을 세울 줄 아는 현명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교훈(敎訓)이다. 

입양 부모 학대로 생후 16개월 만에 비극적 죽음을 맞은 ‘정인이 사건’은 국민들의 공분을 사며 파장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이 사건 후에 국회가 관련 법안을 쏟아내며 재발 방지 대책 마련에 나섰다. 하지만 앞서 ‘천안 9살 소년 가방 감금 사건’ ‘인천 형제 화재 사건’ 등을 겪으면서도 아동 학대 방지와 취약 계층 아동 보호를 위한 입법을 적극적으로 하지 못한 상황에서 ‘뒷북 입법’이라는 지적이 많다. 이 모습은 자신들의 직무를 유기한 사후 약방문의 전형적인 예라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16개월 된 아이가 목숨을 잃기까지 경찰의 직무유기는 더 큰 문제였다. 그들이 취약 아동에 대해 조금만 관심을 가졌다면 이 사건은 예방할 수 있었다. 이 사실에 분개해 소아과의사회는 서울남부지검에 김창룡 청장을 직무유기와 살인 방조 혐의로 고발했다. 학대 신고가 세 차례나 있었는데도 경찰은 정식수사를 하지 않았다. 만약 경찰이 적극적으로 수사에 나섰다면 최악의 사태를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경찰이 양부모의 살인 행위를 방관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같은 사건이 되풀이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책임은 꼭 물어야 한다. 

이처럼 안 좋은 일이 발생하기 전에는 분명히 예방책이 있다. 우리가 그것을 잘 의식하지 못하는 것이 문제다. 안전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우리 업계는 안전이 최대 화두(話頭)가 될 정도로 심각한 문제로 대두됐다. 포스코 최정우 회장이 새해 첫 현장 직원들에게 안전을 강조한 것도 문제의 심각성을 잘 알려준다. 업체들도 안전사고 예방을 위해 각종 대책을 마련해 시행하지만, 사고는 부지불식간에 찾아오니 긴장의 끈을 늦추지 못하고 있다.

정부가 올해 들어서 안전사고 예방을 위해 ‘중대재해법’을 발의해 국회를 통과시켰다. 그리고 대법원 양형위원회가 안전·보건 조치 의무를 지키지 않아 사망사고가 나면 기업책임자 등을 최대 10년 6개월 징역형에 처할 수 있도록 산업안전보건법 양형 기준을 대폭 상향했다. 이 양형 기준은 업계 수렴과 온라인 공청회 등을 거쳐 3월 29일 양형위 전체 회의에서 최종 의결되면 4월부터 적용한다. 그러나 이 양형 기준은 들여다보면 너무 과한 면이 없지 않아 있다. 반드시 고쳐져야 하는 이유다.

산업현장 사망 사고는 기본적으로 고의가 아니라 과실에 의해 범죄를 저지른 ‘과실범’이다. 그런데도 형량은 ‘고의범’으로 간주하고 무겁게 기준을 적용하고 있다. 법조계 안팎에서도 산업현장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처벌만 강화하는 것이 옳은지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엄벌이 아닌 구체적인 예방조치가 우선이 돼야 한다는 지적이 일리가 있다. 이 양형 기준이 원안대로 통과되면 기업들에 또 다른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기 때문이다. 

국가가 사고 예방을 위한 각종 조치로 근로자를 보호하기 위한 노력은 높이 살만하다. 기업들도 당연히 이 조치에 따르는 것이 맞다. 하지만 예방은 뒷전이고 처벌만 강화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안전사고 책임을 물어 경영자가 영어의 몸이 되고 전과자 신분으로 전락한다면 그 누가 기업을 영위하려고 할 것인가. 그것도 대부분 사고는 고의가 아닌 과실인데도 말이다. 이처럼 사후 약방문식 정책보다 예방을 위한 정책이 더욱 강조되고 실행하는 것이 옳다. 

안전에 소홀한 사업주에 대한 처벌이 강화되는 것에는 이의가 없다. 노동자를 위험으로부터 보호해 주는 것이 경영자의 의무이기 때문이다. 다만, 각종 안전과 예방 교육을 시행했음에도 사고 발생 시 무거운 양형 기준을 적용하는 것은 억울한 면이 있다. 향후 업계 의견 수렴과 공청회가 있겠지만, 산업현장을 제대로 고려한 결과가 도출돼 억울한 일이 발생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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