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發 탄소 배출 감축방안, 또 다른 ‘무역장벽’으로 작용하나?

유럽發 탄소 배출 감축방안, 또 다른 ‘무역장벽’으로 작용하나?

  • 종합
  • 승인 2021.07.17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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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명 엄재성 기자 jseom@snm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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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C의 ‘Fit for 55’, 탄소국경조정메커니즘 등으로 국내 철강·알루미늄업계에 큰 타격 예상
외교적 노력·기술 및 정책적 지원 강화 필요, 기후 위기 시대 신성장 기회 찾아야

코로나19 팬데믹이 전 세계를 휩쓴 이후 주요국들은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대비하여 새로운 경제전략을 수립하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이 기존의 잘못된 경제정책으로 인해 심화됐다는 반성 하에 전 세계는 ‘지속 가능하고 환경 친화적인 경제 발전’을 추진하고 있으며, 이를 위해 ‘탄소 중립’을 주요한 의제로 설정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그동안 세계적인 수준의 탄소 배출 저감 논의를 주도해 온 유럽연합이 저탄소경제로의 신속한 전환을 위해 설계된 대규모 녹색 법률 패키지 초안 ‘Fit for 55’를 발표했다.

이 법안 패키지는 2030년까지 1990년 대비 탄소 순배출량을 55% 수준까지 감축하고, 2050년에는 탄소 순배출량을 ‘0’으로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를 위해 ‘Fit for 55’에는 탄소국경조정메커니즘을 포함하여 EU의 탄소 배출권 거래 시스템, 에너지 분야 조세 규정 개정, 재생에너지 및 에너지 효율 지침 개정, 항공 및 해양 연료의 탄소 배출 저감을 위한 대체 연료 인프라 규정 등이 포함되어 있다.

이와 같은 유럽연합의 새로운 탄소 배출 규제는 대표적 탄소 집약 산업인 철강산업과 알루미늄산업 등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많은 전문가들은 유럽연합의 이번 조치가 기후 위기에 대응한다는 고상한 명분을 내세우지만 실제로는 강력한 무역장벽이 될 것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가 발표한 'Fir for 55'는 기후 위기 대응을 내세웠지만 실제로는 무역장벽이 될 것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사진=steelguru)
유럽연합 집행위원회가 발표한 'Fir for 55'는 기후 위기 대응을 내세웠지만 실제로는 무역장벽이 될 것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사진=steelguru)

이에 본지에서는 유럽연합의 이번 발표가 국내 철강산업과 알루미늄산업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살펴보았다.

탄소국경조정메커니즘, 2023년부터 도입해 2026년부터 본격 시행
CO2 톤당 30유로 적용 시 철강금속업계 연 평균 1억3,500만 달러의 관세 부과 효과

‘Fit for 55’에서 가장 논란이 되고 있는 정책은 탄소국경조정메커니즘(Carbon Border Adjustment Mechanism)이다.

탄소국경조정메커니즘은 역외 국가로부터 수입되는 제품에 적용하는 일종의 세금으로 EU보다 탄소배출 많은 국가에서 수입되는 제품에 부과된다. 유럽위원회는 2023년부터 철강과 시멘트, 알루미늄, 전력 등을 대상으로 정책을 정책을 도입하고, 2026년부터는 본격 시행에 나설 예정이다.

국내 산업 중 유럽의 탄소국경조정메커니즘으로 가장 큰 영향을 받는 산업은 철강산업과 알루미늄산업이며, 규모로 볼 때 철강산업이 가장 큰 피해를 입을 전망이다.

2020년 대EU 전철강 수출물량은 285만6,174톤으로 전년 대비 18.6% 감소했고, 전체 수출물량의 9.4%를 차지했다. 금액 기준으로는 27억4,769만4,646달러를 기록하여 전년 대비 18.6% 감소했고, 전체 철강재 수출액의 9.4%를 차지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이 발표한 ‘국제사회의 온실가스 감축 목표 상향과 한국의 대응방안’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수출입을 막론하고 교역에 내재된 탄소 배출 집약도가 가장 높았던 분야는 금속산업이다. 2015년 기준으로 금속 분야가 2015년 총수출과 총수입에서 차지하는 비중(9.5%, 8.6%)보다 각각에 내재된 이산화탄소 배출량에서의 비중(21.5%, 21.2%)이 상대적으로 높았다.

보고서에서는 현재 EU 회원국이 시행하고 있는 탄소세 수준 등을 검토하여 수입에 내재된 이산화탄소 1톤에 대해 수출국이 지불해야 되는 비용을 ‘30유로/톤CO2(약 36달러/톤CO2)’로 설정했다.

한국은 2014~2018년 기준 EU의 역외 총수입액의 2.5% 비중을 차지하는 8위권의 교역 대상국이다. 마찬가지로 EU가 우리나라로부터의 전체 수입품에 내재된 이산화탄소에 탄소국경조정메커니즘을 부과할 경우 약 10억6,056만 달러를 지불해야 하며, 이는 약 1.9%의 관세율을 적용받는 것과 같은 수준일 것으로 분석되었다.

그런데 철강과 알루미늄 등 금속제품만을 대상으로 한 연구는 이보다 훨씬 높은 수준이다. 전체 수입품과 마찬가지로 2014~2018년 기준 한국산 금속제품 수입액을 기준으로 탄소국경조정메커니즘을 부과할 경우 과세금액은 1억3,500만 달러이며, 이는 약 2.7%의 관세율을 적용받는 것과 같은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즉, 기계장비와 전기전자 등 타 품목과 대비하여 월등히 높은 수준의 관세를 철강산업과 알루미늄산업계가 부담해야 하는 것이다.

대체 연료 인프라 규정, 항공 및 해양 연료에 대한 탄소세 부과로 물류비용 증가 예상

탄소국경조정메커니즘과 함께 국내 철강업계와 알루미늄업계에 영향력이 큰 조치는 바로 ‘대체 연료 인프라 규정(Alternative Fuels Infrastructure Regulation)’이다.

이 조치는 기존의 항공 및 해양 연료가 심각한 오염을 유발한다는 인식 하에 유럽 항구에 입항하는 선박들이 사용하는 에너지와 온실가스 함량에 대한 최대 제한을 설정하는 것이다.

유럽위원회는 이 조치를 통해 항공사들이 EU 공항을 이용할 경우 일정 수준의 친환경 연료를 혼합한 항공 연료 사용을 의무화하고, 선박 또한 기존의 중유가 아닌 합성 저탄소 연료 또는 LNG와 같은 친환경 연료를 사용하게 한다는 방침이다.

문제는 LNG와 같은 친환경 연료의 비용이 비싸다는 점이다. 특히, LNG는 지역별로 가격 차이가 매우 큰 연료인데 한국과 유럽은 LNG를 수입에 의존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가격이 비쌀 수 밖에 없으며, 이는 해상 운임 상승으로 이어져 국내 철강업계와 알루미늄업계의 부담으로 돌아올 전망이다.

유럽연합의 'Fit for 55'에 따라 해양 연료에 대한 탄소세 부과로 물류비 증가가 우려된다. 사진은 현대중공업이 건조한 1만4,500TEU급 초대형 컨테이너선. (사진=한국조선해양)
유럽연합의 'Fit for 55'에 따라 해양 연료에 대한 탄소세 부과로 물류비 증가가 우려된다. 사진은 현대중공업이 건조한 1만4,500TEU급 초대형 컨테이너선. (사진=한국조선해양)

또 다른 문제는 탄소국경조정제도 등은 유럽연합만 도입하는 제도가 아니라는 점이다. 미국 또한 바이든 행정부가 탄소국경세를 도입한다는 계획을 갖고 있어 탄소국경세가 확대될 경우 국내 철강업계는 막대한 피해를 입을 것으로 예상된다.

탄소국경조정제도 WTO 규정 위반 소지, 관련국들 공조로 외교적 해결 노력 필요
재생에너지 비중 확대 및 탈탄소 공정 개발 위한 정부 정책지원 확대해야

유럽연합의 ‘Fit for 55’는 국내 철강업계와 알루미늄업계에 새로운 관세 장벽과 물류비용 증가라는 악재가 될 전망이다. 그러나 해결방법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우리 산업계와 이해관계를 같이 하는 국가들도 많기 때문이다.

실제로 대유럽 철강재 수출이 많은 러시아와 중국, 동남아시아 국가들은 이번 조치가 WTO 규정 위반 소지가 있다고 보고 강력 반발하고 있다. 그리고 EU 회원국들 중 상대적으로 탄소 배출 저감기술이 부족한 동유럽 회원국들도 반대하는 기류가 강하다.

게다가 이번 조치에 대해 유럽철강협회(Eurofer) 또한 지나치게 강력한 조치로 인해 역내 철강산업도 어려워질 수 있다는 의견을 표명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현지 산업계와 EU 무역 상대국들의 이해관계를 적절하게 이용해야 한다고 조언하고 있다.

우리 정부도 EU와의 협의를 통해 국내기업들에 대한 탄소국경조정메커니즘 면제 혹은 그에 상응하는 인센티브를 요구할 계획이다.

산업통상자원부는 7월 15일 철강·알루미늄 기업 임원들과 간담회를 갖고 EU의 탄소국경조정제도 도입에 대한 대응방안을 논의했다. 그동안 정부는 EU가 탄소국경조정제도를 ▲WTO 규범에 합치하게 설계·운영해야 하고, ▲불필요한 무역장벽으로 작용하게 해서는 안 되며, ▲각국의 탄소중립 정책 반영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견지하며, EU 및 주요 관계국들과 양자협의 등을 통해 대응해왔다.

향후에도 정부는 탄소국경조정제도 법안 내용에 대한 면밀한 분석을 통해 우리 입장을 마련한 후 EU 및 주요 관계국들과 지속 협의하고, 특히 우리의 배출권거래제 및 탄소중립 정책 등을 충분히 설명해 동등성을 인정받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계획이다.

전문가들은 EU와의 협의 외에도 러시아와 중국, 베트남 등 대유럽 수출이 많은 국가들과 외교적 협력을 통한 해결책 마련에도 주력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한 선진국들에 비해 낮은 수준인 재생에너지 비중 확대와 함께 수소환원제철 및 이산화탄소 포집 등 친환경 생산기술 개발을 위한 정부의 정책적 지원을 큰 폭으로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2030년 재생에너지 비중 40%, 2035년 내연기관 자동차 판매 금지로 신산업 성장 전망
배터리 기술 부족 등으로 현실성 부족하다는 비판 거세, 러시아 등과의 외교마찰도 예상

한편 ‘Fit for 55’는 유럽연합의 에너지 활용 및 산업 분야에서도 큰 변화를 가져올 전망이다. 특히, 발전산업과 자동차산업이 가장 큰 영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유럽연합은 오는 2027년까지 녹색경제로의 전환을 위해 2조 유로 규모의 예산을 투입하여, 저탄소경제를 위한 인프라 구축을 추진할 계획이다.

유럽연합 내 탄소 순배출량의 75%를 차지하는 에너지산업 분야에서 2030년까지 풍력,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 비중을 40%까지 확대한다. 이번 조치가 기존과 다른 점은 운송과 냉난방, 건물 및 산업 분야에서 구체적인 재생에너지 비중 확대를 목표로 수립한다는 점이다.

유럽위원회는 2035년부터 내연기관 자동차 판매를 금지할 계획이다. 그러나 이 계획의 현실성에 대해 의문을 표시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사진은 현대자동차의 2020 코나 일렉트릭. (사진=현대자동차)
유럽위원회는 2035년부터 내연기관 자동차 판매를 금지할 계획이다. 그러나 이 계획의 현실성에 대해 의문을 표시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사진은 현대자동차의 2020 코나 일렉트릭. (사진=현대자동차)

그리고 자동차산업 분야에서는 2035년까지 탄소 배출량을 올해 대비 100% 감축하여 순배출량을 0으로 만드는 방안을 제시했다. 이에 따라 2035년 이후에는 유럽연합 내에서 내연기관 자동차의 판매가 사실상 금지된다.

해당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내연기관 자동차를 전기차와 수소차로 모두 교체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유럽 산업계에서는 이번 조치에 대해 지나치게 성급하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재생에너지 비중 확대의 경우 그동안 유럽 국가들이 꾸준히 추진해 왔기 때문에 목표 달성에 큰 무리가 없지만 내연기관 자동차의 전기차 전환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것이다.

현재 유럽은 친환경 자동차의 핵심기술인 배터리와 수소연료전지 분야에서 한국 등 주요 경쟁국과 비교하여 경쟁력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

실제로 유럽 내에서 가장 많이 판매되는 전기차는 현대차그룹의 ‘코나’이며, 상당수 국가들은 아직 배터리와 연료전지 모두 생산 기반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다.

지난해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유럽 자동차업계에서도 유럽위원회의 결정이 성급하다며 내연기관 자동차의 판매 금지 시기를 늦춰달라고 요구한 바 있다. 현재 유럽의 자동차업계는 삼성SDI와 LG화학, SK이노베이션 등 한국기업 3사에게 전기차용 배터리 공급을 의존하고 있으며, 수소차의 핵심부품인 연료전지 기술 또한 경쟁국들보다 떨어진다.

또한 수소차 운용에 필요한 수소 생산을 위해서는 천연가스에서 추출하는 ‘추출수소’나 재생에너지를 활용한 ‘그린수소’ 생산이 필요한 데 유럽 내에는 천연가스가 거의 채굴되지 않고, 그린수소는 아직 경제성이 부족한 상황이다.

게다가 내연기관 자동차 판매 금지는 대유럽 원유 수출이 경제의 큰 비중을 차지하는 러시아와 중동국가들의 반발을 부를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국제경제 전문가들은 유럽연합이 이번 조치를 강행할 경우 러시아 및 중동 산유국들과 외교마찰을 빚게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단기과제로 탄소국경세 피해 최소화·중장기적으로는 친환경 기술개발 강화 필요

이처럼 녹색 에너지 인프라와 친환경 자동차 전환을 두고 여러 의견이 나오고 있지만 확실한 것은 앞으로 유럽 국가들이 해당 분야에 대규모 투자를 실시할 것이며, 관련 산업도 크게 성장할 것이라는 점이다.

신재생에너지와 수소에너지 인프라는 모두 고부가가치 강종이 필요한 산업들이며, 전기차와 수소차 또한 기존의 내연기관 자동차에 비해 부품 수는 적지만 고부가가치 강종이 필요한 것은 마찬가지이다.

또한 유럽 국가들이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맞이하여 기존의 낡은 인프라를 개선한다는 계획도 갖고 있는 만큼 향후 유럽지역의 철강재 수요에는 긍정적일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유럽의 ‘Fit for 55’ 발표로 시작된 ‘저탄소시대’는 국내 철강업계에 위기와 기회를 동시에 가져올 것으로 예상된다. 단기적으로는 탄소국경세 등으로 비용 부담이 증가하지만 중장기적 관점에서는 재생에너지와 전기차 등 신산업 분야의 수요가 큰 폭으로 증가할 것이리 때문이다.

저탄소시대에 대비하기 위해 단기적으로는 민관 협력을 통해 탄소국경세로 인한 피해를 최소화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 그리고 중장기적으로는 정책적 지원을 강화하여 친환경 생산기술 조기 개발을 추진하고, 신산업 분야에 필요한 고부가가치 강종 개발에 주력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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