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병성 칼럼 - 벚꽃 원조 논란과 철강 특허분쟁

황병성 칼럼 - 벚꽃 원조 논란과 철강 특허분쟁

  • 철강
  • 승인 2022.04.18 06:05
  • 댓글 0
기자명 황병성 bshwang@snmnews.com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봄이다. 여의도 국회 윤중로 벚꽃이 탐스럽게 피었다. 노란 개나리꽃도 예쁘다. 철장처럼 닫혔던 이 길이 오랜만에 개방됐다. 긴 코로나 터널을 빠져나온 듯 사람들의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하다. 해마다 피는 꽃이지만 올해는 유난히 그 자태가 아름답다. 코로나로 억눌린 감성을 깨운 일등공신이기에 더욱 그렇다. 이 때문일까, 봄 마중 나온 사람들의 발걸음이 유난히 가볍다. 설레는 마음을 주체하지 못한다.

한줄기 비와 바람으로도 허망하게 떨어지는 것이 벚꽃이다. 그렇지만 봄의 전령 중 최고로 대우받는다. 우리 주위에 많이 자생하기 때문일 것이다. 진달래를 보려면 먼 산으로 가야 하지만 벚꽃은 그렇지 않다. 

가로수와 울타리용으로 흔히 볼 수 있기에 가족을 보는 듯 친근하다. 이러한 벚꽃의 아름다움에 원산지 논란이 거셌다. 한국, 중국, 일본이 서로 원조라고 주장했다. 원래는 한국과 일본이 주장을 펼쳤는데 여기에 중국까지 가세한 것이다.  

벚꽃은 일본의 국화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일본인의 일상과 정서에 깊숙이 자리하지만, 국가를 상징하는 꽃은 아니다. 일본은 공식적으로 국화가 없다. 일본인들이 유난히 벚꽃을 좋아하는데서 나온 오해였다. 1908년 제주에서 첫 자생 왕벚나무 발견 이후 110년간 이어진 일본과 원조 논란이 의미 없는 경쟁이었다는 과학적 분석이 나왔다. 국립수목원이 명지대와 가천대 연구진과 연구를 통해 세계 최초로 야생 목본 식물인 제주도 자생 왕벚나무 전체 유전체를 해독했다. 

이 연구에 따르면 왕벚나무는 모계(母系)인 올벚나무와 부계(父系)인 벚나무(또는 산벚나무) 사이에서 태어난 1세대 잡종으로 밝혀졌다. 원조를 주장한 일본 왕벚나무와 유전적 차이가 뚜렷했다. 

일본의 왕벚나무는 모계인 올벚나무와 부계인 오오시마 벚나무 사이에 인위적인 교배를 통해 만들어진 잡종이었다. 두 나무 종(種) 자체가 서로 다르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중국은 한 술 더 떠 세계 모든 벚꽃의 원산지가 자기 나라라고 주장한다. 세계에 퍼져 있는 벚꽃은 200여 종에 이른다. 이 주장의 터무니없음에 실소(失笑)를 금할 수 없다. 

벚꽃과 같은 한·중·일 원산지 논란은 철강에도 있었다. 특허분쟁이 그것이다. 신일철주금(구 신일본제철)이 포스코가 생산하는 방향성 전기강판이 자사 핵심기술을 도용했다고 미국과 한국 특허청에 소송을 냈었다. 

2014년 2월에 벌어진 일이었지만 이 소송은 이유가 있었다. 방향성 전기강판은 원가에 비해 높은 수익을 보장하는 고부가가치 제품이었다. 신일철주금이 시장을 지배 중이었다. 그러나 포스코가 2000년대 이후 점유율을 빠르게 높여 나갔다. 이에 시장을 빼앗길 수 없다는 위기감에 소송을 낸 것이다. 결과는 포스코의 손이 올라갔다. 

일본제철과 도요타의 특허분쟁은 더 가관이다. 일본제철은 2021년 10월 도요타와 중국 보산강철에 대해 무방향성 전기강판 특허침해 소송을 제기했다. 도요타가 자사의 가장 큰 납품처임에도 싸움을 걸었다. 이에 분개한 도요타는 거래물량 이전으로 대응했다. 그러면서 포스코에 제품 약 10만 톤을 주문했다. 규모는 크지 않지만 거래 물꼬를 튼 점에서 어부지리(漁父之利)가 됐다. 도요타는 과거 스미토모은행과도 분쟁 이후 화해하기까지 70여 년이나 걸렸다. 일본제철도 소송 제기 이후 강경한 태도를 바꾸지 않고 있다. 이 싸움은 화해는 없어 보인다. 

오랫동안 협력관계였던 이 회사들의 특허분쟁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일본제철(신일철주금) 전신인 야와타제철은 포항제철 설립 당시 기술지원을 하는 등 돈독한 관계였다. 사람으로 치면 절친이었다. 2015년 두 회사가 화해했지만 자사 이익을 위해서는 영원한 아군도 적군도 없다는 것을 보여줬다. 

일본제철과 도요타 관계는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다. 이 같은 각박한 기업 생태계를 비판할 수 없다. 생존을 위해 시장을 지켜야 한다는 절실함이 있기 때문이다. 벚꽃 원조가 중요하듯 특허기술도 중요하다. 이것이 침해되면 도태될 수 있다는 위기감에 특허 소송은 현재 진행형이다.

저작권자 © 철강금속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