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병성 칼럼 - ‘메이드 인 코리아’

황병성 칼럼 - ‘메이드 인 코리아’

  • 철강
  • 승인 2023.02.13 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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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명 황병성 bshwang@snm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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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모든 인프라 건설자재 ‘메이드 인 아메리카’가 기준이 될 것”이라고 역설했다. 지난 7일 취임 후 두 번째 국정연설에서 연방정부 차원의 인프라 프로젝트에 투입되는 모든 건설 자재를 ‘미국산’으로 요구하는 새로운 기준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지난해 8월 발효된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이후 문을 더 꼭꼭 걸어 잠그겠다는 심산이다. 세계 경제에 모범 국가였던 미국이 스스로 질서를 깨트리고 있다. 우리 경제에 미칠 영향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애초 바이든 정부는 “미국이 돌아왔다(America is Back)”며 트럼프 정부와는 다른 대외 정책을 펼칠 것을 천명했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무역정책은  ‘트럼프 없는 트럼프주의’와 다름없었다. 미국은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지금까지 정치적으로는 자유민주주의, 경제적으로는 자유무역이라는 2개 축으로 움직였다. 이 정책은 서방 진영을 결집하고 국제 질서를 바로잡는 데 크게 기여했다. 미국이 시장을 개방했기에 많은 국가들이 경제 발전을 이룩할 수 있었다. 이처럼 미국의 자유민주주의가 꽃피울 수 있었던 것은 자유무역이 든든한 밑바탕이었다.  

국제 질서를 잡는 보안관 역할을 했던 미국이 안방 문을 잠그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메이드 인 아메리카’ 정책은 과거에도 있었다. 1993년 대공황 때 미국산 제품만을 쓰도록 했던 ‘BAA 법(Buy American Act)’을 다시 소환한 것은 이유가 있다. 미국은 지금 금융·경제 위기가 한계에 직면했다. 이것을 타개하기 위해 대규모 공공사업 시 미국산 제품만을 써야 한다는 의무 조항을 경기부양법안에 넣었다. 이것을 두고 많은 동맹국이 불만을 토로했지만 안중에도 없다. 오로지 침체에 빠진 자국 경제 소생이 우선이다. 이번 바이든의 국정연설도 이 정책의 연장선상이다. 

미국만이 아닌 세계 각국은 지금 안방 지키기에 혈안이 되어 있다. 우리도 미국처럼 ‘메이드 인 코리아’로 안방을 사수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지난해 우리 경제는 수입제품 공습에 허망하게 무너졌다. 지난해 수입점유비는 전년 대비 1.8% 포인트 상승한 무려 31.2%였다. 통계 작성이 시작된 2010년 이후 연간 기준으로 역대 최고 수준이다. 더 충격적인 것은 2016년(23.9%) 이후 6년째 증가세를 이어오고 있다는 점이다. 10개 제품 중 3개는 수입제품일 정도로 우리 안방은 구멍이 숭숭 뚫렸다. 

철강 제품도 마찬가지다. 중국산과 일본산 수입이 급증하고 있다. 특히 지난해 후판의 경우 수출이 감소한 반면 수입이 급증했다. 대부분 조선용 후판이다. 태풍 피해로 인한 설비 가동 중단이 큰 원인이었다. 하지만 조선업계가 해마다 해오던 수입이었기에 이 실적을 바라보는 우리 업계 반응도 무덤덤하다. 같은 일이 되풀이되고 있으니 무심한 가운데 드는 생각일 것이다. 견고한 강둑이 무너지는 것은 작은 구멍에서부터 시작된다. 대책 없이 방관한다면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 막을 수 있다. 국가가 나서서 시급한 조정이 필요하다.

미국처럼 국산 사용을 강제할 수는 없다. 수출로 먹고사는 우리에게는 불공정무역 국으로 낙인찍히면 더 큰 피해를 불러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 철강금속 제품은 외국산과 견주어도 뒤떨어지지 않을 정도로 품질이 우수하다. 굳이 수입제품을 쓸 필요가 없다는 얘기다. 다만 싸구려 외국산에 비해 가격이 비싼 것이 약점이긴 하다. 하지만 다리를 건설하고 집을 지었을 때 튼튼하고 오래가야 하는 것은 철칙이다. 수입산으로는 만족할 수 없다. 가까이 보지 말고 멀리 보아야 한다. 우리의 인식 속에 이러한 생각이 뿌리박혔다면 안방을 수입제품에 내어주는 우는 범하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 글로벌 무역 환경은 엄혹하다. 내가 살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생존을 위한 절박함 앞에서는 동맹국도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것을 탓할 수 없는 것은 국가의 생존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각종 수출 규제로 지금은 각자도생 하려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수출국인 우리에게는 큰 시련이 아닐 수 없다. 

새로운 경제시장 원리에 발 빠르게 대처하지 않으면 좌절은 눈앞에 있다. 우리 업계도 마찬가지다. 더불어 안방을 지키기 위한 노력도 더욱 치열하게 전개해야 한다. 지금은 과거 펼쳤던 ‘국산품 애용’ 운동까지 소환해야 할 정도로 심각한 비상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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