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병성 칼럼 - 의인(義人)이 없어야 좋은 나라다

황병성 칼럼 - 의인(義人)이 없어야 좋은 나라다

  • 철강
  • 승인 2023.07.31 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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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명 황병성 bshwang@snm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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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전에서 의(義)는 ‘사람으로서 지키고 행하여야 할 바른 도리(道理)’라고 정의한다. 사람이 살아가는 기본 도리라는 뜻이다. 기본 도리가 무엇인가는 보는 눈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삶의 가치를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다르게 정의된다. 우리는 의를 행한 사람을 의인(義人)이라고 부른다. 자기 안위를 생각하지 않고 행동으로 옮긴 사람을 말한다. 이에 의인은 살아있기도 하고, 이 세상에 없을 수도 있다. 그러나 살아서나 죽어서도 그들의 행동과 이름은 영원히 우리 가슴속 교훈으로 남아있다.  

요즘 세태를 이기주의가 팽배한 사회라고 비판한다. 그러나 가끔 이 말이 틀릴 때도 있다. 이웃 또는 옆 사람이 위기에 처하면 자기 목숨을 바쳐 구하는 의인들이 의외로 많다. 비근한 예로 일본 유학생 이수현 씨의 의로운 죽음은 아직 기억 속에 생생하다. 선로에 떨어진 일본인을 구하려다 희생당한 그는 한국과 일본에서 의인으로 존경받는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러한 일이 흔하게 일어난다. 의를 행하는 것이 도리지만 일반인은 선뜻 행동으로 옮기지 못한다. 의인들이 행동이 그래서 위대하고 길이길이 남을 미담이 된다.

살신성인(殺身成仁)이라는 말이 있다. 그 뜻은 자신을 희생해 인(仁)을 이루거나 옳은 도리를 행한다는 뜻이다. 의인의 행동과 일맥상통한다. 이 고사성어는 논어(論語)에 나오는 말이다. 공자는 “뜻있는 선비와 어진 사람은 살기 위해 인을 해치는 일이 없고, 오히려 자신의 목숨을 바쳐 인을 행할 뿐이다.”(子曰, 志士仁人 無求生以害仁 有殺身以成仁)라고 했다. 이것을 해석하면 지사(志士)는 내가 살고자 인을 해치지 않고, 인을 이루기 위해 자신의 목숨도 기꺼이 바친다는 뜻이다. 이 행동은 타인을 사랑하고 아끼는 박애 정신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우리 업계도 이러한 의인들의 행동을 기려 타의 모범이 되게 하고 있다. 포스코청암재단의 ‘포스코히어로즈펠로십’이 좋은 예이다. 국가와 사회의 정의를 위해 자신을 희생한 의인 또는 의인 자녀의 안정적인 학업을 지속하기 위해 장학금을 지원하고 있다. 지난 2019년 제정돼 6월 말 현재 총 81명이 뜻 깊은 지원을 받았다. 이 의인들은 사회 정의를 밝히는 등불이 되었고, 살신성인의 표본이 되었다. 이러한 사람들이 이웃에 있다는 사실에 마음이 훈훈해지고 겸손히 옷깃을 여미게 한다.

수마가 할퀴고 지나간 오성 궁평 지하차도에서 많은 사람이 희생됐다. 이 비극적인 사건을 접하며 그나마 위안이 되는 것은 자신의 안위를 돌보지 않고 타인의 목숨을 구한 의인(義人)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터널 안에 갇혀 정신없이 탈출하면서도 생면부지 다른 사람의 손을 붙잡고 찢어진 손으로 철제 난간을 움켜쥐며 함께 빠져나온 용감한 공무원이 있었다. 엔진이 멈춰 선 버스를 자신의 트럭으로 밀어 올리려다 함께 고립되는 상황이 되자 트럭 지붕 위에 올라가 세 명을 구출한 트럭 기사도 있었다. 당사자들은 “누구라도 그랬을 것”이라고 겸손해 한다. 하지만 누구도 쉽게 하지 못할 위험과 희생을 감내한 행동이었기에 그들의 행동이 위대한 것이다. 

요즘처럼 각박한 세상에 이 의인들의 행동은 사회를 윤택하게 하는 윤활제이다. 하지만 생각을 바꾸고자 한다. 더는 의인들이 나오지 말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의인들이 행동에는 항상 사고가 뒤따른다. 각자 맡은 역할을 제대로 한다면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누군가가 제 역할을 하지 않아 발생하는 것이 사고이다. 오성 궁평 지하차도 사고도 마찬가지다. 사고를 막기 위해 빠르게 교통 통제를 했거나, 제방을 튼튼하게 쌓았다면 참사는 없었다. 의인의 행동도 필요하지 않았다. 모든 것이 잘못된 시스템이 문제였다. 인재라고 지적받는 이유다.    

의무를 망각하는 바람에 발생한 사고로 큰 구멍이 발생했다. 그것을 메우려고 분전(奮戰) 한 것이 의인이다. 그 사람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지만 한편으로는 마음이 몹시 무겁다. 누군가의 선의에 의지해 유지되는 사회는 정상적인 사회가 아니다. 불안한 사회가 유난히 그렇다. 우리 사회가 잘못을 감추려고 의인들을 영웅화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자괴감마저 든다. 현대자동차는 트럭 운전사에게 신형 화물차를 선물했다. 사고로 망연자실했던 당사자는 생계를 이어갈 수 있어서 감사하다고 말한다. 우리 사회가 해야 할 말을 그가 먼저 했다. 이렇듯 비정상적인 사회를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의인은 존경받는 것이 마땅하다. 하지만 사고가 의인을 만드는 것이라면 더는 안 된다. 여기서 멈추고 끝내는 노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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