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병성 칼럼 - 장인정신과 ‘달 항아리’

황병성 칼럼 - 장인정신과 ‘달 항아리’

  • 철강
  • 승인 2023.08.21 06:05
  • 댓글 0
기자명 황병성 bshwang@snmnews.com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조선시대 도자기 중에는 달 항아리가 있다. 조선 후기 17세기말부터 18세기까지 크게 유행했던 이 도자기는 유백색의 유조에 풍만한 형태와 곡선미만으로 그 아름다움을 표현한 조선 특유의 심미안(審美眼)이 녹아 있다. 이뿐만 아니다. 그 높이가 40㎝ 이상으로 대호(大壺)의 제작이 가능할 수 있도록 상하접합기술을 채택해 조선백자의 낮은 내화도라는 태생적인 한계를 극복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특히 유색이 가져다주는 순백의 아름다움과 기형에서 느낄 수 있는 여유로움과 풍만함을 보면 감탄이 저절로 나온다. 조선만의 미적 특성이 당시 도자기 제작의 신기술에 녹아들어 예술과 기술적 완성도가 높다. 이 같은 작품의 완성도는 미국에서 인정받았다. 지난 3월 미국 뉴욕 크리스티경매에서 456만 달러(약 59억6,000만원)에 낙찰되는 행운을 안았다. 이 항아리는 완벽한 구 형태도 아니고 새하얗지도 않았다. 두 개를 이어 붙인 이음새도 선명했다. 무엇이 그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일까?

아마추어 눈에는 외형은 영 탐탁치 않다. 마치 도공의 실패작처럼 보였던 이 항아리가 6억 원의 가치를 지녔다고 하니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경매 주최 측 설명을 들으면 무릎을 저절로 친다. “달 항아리의 비대칭, 즉 제작 과정에서 생기는 불완전함은 자연에서 발견되는 사물들 사이의 미묘한 변화를 반영한다. 완벽한 원형보다는 끊임없이 변화하는 달과 더 비슷하게 보이기도 한다”라고 설명했다. 마치 자연의 섭리를 그대로 옮겨놓은 듯 진짜 달 같은 아름다움을 높이 평가했다고 밝혔다. 

달은 만인을 비춘다. 같은 달이지만,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달을 보게 된다. 이와 마찬가지로 사람들은 신비로운 달 항아리를 보면서 저마다 다른 아름다움을 발견한 것이다. 절제와 담백함으로 빚어낸 오묘한 순백의 세계가 담긴 달 항아리는 세계인들의 마음까지 끌었다. 또한 과거로부터 현재와 미래에 이르기까지 사람들을 새로운 영감과 창조의 세계로 이끌기도 한다. 도공(陶工)의 손과 발로 빚어지는 과정에서 고뇌에 찬 노력이 없었다면 이 같은 결과는 없었다.

도자기의 희귀성도 가치를 높인다. 이 달 항아리는 도공의 피와 땀이 고스란히 투영된 산물이다. 시행착오를 통해 끊임없이 변화의 과정을 거쳤다. 이에 도공의 손에 의해 깨트려진 도자기 파편도 산더미처럼 쌓였을 것이다. 그래서 흔한 것이 아닌 희소(稀少) 한 것이 되었다. 이 같은 투철한 장인정신(匠人情神)이 후대에 와서도 좋은 평가를 받고 있음은 정말 다행이다. 국내는 물론 세계인이 인정할 정도로 훌륭한 가치를 부여하는 것을 보며 하늘의 도공들도 흐뭇해할 것이다.  

장인정신에 해당되는 것은 기계의 자동화가 아닌 손으로 제작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최소 인원으로 시간에 얽매이지 않는다. 제작하는 사람이 보기에 실패라고 생각하거나, 조금의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면 전부를 뜯어고칠 정도로 품질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도공이 실패한 도자기를 깨트리는 것과 마찬가지다. 우리 업계의 대량 생산체제와는 배치된다. 하지만 대장장이의 장인정신이 제철공법 원리를 탄생시킨 것처럼 전혀 다르지도 않다. 그들의 뜨거운 불과 투박한 쇳덩이를 다루는 기술이 아름다운 금속도구로 승화하는 것처럼 대량 생산체제 시발점이 되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글로벌 경쟁력은 뜨거운 용광로와 같다. 생존을 위해서는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 노력하지 않고 현실에 안주하면 도태하는 것을 우리는 수없이 확인했다. 지금이야말로 장인정신이 필요할 때가 아닌가 생각한다. 기업마다 명장(明匠)을 더 많이 키우고 활용하기를 주저하지 말아야 한다. 불확실성이 가득한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더욱 그렇다. 우리에게는 하나에 60억 원이나 하는 달 항아리를 만든 DNA가 있다.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자욱한 안갯속을 헤쳐 나가려면 달 항아리를 만든 장인정신이 필요하다. 초격자 기술과 제품 개발로 글로벌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더욱 절실하다.

저작권자 © 철강금속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