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병성 칼럼 - 고물상(古物商)과 어르신

황병성 칼럼 - 고물상(古物商)과 어르신

  • 철강
  • 승인 2023.08.28 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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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명 황병성 bshwang@snm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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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리가 구부정한 어르신이 손수레를 힘겹게 끌고 간다. 무슨 사연이 있기에 백발이 성성한 나이임에도 일을 놓지 못하시는 걸까? 언뜻 자식들의 만류에도 농사일을 놓지 않으시는 고향의 노모가 생각났다. 수레에는 고철과 폐지가 가득 실려 힘겨움을 더했다. 일상에서 가끔 목격하는 잔상(殘像)은 지워지지 않는다. 나이가 들어도 편히 쉬지 못하는 어르신이 우리 주위에는 너무 많다. 가난이 삶에 큰 굴레를 쒸운다. 우리나라는 OECD 중 노인 빈곤율이 최상위다. 이것이 우리의 실상이다. 

나이를 먹고 병든 것도 서러운데 가난하기까지 하니 더욱 서럽다. 이에 먹고살기 위해서 쉽게 일을 놓지 못한다. 직장에 취직해서 돈을 번다는 것은 오르지 못하는 나무이다. 이들에게 고물상은 사막의 오아시스와 같다. 풍족하지 않지만 그나마 일용할 양식을 이어가게 하는 소중한 생활터전이다. 그래서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거리를 헤매며 고철과 폐지를 줍느라 허리를 펴지 못한다. 다행히 무거운 고철을 수집한 날은 횡재다. 무게가 많이 나갈수록 쥐어지는 돈이 쏠쏠하기 때문이다. 

이렇듯 고단한 삶으로 힘겨운 어르신들이 끄는 수레는 오늘도 쉼 없이 굴러간다. 이들의 삶은 고철(古鐵)과 다르지 않다. 고철도 예전 누군가의 편리한 삶을 위해 쓰여졌다. 하지만 궁극에는 길거리에 버려져 녹스는 신세가 된다. 어르신들도 마찬가지다. 동병상련(同病相憐)의 가슴 아픈 신세로 전락했지만 다행히 고철은 어르신들의 손에 의해 다시 소생한다. 인간과 비교되지 않는 실로 끈질긴 생명력이다. 고철이 불사조가 된 것은 어르신들과 같은 수집상 덕분이다. 이들의 손에 수집된 고철은 전기로 제강사를 찾아가 철강 제품으로 다시 환생해 일상으로 복귀한다.  

천덕꾸러기 취급받던 고철의 신분이 급상승하고 있다. 탄소중립이라는 거스를 수 없는 대세를 만나면서부터다. 필수불가결한 자원으로 대우받으며 범 정부차원의 확보 전략에 힘을 쏟고 있다. 전 세계가 탄소배출을 줄이기 위해 탄소국경세 도입을 앞 다퉈 발표하면서 철강업계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이로 말미암아 공급자와 수급자의 관계도 큰 변화를 가져왔다. 과거 이 관계는 갑과 을의 불합리함이 뚜렷했다. 물건을 파는 사람이 가격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구매하는 사람이 가격을 결정하는 사례만 보아도 그렇다. 기형적인 관계를 보며 혀를 차는 사람들도 많았다.

가격 결정권은 아직 바뀌지 않았지만 수급자들이 공급자를 바라보는 시선은 변화하고 있다. 과거에는 하찮은 고물상 취급을 했다면 지금은 소중한 자원을 공급하는 공급자로 인식이 바뀌고 있다. 최근 한국철강협회와 한국철강자원협회가 철자원 공급망 강화 및 철강-철스크랩 업계 상생 발전을 모색하기 위해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 ‘철자원 상생포럼’이 그 대안을 삼고 있다. 과거였다면 어림도 없었을 갑이 생각을 바꾸게 된 것은 온실가스 감축에 방점이 찍힌다. 부족한 철스크랩 자급률로 공급망을 강화할 필요성이 커진 것이다. 손을 맞잡은 결정적인 이유다. 

상황이 이러니 공급자의 바람을 수급자는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 철스크랩 업체는 그동안 각고의 노력으로 처우가 개선 됐다고 하지만 문제가 다 해결된 것은 아니다. 철강자원협회장이 상생포럼 발족에 큰 의미를 둔 것을 상기하지 않을 수 없다. “상호 평등한 위치에서 운영되는 점에 대하여 높이 평가한다.”라는 말이다. 역설하면 과거 불평등이 존재했음을 의미한다. 이에 을이 갑에게 받았던 서러움은 가슴 깊이 사무쳤을 것이다. 그 상처를 갑이 어루만져주고 달래주어야 한다. 이것이 선행되지 않으면 상생은 망상(妄想)적인 구호에만 그칠 것이다.  

이제 이 땅의 고물상들은 더는 하찮은 신분이 아니다. 무시해서도 안 된다. 그들의 직업을 거슬러 올라가면 ‘넝마주이’로 불리던 아픈 역사도 있었다. 그들은 1990년대 이후 쓰레기산업을 비롯한 폐품산업의 성장과 함께 사라졌지만, 지금은 가난한 어르신들이 그 일을 대신하고 있다. 비록 생계를 위한 일이지만 탄소중립에 공헌하는  진정한 애국자가 바로 이 어르신들이다.  이 사실은 그들만 모를 뿐이다. 혹시 길거리에서 어르신이 힘겹게 수레를 끌면 밀어주기를 주저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다. 어르신들이 의지하는 마음이 산처럼 높은 고물상의 역할에도 큰 박수를 보낸다. 더불어 공급자와 수급자가 평등한 입장에서 상생의 웃음이 만발하는 그날이 빨리 오기를 고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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