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병성 칼럼 - 문래동 철강단지의 어제와 오늘

황병성 칼럼 - 문래동 철강단지의 어제와 오늘

  • 철강
  • 승인 2023.11.20 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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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명 황병성 bshwang@snm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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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꼭두새벽에 일을 나가시면 총총히 뜬 하늘의 별을 보며 퇴근하셨다. 피로한 기색이 역력했지만 인내의 세월 속에서 보람은 자식들을 공부시키는 것이었고, 자식들은 바람대로 좋은 학교를 졸업했다. 그리고 아버지는 나이를 먹어 황혼(黃昏)으로 접어들며 은퇴의 갈림길에 섰다. 평생을 함께한 기계는 아직 거침없이 씽씽 잘 돌아가는데 옛날 같지 않은 육체에 허망한 한숨이 강물처럼 깊다. 그것을 지켜보는 자식은 애잔한 마음을 주체할 수 없다. 문래동 어느 노(老) 사장님에게 닥친 현실은 가업을 승계한 아들의 고민이 되었다.  

소공인의 성지와 같았던 영등포구 문래동 철강단지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한때는 큰 영화를 누렸지만 지금은 흉물 취급을 받는 곳이 됐다. 사라져야 할 낡은 유산으로 낙인찍히며 결국 개발 바람을 비켜가지 못하고 바람 앞 촛불 신세이다. 서민경제를 떠받치고 제조업의 실핏줄 같은 역할을 하던 시절이 있었기에 사라져야 하는 안타까움은 크다. 지금도 이곳에는 1,279여 개 공장이 성업 중이다. 수도권 1만796개 공장 중 11.8%가 여기에 있다. 이 공장이 하나 둘 시한부 기한을 받아들고 존폐를 걱정해야 하는 불면의 밤이 고통스럽다.

문래동은 일제강점기 때 경성방직을 필두로 한 면직물 공장이 많아서 붙여진 이름이다. 옛날에는 이 일대가 안양천과 도림천의 우안(右岸)으로 모래가 많은 마을이라고 하여 ‘모랫말’(사천리)이라고 불렀다. 문래동(文來洞)의 유래는 모랫말에서 음차 했다는 설이 정설로 여겨진다. 또 최초로 면화를 도입한 ‘문익점’의 아들이 물레를 개발한 것으로 전해지는 ‘문래’에서 따와 해방 이후에 개칭됐다는 설과 일제 강점기에 이곳에 대규모 방직공장이 세워지면서 방직기의 순수 우리말인 ‘물레’를 음차 한 ‘문래’로 개칭됐다는 설도 있다. 

이처럼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던 문래동 철강단지가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진통을 겪고 있다. 노 사장님은 이곳에서 계속 철공소를 운영하고 싶지만 여의찮다. 문래동 철공소 일대가 재개발되고 그 자리에 첨단산업단지가 들어설 예정이기 때문이다. 관할 영등포구청은 단지를 통째로 이전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이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도 크다. 대부분 철공소 사장이 고령인 만큼 공장 이전은 곧 은퇴로 연결될 수 있다. 이에 생산 단계별로 분업화된 문래동 제조업의 생태계 붕괴를 걱정하는 사람이 많다. 숙련공 부족을 호소하는 우리 산업에 이들의 은퇴는 재앙과 같다. 닥쳐올 걱정은 하는 것이 아니라지만 상황이 그렇게 흘러가니 안타깝다.

이곳은 크고 작은 기업들의 시제품, 부품 등을 제작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우리가 일상 속에서 사용하는 많은 물건은 이곳 숙련공들의 손끝에서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은 후 세상에 나온다. 그래서 문래동 숙련공들이 은퇴하면 뿌리산업의 대가 끊길 수 있다. 제조업의 근간이 흔들릴 수 있는 심각한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 사업을 물려받으려는 자식들이 없다는 것은 더 큰 문제다. 힘들고 돈도 되지 않는 일을 가업으로 물려받을 젊은이를 찾는 것은 무리가 있다. 천직으로 생각하며 평생을 살아온 고령의 숙련공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이기에 젊은이들의 외면은 일견 이해가 간다. 기술자를 제대로 대우 못하는 국가의 문제가 더 크다. 

가업을 물려받게 된 노사장의 아들은 개발 계획만 공장의 등을 떠미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천정부지로 치솟는 임대료가 문제다. 문래동은 준공업지역이지만 공장만 들어올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작은 공장이 있었던 건물 중 상당수는 이미 일반음식점이나 카페로 바뀌었다. 덩달아 임대료도 껑충 뛰었다. 올해 하반기 매물로 올라온 문래동 건물을 보면 약 48평 기준 보증금은 4,000만 원, 월 임대료는 400만 원에 이른다. 개발에 따른 이전이 아니더라도 작은 공장은 고가 임대료를 견딜 수 있는 재간이 없다. 경기 부진으로 임대료도 못 버는 상황에서 계속 사업을 영위하는 것은 망하는 지름길이다. 이전과 폐업을 망설이는 업체가 늘어나는 원인이 여기에 있다.  

문래동에서 철재를 싣고 오가며 분주했던 화물차나 자정 넘은 시간까지 시끄럽게 돌아가던 기계 소리는 점차 과거 속으로 사라지고 있다. ‘임대문의’라는 반갑지 않게 붙은 건물만 늘어나고 있다. 그것을 볼 때마다 가업을 물려받을 아들의 심정은 착잡하다. 아버지가 눈비를 맞으며 일구어 놓은 사업장을 어떻게든 잘 이끌어가야 하는데 자신이 서지 않는다. 잊히는 데 대한 두려움과 이전 걱정으로 아버지의 혜안(慧眼)에 의지하지만 이마저 여의치 않다. 고령의 당신에게서 ‘노마의 지혜’를 기대하는 것은 과욕이다. 

아들은 노포에서 근심의 술잔을 기울이며  충실한 삶을 위해 노력할내일을 다짐한다. 더불어 문래동에서 벗어날 그날을 생각하며 희망찬 용기를 얻는다. 이처럼 문래동에 가면 가업 승계 아들의 헤픈 일상을 발견할 수 있다. 그리고 석양에 지는 해를 보며 내일도 붉은 태양이 떠오르는 이치가 소중함을 새삼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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