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월드컵 8강전 승부차기에서 마지막 키커로 나선 홍명보 선수가 골을 넣은 후 환하게 웃으며 기뻐하던 모습이 잊히지 않는다. 당시 주장이었던 그는 우리나라의 4강 진출에 큰 역할을 했다. 큰 형님의 리더십이 목표 이상의 성과를 낸 원동력이었다. 바위 같은 듬직한 그의 모습에 국민은 큰 신뢰를 보냈다. 그도 선수들을 이끌고 최고 성적으로 화답했다. 그러나 24년 여가 지난 지금 그가 고개를 숙였다. 전장에서 패한 장군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돌아왔다. 영웅의 추락에 연민을 느끼는 것도 지금은 조심스럽다.
모든 사람이 그에게 돌을 던지고 있다. 최고 통수권자인 대통령마저 그의 실책을 탓하고 있다. 패장은 할 말이 없다. 국민의 바람에 못 미친 성적을 냈기에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는 것이 맞다. 더구나 부족하지 않은 지원을 했기에 그에 상응하는 성적을 냈어야 했다. 하지만 공이 둥근 축구경기는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이 문제다. 축구는 혼자 하는 예술이 아니다. 함께하는 단체 경기다. 아무리 화려한 스타 선수를 보유하고 있더라도 팀워크라는 단단한 매듭이 없으면 승리할 수 없다. 여기에 감독의 전술이 승부의 방점을 찍는다.
많은 사람이 이번 월드컵 성적을 두고 감독의 전술 부재를 지적한다. 32강에 진출하지 못한 원인을 두고 이런저런 말이 많다. 왜 손흥민을 전반전에 넣지 않았느냐, 잘 뛰는 김민재를 왜 뺏느냐는 등의 지적이 난무하고 있다. 그 지적은 오롯이 감독에게로 향한다. 잘못된 결과에 자유롭지 못한 것이 있다면 감독 선임이다. 유능한 외국인 감독이 많았는데 왜 홍명보 감독을 고집했느냐가 가장 큰 지적 사항이다. 이처럼 선임 절차가 도마 위에 올랐고 학연도 문제를 삼는다. 특정 선수 기용도 원인으로 꼽는다.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자세한 분석이 필요해 보인다.
책임의 무게를 따지면 직장과 운동은 같다. 직장에서 최고 경영자나 운동경기에서 감독의 책임감은 절대 다르지 않다. 동서고금을 막론한 전쟁에서도 마찬가지다. 장수의 책임이 승패를 좌우한다는 것을 역사가 가르쳐 준다.
이에 유능한 CEO와 감독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새삼 깨우친다. 이러한 점에서 이번 월드컵에서 홍 감독의 전술 부재가 세인의 지적을 받는 것이다. 다만 안타까운 것은 영웅의 몰락이다. 그도 한때는 월드컵 영웅으로서 추앙받았다. 그 공로를 생각하면 그를 향한 지나친 비판이 못내 아쉽다.
축구는 우리의 인생사를 닮았다. 우리의 삶 역시 수많은 우여곡절과 질곡(桎梏)으로 가득 차 있다. 때로는 거듭되는 사업 실패로, 때로는 야속하게 찾아온 병마와 온갖 고초로 인생의 시간은 다 끝나버린 게 아닐까 낙담하는 순간이 찾아온다. 축구도 이와 다르지 않다. 90분 정규 시간이 지났다고 해서 모두가 끝난 것은 아니다. 오히려 모두가 지쳐 포기하고 싶을 때, 인생이 허락한 보너스 같은 추가 시간에 위기를 기회로 바꾸듯이 축구도 대반전의 드라마를 쓴다. 이 같은 삶은 우리 주변에서 흔히 목격한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는 말이 있다. 냄비처럼 들끓던 여론도 시간이 지나면 역사 속에 묻힌다. 중요한 것은 실패의 전철을 다시 밟지 않는 것이다. 원인을 분석하고 더는 이 같은 일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 이것은 기업도 다르지 않다. 실패했다고 좌절한다면 생존을 보장받을 수 없다. 전화위복(轉禍爲福)이라는 고사성어가 정답이다. 기업과 경기를 망치려는 CEO와 감독은 없다. 결과가 나쁘게 나왔을 뿐이다. 단순히 일상에서 쌓인 화풀이나 스트레스 해소로 비판하는 일은 옳지 않다.
우리 사회는 영웅을 만드는 속도만큼 무너뜨리는 속도도 빠르다. 홍명보 월드컵 감독의 평가가 그렇다. 어제는 대한민국의 큰 자랑이었다. 그러나 오늘은 모든 책임의 원인으로 몰아간다. 물론 공적인 자리에서는 성과에 대한 책임을 묻는 것은 필요하다. 하지만 한 번의 실패로 모든 공로를 지워 버리는 것은 이성적이지 않다. 한때 일본 축구는 우리 상대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우리를 앞서가고 있다. 자존심이 상할지 모르지만 그들의 시스템을 먼저 배워야 한다. 지금처럼 감독만 탓하고 있으면 2002년과 같은 성과는 다시 오지 않는다. 이것은 우리 기업에 던지는 교훈이기도 하다. 펄펄 끓는 냄비 근성도 지금은 내려놓을 때다.

